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러시아 방주> (Russian Ark)
<러시아 방주>는 ‘시간’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90분 동안 한 번도 컷 되지 않는 ‘원 숏 원 신’(One Shot One Scene)’으로 진행된다. 이 구성은 관객들이 감독이 의도한 ‘시간성’을 충분히 체험하도록 돕는다. 몽타주가 장면을 떼어 놓으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다면, 이 영화는 ‘이어 붙임’의 의미를 극대화했다. 카메라의 시선이 곧 주인공 ‘나’의 시선이고, 독백과 대사는 마치 나의 말처럼 가깝게 울려 퍼진다.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한 ‘유럽인’에게만 보이는 설정은 상황을 관조하는 효과를 주고, 주변에 들리는 작은 목소리들, 실제로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의 카메라 플로우, 가끔씩 시야를 가리는 화면들은 감독이 초대한 시간 여행에 더욱 현장감을 부여한다. 관객들은 어떤 의미에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 영화는 단순히 시간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시간’ 속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사고를 당한 ‘나’는 눈을 뜬 후 어느 성에 들어가고, 곧 1800년대의 러시아임을 알게 된다. 이 성 안에서 ‘시간’들은 끊임없이 만난다. 성 안에서 현재는 곧 과거이고, 미래다. 나아가 이 만남은 공간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유럽인’은 나와 다른 과거의 시∙공간에서 온 사람이다. 성 안의 수 많은 ‘문’들은 새로운 공간뿐만 아니라 새 시간으로의 문이기도 하다. 방금 전까지 과거의 시간이었던 곳은 문을 지나자 현대의 러시아의 미술관이 된다. 주변은 과거의 사람들이었다가, 현재였다가, 혼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간과 시간의 맞물림, 공존은 별도의 설명 없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관객들은 미세하게 달라진 의복, 몇 개의 대사를 통해 변화를 지각할 뿐이다. 모호한 시간의 구분은 어느 새 온전한 ‘시간 자체’를 느끼도록 한다.
영화에는 미래의 시간도 있다. 춥고 어두운 한 구석의 방에서 한 남자가 자신의 ‘관’을 짜고 있다. ‘죽음’이 가득 찬 그 방을 그들은 금세 나와버린다. 예카테리나 대제가 긴 눈길을 달려나가는 장면은 영원한 권력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과 저 멀리 눈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대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공허함의 시간이 몰려온다. 권력도 인간도 유한한 존재이고, 그 사실은 달갑지 않다. 노인들의 그림을 보며 “우리 모두 언젠가 저렇게 될 것”이라는 소년에게 유럽인은 반박한다. “군주제가 영원하지 않다”라는 주인공의 말에 그는 말한다. “내가 그것을 모른다고 치면, 조금 꿈꿀 권리는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의 시간’을 꿈꿔 본다.
마침내 '영원한 시간’이 있다. 영화에서 계속 등장하는 옛 그림들과 조각 상들은 화면 가득 영속의 시간성을 채운다. “영원한 사람들, 계속되는 삶…”의 독백과 함께 ‘내’가 그림에 밀착하여 보듯 확대된 장면은 그림 속에 간직된 영원한 시간을 느끼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연회가 끝나고 모두 성을 떠나기 시작한다. 복도한 켠의 열린 문 밖에 안개 낀 바다가 보인다. ‘나’는 이것을 유럽인이 보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그는 나아가길 거부하고 하나의 시간에 머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방이 바다로 되어 있어요. 삶은 항해와 같아요. 우리는 영원히 항해할 운명이에요. 영원히 살기 위하여”라는 ‘나’의 독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한 사람의 인생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계속된다. 과거에도 인간의 삶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넓고 깊은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리고 유한한 인간은 영원히, 영원한 그 바다를 항해할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