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수목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가는 길에 엄마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착해서 수목원을 거니는 동안에도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팥빙수를 많이 먹고 있었다. 우리는 물 하나와 아이스티 하나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아이스티는 미지근했지만 침샘이 아릴 정도로 달아서, 결국 물을 섞어 먹었다. 빙수를 먹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이가 시려서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나는 마음이 아파서 더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내 마음이 너무 약해져 있다.
수목원은 아름다웠다. 굽이치며 자라 있는 나무들은 한 여름 더위를 막아주고 있었고, 반짝 거리는 돌들 위에 덥수룩한 푸른 이끼들이 피어있는 숲길에 하얀 나비들이 무성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 좀 찍어봐. 동영상으로.” 엄마가 말했다. 강아지처럼 우리 앞에서 자꾸 멈추는 나비를 찍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처럼 살짝 웃었다. 내려오는 길에 엄마는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한참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날씨는 덥고 별 재미를 못 느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더 있고 싶었다. 수목원이 더 컸으면 좋았으련만, 2시간도 있지 못하고 우리는 서울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동생에게 에버랜드에 가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동생은 엄마와 에버랜드에 갔다. 이쁘고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을 동생이 보내줬다. 늦여름 각종 꽃들이 무성한 정원에서 동생과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고, 기념품 점에서 너무 귀여운 판다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동생은 커 보였고 엄마는 작아 보여서 더 귀여웠다. 엄마는 9시도 안 돼서 잠을 청했다.
엄마는 내 집에 계속 있었다. 저녁을 셋이 같이 먹기로 했다. 코로나로 동거가족이 아니면 2인 이상 외식을 할 수 없어 우리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워서 같이 먹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넓은 집을 구한 게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10년 전에는 우리 셋이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살았다. 엄마는 거의 대부분을 소파 아래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일을 했고 나랑 동생은 그 소파 위에 누워서 빈둥거리다 집안일을 했다. 치킨을 너무 좋아하는 아들들은 일주일에 세네 번은 항상 치킨을 사달라고 졸랐고, 나이가 차서는 먹고 싶을 때마다 지들이 몰래 시켜먹었다. 내가 따로 나와 살기 시작해서도 종종 엄마와 동생이 사는 집을 갔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빈둥대면서 동생과 엄마한테 핀잔을 주다가 역으로 된통 당하곤 했다. 엄마와 둘이 시간이 되는 날에는 주로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그냥 엄마와 장난기 많은 아들들이 있는,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가족이었다. 그런 일상이 그리웠나 보다.
2021.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