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 네이션 Prozac Nation>

by seurat





영화 <러브&드럭스> (Love & other drugs, 2010, 미국)는 평범한 멜로 영화다. 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갈등과 역경을 이겨내고, 영원한 사랑을 암시하며 끝나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극 전개에 있어서 '약'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제목에 'drugs'가 들어간 이유일 것이다.) 가전제품 판매원이었던 제이미(제이크 질렌할 분)는 직장을 잃고 우연한 기회로 굴지의 제약회사 화이자(Pfizer)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간다. 긴장하며 앉아있는 신입 사원들에게 담당 교육관은 제약 산업의 위대함과, 그들이 팔아야 할 상품 'Zoloft'의 장점을 강조하며 그들의 열정을 고무시킨다. 이 장면에서 교육관의 대사를 직접 옮겨보면,



이건 단지 알약이 아닙니다. 수백만 달러가 들어간 연구의 결과입니다. 수천 시간의 노동이 투자되었습니다. 이건 소프트웨어입니다.

'명시되지 않은'(Off -label) 효과들에 대해선 아직 FDA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그러한 용도들을 은근슬쩍 내세우면서 판매를 촉진하세요. 졸로프트는 우울증 치료제만으로 승인되었습니다.'명시되지 않은' 효과로는 알코올 중독, 폭식, 생리 전 증후군, 흡연, 사회 불안 장애 치료가 있죠.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 기술을 널리 공유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일은 생명을 살리는 겁니다.



영화에선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이 글에서 다뤄보고자 하는 내용과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몇 주간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마친 사원들은 현장으로 투입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의사들에게 약 샘플을 써보라고 부탁하는 것은 기본, 간호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뭐든 해야 한다. 비오는 날 주차장에서 의사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간호사에게는 꽃을 선물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반드시 그가 뛰어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 바로 경쟁사 일라이 일리(Eli Lilly)의 '프로작'(Prozac)이다. 이미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섭렵한 일라이 일리의 영업사원 트레이를 이기기 위해 제레미는 최선을 다한다. 제레미의 선배 영업사원은 트레이를 가리키며, "저 남자는 갓난아기가 프로작을 먹게 할 사람이다. 그는 개들도 프로작을 먹게 한다. 그는 만약 현금을 지불한다면 바위들도 프로작을 먹게 할 것이다." (He's got toddlers taking Prozac. He's got dogs taking Prozac. He'd have rocks taking Prozac if they paid cash.)라고 말한다.



<러브&드럭스>뿐만 아니라 다른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등의 상황에서 약을 꺼내 복용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전담 정신과 의사(shrink), 심리 치료사(therapist)를 두는 문화가 발달했는데, 등장인물들이 먹는 약은 보통 이 사람들이 처방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이 약은 '프로작'이나 '졸로프트'와 같은 항우울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프로작'은 우울증 완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약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기적의 알약'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1994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도 번째로 많이 처방된 약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다룰 책은 엘리자베스 워첼의 <프로작 네이션>이다. '프로작'이 뭔지 모른다면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위 영화를 통해서 '프로작'이 뭔지, 그리고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였던 약'이라는 의미까지 살펴볼 수 있기에 영화 초반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다뤄 보았다.


<프로작 네이션>, 엘리자베스 워첼, 김유미 역, 민음인, 2011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한 신문 칼럼 덕분이었다. 1) 특히 이 부분에서,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 주제는 자신의 고통을 기록하는 방식, 이유, 효과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고통에 대한 이해. 우울증은 증상이 곧 성격으로 오해받기 쉬운 질병이다.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본인이 우울증이라면 읽기를 권한다. 소외, 고립, 몰이해를 이해할 수 있다. - <정희진의 어떤 메모>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병' 중 발췌, 한겨레, 2017년 1월 13일 자



이 책은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졸업하고, 졸업 후에는 <뉴요커>, <뉴욕 타임스 매거진>등의 편집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제3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금은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한 미국인 여성이 자신의 청소년기와 20대를 괴롭혔던 우울증에 대해 고백하는 책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4년에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2011년에야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현재 한글 번역본은 절판되어 시중에서 책을 구할 수 없다.)



