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가고 9월이 왔다. 여전히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진행 중. 2020년 가을까지도 마스크를 못 벗고 살고 있구나. 바깥활동이 줄어드니까 책 읽을 시간이 많아졌다. 이번 달엔 더위까지 한몫했다.
1. 퇴사하겠습니다 2.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3.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
세 권이 같은 저자의 책이라 묶었다. 저자는 일본의 명문대를 나와 1987년 아사히신문사에 기자로 입사, 2016년 1월 퇴사했다. 2017년에 출간한 '퇴사하겠습니다'가 일본에서 히트를 쳤고, 한국에서도 화제였다고 한다. (난 왜 몰랐지! 국내 모 방송국에서 다큐를 찍기도 했다.) 각각의 책은 퇴사하기까지, 이후 '자유인'인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뭘 먹고 사는지를 담았다. 신문 기자답게 글솜씨(?)가 좋다. 세 권을 순식간에 읽었다. 책들이 얇고 무게가 가볍지만, 담긴 생각들은 가볍지 않다. '진짜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달까...이 세 권은 이번 달에 읽은 책들 중에 가장 '강추' 하고 싶은 책들이다. 따로 글을 써볼 예정...
4. 투자에 대한 생각 (The Most Important Thing) - 하워드 막스
워런 버핏 등 월스트리트 거물들이 신뢰하는 투자 철학자인 저자의 '투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책이다. 월스트릿의 '큰손'중 하나인 저자는 메모 형식으로 고객들에게 투자 철학과 시장에 대한 의견을 보내왔다. 저자는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투자에도 철학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자신의 철학이 뭔지 말한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꽤 있어서 줄 치고, 메모하면서 읽었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의 시장은 정말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투자관점에선 재밌는 이벤트가 한둘이 아니었다. 주식 시장을 향한 대중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저금리와 학습효과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진 주식투자 방법, 정보 교환의 고도화가 점점 더 다양한 투자자들을 끄는 것 같다.
각설하고, 저자는 '투자 고수'로서 투자자가 유념해야 할 20개의 투자 원칙을 제시한다. 사실 비슷한 얘기를 하는 항목들도 있다. 심층적인 생각, 시장 이해, 리스크 이해, 리스크 제어, 주기 파악, 인내심 가지기, 저가 매수 대상 찾기, 함정 피하기, 그리고 행운도 잊지 말기. 어쩌면 당연한 소리긴 한데, 나름의 분석을 해놨다. 왜 '거인의 어깨에서 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투자 철학서.
투자에서 늘 적용 가능한 규칙이란 없다.
투자는 과학보다 예술(art)에 가깝다.
일정하고 기계적인 투자 전략보다는 직관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투자의 목적은 평균이 아니라 평균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투자자들보다 한 발 앞선 사고, 더 효과적이고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쉽게 여기지 마라.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리석다 -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5. 금융의 지배 The Ascent of Money;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 - 니얼 퍼거슨
거의 400쪽에 이르는, 꽤나 두꺼운 책이다. 언젠가 한번 금융사를 다룬 책을 읽어야겠다 벼르다가, 이 책을 골랐다. 격동의 2020년이었다. 새로운 위기는 언제나 나타나지만. 결국 솔루션은 과거를 보고 배우는 게 아니겠나. 미래를 알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금융의 역사를 읽었다. 화폐의 탄생부터 최초의 채권, 주식시장 탄생, 보험, 세계대전, 대공황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부상까지 긴 역사를 잘 풀어냈다.
6. 당신의 영혼에게 물어라 - 강준만
명언들을 통해 인간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살펴보는 책. 부담 없이 읽기 좋다. 동서양, 과거화 현재를 넘나드는 명언들이 담겨 있으니 의외로 '인생 문장'을 만날 수도 있고. 결국 인간이 제일 어렵다는 건데, 공감 공감.
나의 지식은 비판적이지만 나의 의지와 희망은 낙관적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7.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Their Eyes Were Watching God - 조라 닐 허스턴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올해 주요 이슈 중 하나인데. 그러고 보니 내가 흑인 문학을 토니 모리슨 말고 뭘 알지? 싶은 거다. 그래서 찾아 읽은 책. 저자 조라 닐 허스턴은 1900년대 초 미국 최초의 흑인 자치 도시인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자란 흑인 여성이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고, 20대 초부터 작품을 발표했다. 앨리스 워커와 토니 모리슨, 토니 케이드 밤바라로 이어지는 흑인 여성 문학의 전통에서 선구적인 위치에 자리하는 저자라고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재니 크로포드의 삶을 그린다. 세 번의 결혼을 겪는데, 한 마디로 정말 '박복한' 인생이다. 걸리는 남자마다 참.... (시대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론 100년이 지나도...)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파란만장하게 살아가는 그가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또 점점 강해지는 그를 보면서 계속 기대를 하게 된다. 어려움을 겪을수록 오히려 단단해지는 그가 대견스럽다.
이 소설은 당시의 끔찍한 흑인 차별의 사회상을 무겁게 다루거나 저항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흑인 공동체의 삶을 생생하게 다루면서, 그곳에서 일상으로 다뤄지는 차별과 원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보면 문학 작품을 읽는 데도 정말 선진국 위주의 독서를 해왔다고 느낀다(특히 어릴 땐). 더 재밌고, 더 훌륭한 작품과 작가들이 세상에 숨어(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있을 텐데 말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의 독서를 해야겠다.
