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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rat May 18. 2018

함께해서 즐거운 여행, <트립 투 스페인>

두 친구의 유쾌한 스페인 여행



*브런치무비패스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기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할 줄 아는 두 남자가 있다.


<트립 투 스페인>은 <트립 투 잉글랜드(2010)>, <트립 투 이탈리아(2014)>를 잇는 세 번째 '트립 투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스티븐 쿠건, 롭 브라이든 두 영국 남자의 유쾌한 여행을 그린다.


스티브 쿠건은 레스토랑 리뷰를 쓰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야 하고, 여행 메이트 롭 브라이든에게 동행을 제안한다. 마침 육아에 지친 롭은 친구의 제안을 흔쾌히 응하고 둘은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 '트립 투' 시리즈는 여느 여행 영화와는 다른 색다름이 있다. 흔히 '그렇게 흥미로워 보이지는 않는' 조합인 두 중년 남성이 여행을 떠난다.


영화에서 스티브 쿠건은 말한다. "지금이 우리의 황금기야.즐겨야 해."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고 다 큰 아들이 있는 중년 남성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맞는 말이다. 흔히 '젊을 때'가 '황금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물음표가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젊었을 때, 돈이 많을 때, 시험에 합격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살아내는 이 순간 모두가 '황금기'다. 두 '아재'는 맘껏 웃고, 바보같은 이야기를 하고, 성대모사를 하고, 연기를 하고, 서로를 놀리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또 다른 재밌는 포인트는,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국 아재'들의 '아재개그'다. '아재 개그'라고 부르긴 했지만 '개그'에 그친 내용은 아니다. 성대모사, 풍자, 일상, 인생 등 온갖 주제의, 그리고 사실 별것 아닌데 빠져드는, 대화를 보여준다. 그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다 보면 어느 새 옆에 앉아 수다떠는 기분이 든다. 내가 '여행' 영화를 보고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 이 '여행 답지 않은' 여행 영화의 모습이 역설적이게도 '진짜 여행'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여행'은 '함께하는 사람'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느곳을 가든, '누구와 가느냐'는 정말 중요하다.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에도 '그곳에서 있었던 일 자체'보다는 '누구와 함께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함께 추억하는 재미는 때론 여행 자체보다 즐겁다.


이 두 남자는 말 그대로 '둘만 있어도 재밌는' 시간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앞에 있는 음식을 갖고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갖고도 충분히 흥미로운 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다. 사실 이거면 됐다. 어디에서든 둘은 즐거울테니까.


군침도는 스페인의 음식, 눈부신 풍경을 완성시키는 건 함께 이 순간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그지역 유명 맛집도 가고, 바다도 보러갔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이켜보니 '가장 재밌던 순간'은 '숙소에서 같이 영화 본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극중 두 남자에게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재밌던 순간이 뭐냐"고 물었을 때 "둘이 차안에서 노래를 부를때"라고 대답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 후반에 롭이 영국으로 먼저 떠나고 혼자 글을 쓰기 위해 남아있는 스티브 쿠건의 모습에선 짠한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나 아름답고 활기찬 스페인이었는데, 혼자가 된 그는 그저 '이방인'으로 쓸쓸하게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과 의미도 크다. 온전한 '나'를 마주할 기회가 되기도 하니까.)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여행 열풍'이다. 명절 연휴 인천공항 출국자 수가 최대라는 뉴스가 매해 나온다. 이제 '명절'은 온 가족이 모여 명절을 보내는 기간이라기보다는 '어떻게든 휴가를 내서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기간'이 된 듯한 느낌도 든다.  옛날엔 해외여행 한 번 가려면 이것저것 준비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저가항공의 발달 등으로 가까운 나라로의 여행은 국내 여행을 가듯 부담이 적어졌다. 에어비앤비 등 숙박시설의 다양화와 인터넷 예약 발달도 한 몫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학생, 직장인, 노인 등 직업 연령 성별을 불문하고 점점 더 많이, 자주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지루하고 피곤한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 그러나 최근들어 '여행'이 그 순수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순수한 여행'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의하기 나름이니까.) 하도 주변에서 다들 가니까, 나만 안가면 뒤쳐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고 호소한다.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대학생때 유럽 배낭여행 정도는 다들 한 번씩 가니까 무리해서라도 가야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젊을 때 즐겨야지' '이때 안가면 언제가'와 같은 '여행 오지랖'으로 여행을 권유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들도 있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데 휴가나 연휴를 별다른 해외 여행 계획 없이 보내는 것을 안타깝고 '심심하게' 보는 시선이 괴롭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의 발달도 최근의 '해외여행 열풍'에 일조했다. 원래 sns엔 가장 즐겁고 행복한 모습만 올리는 법이다. 나는 연휴에 혼자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sns 속에선 나 빼고 다들 해외여행에 떠나 행복해 보이면 괜히 '여행 조급증'을 느낀다. 해외 여행 가서 '인생샷'을 건져서sns에 올리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많은 이들이 '더 좋은 사진'을 위해, 더 좋은 영상'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물론 '여행다운 여행'의 정의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진을 남기는 여행이 더 가치있는 시간일 수 있다. 뭐든 좋다. 자기가 만족한다면)


그러다보니 '여행 부심'(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을 부리거나, 무조건 여행을 가야하는 '여행병'('병'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좀 과하지만)이 걸리기도 한다. 말 그대로 '여행'을 위한 '여행'이다. 이런 '여행'은 오히려 더 큰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 여행을 떠나면 모든것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며, 즐거운 나만 남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은 여행일 뿐이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먹으면서 한층 더 성장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행은 현실과 함께간다.


이 영화는 이런 '여행'의 측면을 잘 담아냈다. 아름다운 스페인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쏟아지는 중에도 '현실'을 잃지 않는다. 스티브 쿠건은 여행 중 아들과의 통화에서 갓 스무살이 된 아들의 열아홉살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때문에 원래 예정된 아빠와의 스페인 여행은 못가겠다고 전한다. 아이를 책임질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아들의 말에 그는 걱정이 앞선다. 밥벌이인 시나리오 작업도 계속 문제가 생긴다. 자기를 담당하던 매니저는 말도없이 회사를 옮겼고, 신인 작가가 '이미 뜬 작가인' 자신의 시나리오를 윤문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에 기가 찬다. 유부녀인 애인은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오고, 이별을 암시하는 말을 남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찔한 상황도 연출된다. (스포가 될까봐 적지 않는다.) 그는 여행중이지만, 현실 또한 온고잉이다. 스페인은 정말 아름답지만, 낙원만은 아니다. 여행은 잠시의 도피처가 될 수는 있지만, 구원 그 자체는 아니다.








마냥 유쾌한 둘의 여행(이라고 쓰고 만담이라 읽자)과, 혼자가 된 인물의 고독함(이라 쓰고 현실이라 읽자)의 조화와 대비가 있는 <트립 투 스페인>. 문득 이 문장이 떠오른다.


"번잡한 세상 속에 살면서 삶의 완성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또 끊임없이 고독 속에 살면서 이것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가능성이 적다. 완성을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은, 고독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하고, 그런 다음 세상 속에 살면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여행'의 기능을 이 문장에서 읽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여행은 삶을 대신하진 못하지만, 삶을 보충한다. 




*cover image : Photo by Victoriano Izquierd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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