엘리자베스 워첼은 이 책을 26살에 썼다. 출간 후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책에 기반한 동명의 영화도 제작되었다. 몇 문장으로 한 사람의 삶을 속단(速斷)할 수 없지만, 위에 언급된 그녀의 간단한 삶의 궤적으로는 (게다가 검색해서 나온 그녀의 모습이 금발의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우울증으로 몰았던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버드에서 비교문학을 수학한 수재에, 저술 활동을 겸한 저널리스트였던 그녀를 수년 동안 괴롭혔던 우울증은 도대체 어떤 병일까.











책 속에는 저자는 약물 중독, 자해, 마약, 섹스, 자살 등 자극적인 내용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뒤흔든 우울증에 관해 대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우울증의 모든 단면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모의 이혼, 경제적 불안, 자기혐오, 관계에 대한 집착 등 그녀가 느낀 모든 감정에 대해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문학적으로 서술하며 독자로 하여금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우울증 환자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는지, 또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저자의 자세한 서술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모든 사람은 '우울증'까지 아니어도 '우울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분명히) 있으므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물론 그녀의 경우,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은 내 고통이 목적의식을 갖는 것뿐이었다. -74p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 사회의 약물 남용을 우려하고 있기에 성급한 투약 치료에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진단과 약물 치료의 필요성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은 (아직도 의료 전문가들조차 약물 치료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지만) 신체적 질병이다.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해 나가야 하는 질병이다. 단순 의지로, 식습관으로, 운동으로, 사회 활동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병이다. 그렇게 해서 치료되는 것이라면 대학에 진학하고, 여러 남자와 사귀고, 파티도 다니고, 인턴 생활도 했으며, 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여럿 있던 저자는 이미 우울증에서 오래전에 벗어났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프로작의 미디어 현상이 심각한 문제를 가벼운 흥밋거리로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대부분의 조사에 따르면 심각한 우울증 환자들의 삼분의 이가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미디어의 요란한 미사여구에 가려져서 더 절망적인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460p 에필로그 중
우리 자신과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욕구(근래에는 부정이라는 말이 더 잘 쓰인다.)가 너무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신이 실제로 창문에서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80p






'우울함'과 질병으로의 '우울증'은 비슷할 순 있어도 명확히 다른 것이다. '우울증'은 일종의 '서서히 하는 자살'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완치도 어렵고 '명확한 끝'을 모른다. 우리는 자주 미디어를 통해 톱스타, 재벌가의 자제, 유명 작가 등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흔히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충동적인 자살도 있지만 우울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도대체 왜? 나라면 절대 안 그럴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울증은 그런 질병이다. 저자의 기록처럼, 어떤 '실질적인 무엇'이 문제가 되어서 고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다고 치료되지도 않으며,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도, 우울증은 어김없이 찾아올 수 있다.

구조된다는 것. 내가 부러워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마약 중독자에게는 마약에 취하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도움을 받기 위해 실려갈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가 있다. - 98~99p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가 내리는 것처럼. 향수병은 내 마음의 일상적인 상태였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어떤 장소를, 다른 무엇을 그리워했다. 나는 언제나 상상 속의 특별한 장소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내 삶은 하나의 길고 긴 갈망이었다. -114p






우울증은 장소가 바뀌거나, 직업이 바뀌거나,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고 말끔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후, "나는 이곳에서 조차도, 세상에서 가장 크고 훌륭하고 대단한 이 대학에서조차도 내가 철저히 완벽하게 ‘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149p)라고 말한다. 워첼이 하버드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 좋은 성적을 받고, 이것 저것 과외 활동을 해냈던 이유는 '하버드 같은 대학'에 가면 본인이 '완전히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보스턴의 공기도 뉴욕의 공기와 다르지 않았으며 하버드의 학생들도 기대한 만큼 멋진 지성인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이 하버드에서 멈출 거라고 생각했다. 내 우울증의 원인인 물리적인 장소를 벗어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시커먼 파도 대신에 어둠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154p


특히나 이런 부분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과주의' 문화가 널려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성과를 내는 것에 있어서 과정을 묵살하고, 그 사후에 있어서 무심함에 익숙하다. 일단 대학만 가면, 일단 좋은 회사에 입사만 하면,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다 보니 실상 그 이후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심리적 안전망(safety net)이 전혀 없다. 인생은 한 방향이다. 우리는 모두 오로지 '죽음'을 향해 간다. 때문에 모든 것은 과정이고, 이어지며, 숨이 붙어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명문 대학에 들어간다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으며, 중요한 시험을 통과했다고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물론 그 지점을 향한 노력, 사회의 인정, 성취감, 얻어지는 보상 등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건, 어떤 단계가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저자가 그랬듯, 하버드에 입학한 '나'도 여전히 '엘리자베스 워첼'이다.






