[ 일상에서 만나는 역사 ]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도산공원
나는 평소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것(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을 좋아한다. 그곳이 경복궁처럼 크고 유명한 곳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치는 곳처럼 비교적 사소하든, 사진으로 남기고 정보를 찾아보는 것을 즐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인지 '대한민국 수립'인지 단어 하나 선택이 중요한 교과서 속 첨예한 역사나, 대하드라마 혹은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나는 거창한 역사는 아니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마주치는 역/정류장 이름이 된 유적지, 빌딩 숲 속 덩그러니 서 있는 비석과 같은 것들을 통해 사소한 과거를 만나고, 이를 통해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를 꿈꿔보고 싶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의무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장소', '그것' 들을 바라보고 떠오른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이 혹여나 이 글을 우연히 발견할 누군가의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된다면, 그 또한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 좋은 이유가 될 것이다.
도산공원은 서울시 강남구 도산 대로에 위치한 도산의 묘원이다. 도산 대로의 '도산' 또한 안창호 선생의 호를 인용한 것이다. 신사동에서 청담동에 이르는 이 10차선 이상의 대로변에는 회색의 빌딩들이 우뚝 솟아 있고, 수입차 전시장, 명품 샵 등이 즐비 해 있다. 화려하고 조금은 낯선 명품 샵들을 지나치고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도심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산 공원을 만날 수 있다. 도산 공원은 1973년 도산 안창호의 애국정신과 교육정신을 기리고자 조성된 공원이다. 도산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의 묘소, 동상, 기념관, 말씀 비, 체육시설 등이 있다.
공원 뒤쪽의 아파트 주민인 듯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고, 청소년들이 벤치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지만 나름 공원의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죽어서도 부부는 함께한다는 말이, 유해를 합장한 묘 앞에서 사뭇 실감 난다. 도산 선생은 요즘 말로 '사랑꾼'이었다. 내 브런치의 다른 글 "<월간 독서기록>- 2016年 3&4月, 함께한 책들"에서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에 대해 쓴 부분을 인용하려 한다.
인간 안창호, 특히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도산은 어땠을까? 도산이 언더우드학당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니, 도산의 할아버지가 이미 같은 마을에 사는 서당 훈장의 딸 혜련과 도산의 약혼을 결정해 놓았다. 당시 도산의 나이 18세였고, 이혜련의 나이 13세였다. 도산은 조혼에 뜻이 없었으나 집안 어른들의 뜻을 거부할 수는 없었고, 대신 이혜련에게 신식 교육을 시키자 결심한다. 도산은 이혜련과 여동생 안신호를 서울로 데려와 정신여학교에 입학시켜 신학문을 배우게 한다. 박수를 치게 하는 멋진 생각이다. 안창호의 오직 꿈은 독립이자 민족 부흥이었으므로 가정에 충실한 가장은 못되었지만, 항상 그는 그의 부인을 '혜련'이라고 부르는 로멘티스트이기도 했다. 선생은 누구보다 바쁜 와중에도 항상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들을 보면 선생의 부인을 향한 사랑, 그리움, 고마움을 읽을 수 있다. 그에게 부인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의 묘가 어딘가 더 다정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공원 곳곳에서 선생의 말씀을 새긴 말씀 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나의 마음을 울린 것은 이 말씀이었다. "<월간 독서기록>- 2016年 3&4月, 함께한 책들"에서도 영국의 팝페라 가수 폴 포츠가 이 말씀에 감명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
하루가 멀다 하고 포털의 메인에는 '청년 실업 100만 시대'와 같은 헤드라인을 가진 기사들이 올라온다. 저녁 시간대의 방송 뉴스들도 다르지 않다. '청년 실업'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취업 준비생'(취준생)이 아닌 '취업 포기자'인 '취포자'들 또한 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 20대의 청년들이 '취포' 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 먹고살기도 바쁜' 많은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를 자처한다.
