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나는 무엇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by seurat


2016년 대한민국은 '알파고'에 열광했다. 알파고는 구글의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프로기사 이세돌을 누르면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 줬다. '딥러닝( deep learning)'을 하며 진화를 거듭하는 알파고는 그 후 한중일 3국의 랭킹 1위 기사들을 포함 세계 최고수들에게 60전 전승을 거뒀다.



알파고뿐만 아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한국어 인공지능 '엑소브레인(Exobrain)'은 지난해 12월 31일 EBS 장학퀴즈에서 수능 만점자와 장학퀴즈 왕중왕을 제치고 우승했다. 엑소 브레인 또한 알파고처럼 딥러닝을 활용하며, 지난 3년간 12만 권 분량의 백과사전과 상식사전을 공부했고 여기에 시사상식을 넓히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신문 20개를 매일 정독했다고 한다. 1)



이제 인공지능은 TV에서, 신문에서 나와 우리의 일상생활에 침투하고 있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Watson)'은 지난해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에서 암 진료를 하고 있다. 왓슨은 수천 개의 환자 유전자 특성과 2000만 개 논문을 비교 분석해 진료를 내릴 수 있는데, 의사들이 2주 정도 걸릴 일을 왓슨은 10분 안에 해결하는 것이다. 닥터 왓슨은 미국 유명 암센터 전문의가 진료한 1000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해 30%의 환자에서 의사들이 놓친 치료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인천에 있는 길병원도 지난해 11월 중순 왓슨(W을 도입해 총 85명의 암 환자 진료를 했다. (2017년 1월 12일 기준) 놀라운 점은, 의료진과 왓슨의 처방이 엇갈릴 때 중요한 시안임에도 환자들 거의 모두가 왓슨의 의견을 따랐다는 것이다. 서울 유명 병원의 암 환자들도 왓슨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2),3)



지금까지의 기술이 산술급수적인 변화였다면, 이제는 '인류가 개발한 모든 기술이 한꺼번에 융합되는 혁명'인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하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다. 4)



4차 혁명의 시대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미 글로벌 산업지도가 바뀌고 있다. 독일과 미국의 아디다스는 3D 프린팅과 로봇을 활용한 '스피드 팩토리'로 이전보다 더 적은 직원으로 더 많은 신발을 제조한다. 불량률은 0.001% 수준이라고 한다. 자율주행 기술은 이제 자동차와 인간이 교감하고 사물인터넷(IoT)과 연결되는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로 진화했다. 머지않아 무인 택시가 도로를 뒤덮을 것이다. 한국 고용 정보원은 앞으로 10년 안에 1575만 개의 일자리가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말은 현실이 되었다.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더 이상 중국이나 제 3세계의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값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는 자동화된 기계들이다. 물리적인 단순 노동뿐만 아니다. 세계의 여러 연구소들은 앞다투어 'n 년 내에 사라질 직업'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5),6)



기계의 진화는 인류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 축복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고, 재앙이라고 속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과학이나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 교육, 노동, 복지, 정치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범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유명한 존 그레이(John Gray) 박사는 "기술과 과학은 축적되지만 인간의 도덕은 언제나 새로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인류 역사는 항상 전진하지 않는다. 기술은 진보하지만, 인간 사회는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스레 더 발전하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AI와 함께 '인간이 로봇에게 패배하는 시대'의 서막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미국 종합 경제지 포춘(Fortune)의 편집장 제프 콜빈(Geoffrey Colvin)은 "상호작용을 통한 공감 능력은 AI나 로봇이 결코 인간을 앞지를 수 없는 분야"라고 했다.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계를 이기려 하거나, 기계가 인간보다 부족한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즉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가장 많이 얻고자 하는 것을 제공하는 능력이 갈수록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공감'이라는 것이다. 이미 기계는 인간보다 정확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가 없으면 생존하거나 행복을 찾거나 생산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공감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요소다." 제프 콜빈은 "앞으로는 인간다운 면에서 뛰어나고, 철저히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야 우수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경제지 편집장 다운 예견을 했다. 실제로, 전 세계의 고용주들은 공감능력이 뛰어난 직원을 찾고 있다. 맥킨지, 바클레이스 캐피털, 화이자 등 세계적 기업들은 구인 공고에 공감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관계를 잘 맺는 직원이 매출도 올리고 연봉도 높다는 점은 실제 사례로 증명되었다. 7)



인공지능 의사 왓슨의 기세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 환자는 심신이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왓슨의 기계적인 처방보다는 환자의 마음과 사정을 감안한 유연하고 따뜻한 암 치료가 더 중요하다"라고 조언한다. 3) 세계 유명 의대에서는 의대생에게 공감과 성찰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소설 읽기를 권하고 있다. 클라우딩 방식으로 발전할 의료 인공지능은 미래에 모든 병원과 어떤 의사에서 진단과 처방 수준이 같아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2) 그럴수록, 우리는 환자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의사가 필요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사실 나열 위주의 내용이지만, 현재 상황이 어떤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여기서 나의 키워드는 '공감'이다. 앞서 제프리 콜빈은 미래 사회의 '공감'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수천 년 전 공자도 공감을 말했다. 공자는 진심으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고, 그런 공자 철학의 핵심인 '인(仁)'의 핵심은 '공감'이다. 인의 핵심을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을(남을) 사랑하라"이다. 즉,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으면 남도 도달하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분명 한 사람의 '공감 능력'은 타고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성격), 가정환경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고 본다. (일시적인 상황, 변하는 상황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 듯하다.) 하지만 선천적이고 외부적이며 가변적인 것을 넘어, 나는 '공감 능력'은 배울 수 있고('공부'), 키울 수 있으며('노력'), 이를 통해 '실천'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믿기에, 많이 부족한 나는 항상 노력을 하고자 한다.



얼마 전,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는 우리 생활 속에 범람하는 '영어'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어로만 적어있는 간판 때문에 가게를 찾아가지 못하거나, 영어로만 적혀 있는 제품명 때문에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8) 영어를 어릴 때부터 배웠거나, 혹은 성인이 되어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겠지만, 전체 국민으로 따져 볼 때 영어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한글 조차 최근에 읽고 쓰는 것을 배운 분들이 많은데, 영어를 알 리 만무하다. 전 국민이 이렇게 외국어인 '영어'에 열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름 영어 열풍에 일찍 합류(?)한 나와 같은 경우, 생활 속에 넘쳐나는 영어들에 대해 불만은 있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불편'하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불편'할 사람들의 마음까지는 진심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그 무엇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이 알수록 많이 보인다"는 말이, "많이 배우고 깨우쳐 갈수록 타인의 고통이 보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고 신영복 교수님은 "공부는 책상 위에 올라서는 것"이고,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앞으로 긴 호흡으로 '공감'을 중심으로 한 글들을 몇 개 적어보려 한다. (사실 '글'이라기보다 나의 공부 흔적에 가깝겠지만.)














*참고, 인용

1) http://news.joins.com/article/21092592

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3/2017011302754.html

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2/2017011200289.html

4)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13/2017011301394.html

5) http://news.joins.com/article/21092638

6)https://www.nytimes.com/2016/12/21/upshot/the-long-term-jobs-killer-is-not-china-its-automation.html?smid=tw-share

7)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6/2016121601809.html

8)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47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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