우울증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병'인 이유는, 이 병이 암처럼 실질적인 암세포가 퍼지기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로지 심리적으로만 생겨나는 병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사조차 정확한 원인을 짚어낼 수 없다. 그들은 약물로, 상담으로 환자가 나아지기를 도울 뿐이다. 우울증은 나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고, 남에게 설명할 수 없으며, 때문에 더더욱 타인은 완벽하게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도 답답하고, 지켜보는 타인도 함께 지치기 마련이다.

나는 엄마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내 우울증을 설명할 말을 생각해 보려고 애썼지만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가 없었다....(중략)....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이었다. -178p
아무도 그녀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침대에 누운 채 핑크빛 벽을 응시하고, 새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주는 핑크색 알약을 삼킨다. 초록색 알약, 그리고 노란색 알약. 그리고 이 모든 블루. -257p






흔히들 우울증 환자라고 하면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리고, 외부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모습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야 말로 가장 절실하게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원하고, 또 너무나 원하다 보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내가 원한 건 엄마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것뿐이었어.”(180p)라고 말한다.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그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해 절망한다. 정상적인 관계, 행복 해 보이는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는 어떤 유리 벽이 있고, 그 분리로 인한 소외감이 자신의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부분이라고도 말한다.(330p)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그녀는 결국 10년 이상 그녀를 괴롭힌 우울증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그 출발점은, 미묘하기 때문에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프로작'을 먹기 시작한 것도, 혹은 스털링 박사라는 좋은 상담의를 만난 것도 아니었다. 이 둘은 모두 저자가 옛날부터 해 왔던 일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녀에게 회복의 기회를 열어주기 시작한 것은 '엄마'의 '공감'이자 '이해'를 느끼기 시작했을 때였다.

‘엄마는 나를 이해하고 있어. 엄마가 이해하고 있으니까 다 잘 될 거야.’(420p)



어쩌면 그녀가 우울증을 가지게 된 수많은 요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엄마'에게 인정받은 것은 그 어떤 약보다 큰 효과를 가졌다. 그렇게 얻게 된 공감과, 똑바로 바라 본 자기 자신을 향한 인정은 어떠한 내면의 변화를 불러온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살고 싶다는 의욕을 느끼고, 하루를 맞이하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예전처럼 우울한 기분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오기보다는 작고 사소한 해내야 할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마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우울증은 점점 그녀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녀는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가 완전히 우울증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울증의 지속적이고 강박적이고 포괄적인 영향, 삶이 마치 타인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불투명한 구름 사이로 보이는 일이라는 분리 감은 사라졌다. 검은 파도 역시 거의 사라졌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검은 파도가 전혀 생각나지 않기도 했다...(중략)...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다지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445~446p










그녀가 이렇게, 어쩌면 모욕적일 수도 있는 모든 일을 털어놓으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라. 평생 혼자서 간직하고 싶었던 온갖 감정들, 사건들, 관계들을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그 누구나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남들이 나의 이런 모든 치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이 우울증을 불러올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고통을 말함으로 인해,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은 공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뚜렷한 신념이 있었다. 우울증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으며,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병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꾸밈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울증 환자들을 '하나의 섬'(474p)라고 표현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이 섬들이 조금이나마 서로 이어지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육지'와도 연결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늦은 후기'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우울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경우, 그것은 내 모습처럼 끔찍한 모습이다. -477p 늦은 후기 중
나는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만져줄 수 있기를 바란다.
-481p 늦은 후기 중











특히, 그녀는 당시(1994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1100만 명, 미국에서만 600만 명이 프로작을 복용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우려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우울증의 흥미로운 점 - 프로작 네이션의 특이한 점 -은, 그것이 앞날이 전도유망한, 희망과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인생이 막바지에 다다른, 너무 늦어 버린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막 인생이 시작된 젊은이들이다. -452p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들 사이에서 '이생 망'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로, 입시와 취업 등을 실패하고, 현재의 인생에 지쳐 이번 생은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다는 자조를 담고 있다. 2) '이제 막 인생이 시작된' 그들이 어쩌다 이렇게 무기력 해진 것일까? 사실 이러한 젊은 층의 무기력함은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책 뒤편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우울증이 쉽게 발달하는 이유에 대해 고찰하며 그들을 독려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친다.

