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 차원> (Zero One Dimension)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가상의 세계를 접한다. 인터넷부터 게임까지, 가상의 세계에서 우리는 고유의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0과 1 로만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에 게임 캐릭터를 닮은 우리를 세운다. 낯선 재현 속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무대 위 네모난 구역 안에 무용수들은 마치 얼음의 분자들처럼 부단히 움직인다. 그 안에서 결합하고, 노동하고, 경쟁하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무용수들은 동일한 개인이 아니지만 인격을 가지지는 않았다. ‘움직이는 신체’의 기능을 하지만 ‘주체’는 비었다. 소리를 만들지만 전형적인 언어가 아니고, 움직임도 낯설다. 이처럼 우리를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았다. 등장과 퇴장, 승자이자 패자, 심지어 비인간의 형태로, 매 순간 다양한 속성을 가진 ‘이것임’의 개체로서만 존재하는 듯하다. 이름 없는 그들의 “나는~다”의 빈칸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다. 어느 누가 누구여도 상관없다. 지워진 주체성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캐릭터가 있을때의 예속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개체로 남아 있을 수 없다. 단순히 존재(exist)하는 것을 넘어 사는(live) 존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를 향한 모험이 시작된다. 끊임없는 ‘되기’의 연속이다. 모험은 ‘움직임’이다. 신체를 통해 주체를 찾으려는 시도가 현대 철학의 문제와도 닮았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과 싸워보기도 하고, 신체를 움직여 보기도 한다. 타자와의 관계도 형성된다. 일정한 망치 소리에 맞춰 노동(경쟁)하는 동안 추월은 반복되고 순위는 끊임없이 바뀐다. 한 명씩 쓰러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분별한 공격성을 가지고 움직이다 종종 위를 올려다본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묻는 듯하다. 결국 방향을 잃은 개인들은 신체의 움직임을 포기하고 정지한다.
슈퍼맨, 챔피언 등 난세 속에서 영웅이 되려는 개인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에겐 스포트라이트도, 주제곡도 없다.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영웅이 어딘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 영웅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하지만 과연 영웅은 고정된 존재일까? 2006년 TIME지가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한 것처럼, 각각의 ‘주체’는 가능성을 가진다. 근대의 무용이 사라져가는 현재에 대한 멜랑콜리아를 다루었다면 현대무용은 ‘잃어가는 자아’에 대한 멜랑콜리아가 그 자리를 대체한 듯하다. 자본주의 첨단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아를 잃지 않고 고유성을 지키라고 처절히 ‘몸부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제롬 벨(Jerome Bel)이 의도적으로 재현의 체계를 뒤흔들었던 것처럼, 비어있는 주체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작품이 끝나갈 무렵,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무언가를 경고하는 듯한 그 소리는 무대 위의 무용수들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우리도 불안하게 만든다. 스산한 소리가 몰려오고 조명이 어두워진다. 다가올 미래는 미지의 세계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0(공)과 1(일) 사이에는 0.5도, 0.73도, 0.924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