'낙망(落望, 희망을 잃음)'은 포기다. 청년에게 희망이 없다면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이 말씀을 보고 "그래, 희망을 잃지 말자!"와 같은 어쩌면 식상하고 영양가 없는 결론만을 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중 한 명으로서 우리 '청년'들이 어떻게 하다가 '낙망'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선택'이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단호하게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란 말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와 닿는다. 유치원생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의 폭은 좁다. 곰인형을 가질 건지, 레고를 가질 건지 선택하면 된다. 초등학생이 되면 선택의 폭은 좀 더 넓어진다. 보통 이들의 선택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는 일상을 포함한 많은 부분에 서 훨씬 더 넓은 선택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진로 결정, 가치관 등 정말 중요한 부분에서 부모님이나 주변에 따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인생의 '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갑자기 와버린다. 재수를 결심해야 할 수도 있고 대학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대학 진학을 안 할 수도 있다. 대학 진학을 선택했으면 어느 과를 지원할 건지도 문제다. 이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사실상 많은 경우 학생들에게 이 중요한 순간에 그 누구도 깊이 있는 조언을 해 주지 않거나, 학생 스스로도 자세한 연구와 고민 끝에 선택하기보다는 일단 무조건 점수에 맞는 곳, 유망하다고 하는 곳을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과 이유가 어떠했든 선택은 결과를 부른다. 우리의 선택은 점점 더 무게를 지녀간다.
대학생이 되면 '선택'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시간표가 짜여 나왔던 학창 시절과 달리 내가 들을 수업을 선택해야 한다. 이번 학기를 다닐지 휴학을 할지도 나의 선택이다. 무작위로 정해지던 '반'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젠 어떤 동아리, 학회에 들어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도 나의 선택이다.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내 인생의 한 칸 한 칸을 칠해 나간다. 졸업이 다가오면 나의 선택의 무게는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진다. 무엇을 해야 하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대학에 입학한 지가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결정하고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 취업 준비를 해서 기업에 갈 것인지, 간다면 어떤 직무를 하고 싶은지, 혹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할 것인지. 나의 선택 하나하나가 나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온전한 나의 선택, 나의 책임이다. 거대한 선택의 바다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해지고, 심하면 포기에 이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시급하게 보완되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선택하기'에 대한 교육. 우리는 '좋은 선택'을 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학창 시절 '시키는 대로' 해 오기를 권장받았던 학생들은 20대가 되면 갑자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재가 되어야 한다. 이미 정해진 선택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데에 익숙한 청년들이 '주체적인 선택'을 해 나가는 데 익숙할 리 없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파악과 그에 따른 선택, 그리고 주어지는 책임을 느끼고 습득하는 교육 과정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유럽의 국가들은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정치 교육을 시킨다. 아이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선택'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조금은 핀트에 어긋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sns와 블로그 등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나 정확한 원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 사진에 말문이 막혔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해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지'가 아니라 가해자가 왕따를 시키지 않도록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아래 판넬에 적인 항목들에 의하면 집단 따돌림이 마치 피해자 스스로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선택'하는 것이 된다.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때문에 끊임없는 "왜?"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 자신 또한 돌아보면 그러지 못했다. 왜 공부를 잘하고 싶지? 왜 대학에 가고 싶지? 왜 그 과를 가고 싶지? 끊임없이 질문했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은 "왜?"가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선택의 순간에 무기력 해지고 선택 후에도 후회를 느끼게 되어버렸다. 