나는 특히 젊은 사람들을 위해 <프로작 네이션>을 쓰고 싶었다. 이 책이, 그들이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읽힐 만한 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주제넘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어딘가에서 이 음침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내 나이 또래나 아니면 그보다 더 어린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482p 늦은 후기 중










책을 펴냄으로 인해 그녀만 다른 이들을 위로한 것이 아니다. 그녀 또한 이 책을 읽은 다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구글링을 통해 찾은 한 영상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3)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그 나이에, 내 삶에 대해 회고록(memoir)을 쓰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하나 분명한 것은, 완전하게 솔직했다는 것(be absolutely truthful)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고집하는 것. 그것이 내 이야기를 가치 있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나와 아무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었는데, 그들은 프로작 네이션이 그들의 삶의 이야기(life story)라고 나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맨해튼에서 나고 자란 나의 배경과 굉장히 다를 수 있는, 캔자스주에서 농부 아버지 밑에 자란 16세 소녀가, 우리가 동일한 삶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그것들을 보편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편적일 수 있어요. 왜 그런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어떻게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 말해주는 것 같아요.



또한 책에서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반응을 보여 준 독자들로 인해서, 나는 '나의 삶'이 쓸모 있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느낌이 나에게 주는 행복감은 결코 갚을 수 없는 큰 빚으로 내게 남아 있다. -485p, 늦은 후기









우울증 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 그리고 크게는 절망스러운 상황 대부분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보통 '하필 왜 내게' 혹은 '왜 나한테만'이라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책 속의 저자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왜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남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지'와 같은 생각에 고통스러워 했다.



이 점에서, 평소 구독하던 'StyleLikeU'라는 유튜브 채널의 'What's Underneath Project' 중 Melanie Gaydos의 영상은 큰 충격과 동시에 깨달음을 주었다. 그녀는 '외배엽 형성 이상'(ectodermal dysplasia )이라는 희귀성 난치성 유전 질병을 앓고 있었고, 가족 구성원 중에 알콜 중독자가 있었다. 가정 폭력을 겪었고 자살 충동도 가진 적이 있다. "혹시 몸을 바꾸고 싶나요?"(다른 삶과 바꾸고 싶은가?라는 의미일 것이다.)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4)


아니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제가 겪어온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내가 만약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 그랬다면 나는 엄청 지루했을 거예요. 매우 흥미롭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 여러분의 삶이 흥미롭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아니에요. (웃음)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이 좋아요.
나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요.(I like the way I am)


'하필 왜 내가'가 아니라 '나이기에 견뎌낼 수 있다'의 마인드라니! 이 순간만큼은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온전한 자기 인정과 삶에 대한 애정이 없고서는 가질 수 없는 태도였다. 그녀는 실로 단순히 존재하는 것(exist)을 넘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live) 있다.










우울증은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고발장'(479p)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우울증과도 연관 깊은 '묻지 마 범죄' 문제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써 봤다. '나의 고통을 말한' 책에서 얻어지는 진실된 이해와 공감을 느껴 보고자 했다. 우울증 환자이든 아니든 , 우리는 모두 각자 하나의 섬이다. 그 사이가 굉장히 멀더라도, 공감과 이해를 통해 조금씩 좁혀 나간다면 언젠가는 하나의 큰 대륙을 이룰지 모를 일이다.



약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지만, 책을 반납하기 전 몇 차례나 다시 들추어 보았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고,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사람이 그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영화를 찾아보았고, 그녀의 다른 책을 빌려보기도 하였다.





구글링을 통해 한 기사를 발견했다. 워첼의 결혼 기사였다.(2015) 5) 기사 사진 속 그녀는 흰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으로.










나는 우울증을 나의 은신처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기까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 출발하고 있다.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나는 이제야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 <프로작 네이션>, 466p
















*참조 / 인용

1)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78681.html

2)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7/02/05/20170205001444.html

3) https://www.c-span.org/video/?122128-1/norton-book-american-autobiography (14:00~ 17:15)

4) https://www.youtube.com/watch?v=sdvaTzWvbPA

5) https://www.nytimes.com/2015/05/31/style/elizabeth-wurtzel-finds-someone-to-love-her.html

* 표지 사진 출처 : http://www.chronicbodypain.net/the-controversies-surrounding-prozac-for-fibromyalgia-pain/

*영화 장면은 직접 캡처하였고, 각 영상들의 대사는 직접 번역하였습니다.

*cover image : Photo by pina messin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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