아래는 이 책을 포함한 '대산 세계문학총서'의 기획의 말 일부다.
"근대 문학 100년을 넘어 새로운 세기가 펼쳐지고 있지만, 우리가 향유하는 '세계 문학'은 아직도 좁은 후미 안에 갇혀 흔들리는 잔물결처럼 빈약하다. 그 좁은 전망의 틀을 벗어나 광활하고 심원한 바다로 나아가듯, 세계 문학의 저 깊은 정신적 조류를 탐색하고, 그 조류들이 얽히며 풍요롭게 빚어내는 감성의 큰 물결들을 온몸으로 느낌으로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전존재가 세계의 바다에 합류할 수 있는 역동성을 구해야 한다."
8.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The Headspace Guide to Meditation and Mindfulness -앤디 퍼디컴
매일 명상을 하고 있는데 좀 더 기술적(?)으로 명상을 해볼까 생각으로 사본 책. 저자는 '파란 눈의 스님'으로 명상과 마음 챙김 전문가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명상 가이드'다. 언제, 어떤 자세로, 어떤 옷을 입고, 얼마 동안 명상을 해야 하는지 다 꼼꼼하게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건, 명상이 '앉아서 눈 감고 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짚어준 다는 점이다. 명상은 누워서도, 걸으면서도 할 수 있다. '명상'의 목적에 따라 접근 방법도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건 명상을 얼마나 '잘' 하느냐다.
마음이 흐트러진다면 명상이 아니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비로소 명상이 된다. 좋은 명상이나 나쁜 명상 같은 것은 없다. 마음을 알아차리느냐 자각하지 않느냐만 있을 뿐이다.
명상은 기술인 동시에 경험이다. 이는 곧 명상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려면 명상을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명상은 또 하나의 거품 같은 개념이 아니며 철학 사상도 아니다. 명상은 현재의 순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명상의 '목적'을 규정하는 일이 당신에게 달렸듯이 명상의 '경험'을 규정하는 일 역시 당신 몫이다.
명상이 단지 집중을 하기 위해서라든지, 화난 마음을 진정시키는 용도가 아니다. 결국 명상은 '마음 챙김'의 수단 중 하나다. 마음 챙김은 곧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게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물론 명상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명상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생각해보면 우리는 몸은 매일 단련하면서 가장 중요한 '정신'은 왜 단련하지 않나. 우리의 영혼과 마음도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으로 배에 쌓인 지방을 걷어내고 숨겨진 내 복근을 발견하듯, 부단한 명상으로 내 마음속 깊은 목소리를 들어보자.
내면에 다다르면 인생의 수많은 답들이 수두룩 쌓여 있다.
다만, 그곳에 다다르기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호흡을 따라 숨을 쉬며 조용히 저 가슴 밑바닥으로 가는 길.
바로, 명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술이다.
9. 시녀 이야기 The Handmaid's Tale - 마거릿 애트우드
드디어 읽었다! 이 책을 사놓고 읽겠다고 한 지가 벌써... 뭐랄까, 맛있는 과자는 제일 마지막에 먹으려는 심리랄까. 미루다 보니.. 기대했던 바만큼 역시나 훌륭한 책이었다. 꽤나 두꺼운 책임에도 금방 읽었다. 재밌다. 저자인 마거릿 애트우드(Margaret Atwood)는 페미니즘, 외교 관계, 환경 문제, 인권 문제, 현대 예술,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수많은 상을 탔고,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이 '시녀 이야기' 이후 34년 만의 후속작 '증언들'로 2019년 부커 상을 수상했다. ‘시녀 이야기'는 미국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돼 2017년 에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시녀 이야기'는 전체주의 사회 속에 갇혀버린 ('길리아드'란 가상의 국가) 한 여자의 독백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길리아드에선 여성들이 계급으로 나뉘고, 사람이 아니라 사령관(남)의 아이를 생산할 '자궁'으로 취급받는다. 극단적인 가정으로 성, 권력, 전체주의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느끼듯 '어후 끔찍해' 분노하다가도, 문득 이 '길리아드'의 현실이 그렇게나 우리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종종 스쳤다. 몇 년 전 정부가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어서 여성들은 물론이고 국민적인 비판을 받았지 않나. 또 소설에서 사령관이 주인공 '시녀'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하게 하고 '클럽'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클럽'에서 화려하게 꾸민 여성들은 마치 '상품'처럼 존재하며 오로지 눈요기 역할인데, 이게 지금 현실과 뭐가 다를까? '길리아드'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과연 '길리아드'는 완벽한 가상의 시대일까?
10. 판사 유감 - 문유석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칼럼으로 유명세를 탔던 문유석 판사의 책. 법원 내부 게시판에 써온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이분 칼럼은 읽어봤지만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확실히 '오픈 마인드'를 가진 분이란 느낌을 받았다. 지난달에 검사 내전으로 검사의 얘기를 들었다면 이번엔 '판사'가 보는 대한민국 사법 현장(?)이랄까.
* Cover Image : Photo by Link Hoa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