취준생들이 자소서(자기소개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문항은 '지원 동기'다. 내가 어떤 일을 했고, 뭘 알고, 이런 아이디어가 있다고는 곧잘 써도 "왜 귀하는 우리 회사에 입사하고 싶습니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답변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취업이 잘 될 테니' 경영학과를 가야지." "'돈을 많이 줄 테니' 저 회사를 가야지". 하지만, 이 '답'들은 가변적인 것들이다. 시대는 변하고 사회도 변한다. 그것을 개인이 막을 수는 없다. 오로지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내 마음, 내 생각만이 내 의지 아래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답이 먼저가 아닌, '왜'를 나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서 이끌어낸 답변만이 내가 하는 선택의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두려운 것은 가치 부재의 상황이다. 가치에 대한 고민이나 사유 없이 단지 목적에만 충실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 가치를 보는 눈이 성숙했을 때 나의 모든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삶의 모든 선택을 그것에 의거해 나가는 것이다. - <시골 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박경철 지음, 83p
얼마 전 신문에서 '선택'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읽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피드 데이팅(즉석 만남) 실험을 했는데, 시작 전에 각자 이성을 만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지 기준을 알아보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이성과 4분 동안 대화한 뒤 자리를 바꾸는 방식으로 10명 또는 20명의 상대를 만났다. 만남이 끝난 뒤에는 어떤 사람과 좀 더 진지하게 만나고 싶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적어내게 했다. 그랬더니 10명을 만난 학생들은 사전에 자신이 설문에 답한 기준과 취향에 부합하는 사람을 선택했지만, 20명을 만난 학생들은 원래 자신의 기준을 무시하고 가장 알아보기 쉽고 단순한 기준에 따라 상대를 선택했다. 이는 '외모'였는데, 즉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비교하고 계산해볼 수 있는 수준의 선택권이 있을 때는 신중한 결정을 내리지만, 선택권이 너무 많아지면 혼란이 오기에 일단 그 순간을 무사히 넘기는 게 목적이 되는 것이다. 자기의 기준을 무시한 채 가장 알아보기 쉽고 보편적인 기준인 외모를 잣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여기서 20명의 상대를 10명으로 줄일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왜'를 묻는 것이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가 있다. 정말 많은 길이 있다. 선택의 늪 앞에서 우리는 쉽게 우리만의 '왜'를 잊고 알아보기 쉬운, 혹은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해 버린다. 선택지를 지워나가기 위해서는 '왜'가 필요하다.
"왜"가 없는 선택은 결국 '낙망'을 불러온다. 남들이 하니까 했던 스펙 쌓기는 때마다 '이거 할걸' '저거 할걸' 하면서 후회만 남긴다. 내가 했던 선택이 너무나도 큰 결과를 가져왔기에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느끼면 낙망한다. 진지한 고민 없이 가변적인 요소들만 바라보고 지원한 회사에 붙어 이러저러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다른 도전을 하기에도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낙망한다. '조금 더 일찍 공시(공무원 시험)를 시작할걸', '그때 다른 전공을 선택할걸', '이 회사 말고 그때 그 회사를 갈걸' 공허한 선택의 끝은 끊임없는 불안과 후회다.
그렇다면 '왜'가 없었던 나의 수많은 선택들은 결국 불안과 후회만을 낳을 것이고, 때문에 우리는 이미 '낙망'할 미래만이 남은 걸까? 나를 포함한 청년들에게 위로를 해보자면, 그건 아니다. 지나온 선택의 기로들, 놓친 것 같다고 생각되는 기회들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그에 따른 책임은 내가 가능한 선에서 지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면, 앞으로는 달라지면 된다. 인생은 종착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한 영국 락스타의 말이 있다. "누구는 마지막 종착지에 대해 걱정하지만, 전 그 여정을 즐기고 있어요. 마지막에 어디로 도착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을 감상합시다."
마침 오늘 지하철을 타려고 하니, 눈 앞에 이런 시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나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해 나가며, 선택에는 믿음과 낙관으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 도산 선생이 평생의 삶에서 보인 태도다.
안창호는 두 번째 구속되어 검사의 심문을 받을 때도 조국 독립에 대한 신념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차라리 신념을 넘어서는 신앙이었다.
검사 :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안창호 : 대한의 독립은 반드시 된다고 믿는다.
검사 : 무엇으로 그것을 믿는가?
안창호 : 대한 민족 전체가 대한의 독립을 믿으니 대한이 독립될 것이요. 세계의 공의가 대한 독립을 원하니 대한 독립이 될 것이요.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224p
겨울바람이 매서운 공원을 둘러보고 식사를 하러 갔다. 이번에는 새로운 메뉴를 선택해 볼 것이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낙망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한 선택이기에.
* 원문발췌 : 조선비즈 "[Weekly BIZ] 12만 가지 제품 파는 월마트보다 1200가지 파는 할인점이 대세… 선택권 줄여줘야 선택받는다"
* 출처를 표기한 사진 외에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