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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ung Apr 18. 2022

8. 엄마의 울음

 11월 첫째 주. 두 번째 MRI 촬영이 있었다. 전뇌방사선 치료 이후 9월에 했던 첫 검사에서는 꽤 좋은 결과를 받았었다. 당시에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그러나, 그래도. 좋아 보이는 엄마를 몇 달이나마 더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검사 결과는 매우 잔혹했다. 첫 진단을 받았던 8월의 결과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좋지 않았다. 가장 큰 종양이 자라는 방향이 뇌의 심부 쪽에 위치해있었고 개수나 영상에서 보이는 명확도도 조금 더 높았다. 


 지금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은 표적항암제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암제가 본인에게 얼마나 맞지 않고 힘든 과정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엄마는 다시 한번 치료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저녁 엄마는 퇴근한 나와 늦은 밤에 마주 앉았다. 


 "너무 무서워"라고 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삐쩍 말라 살가죽 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그 조그만 안경을 힘겨워보이게 치우고는 눈물을 닦아냈다. 눈만 충혈되는 게 아니라 주변 모든 두덩이도 만지면 델 것처럼 빨개졌다. 그리고는 힘겹게 다시 이야기했다. 이제 다시 말이 안 나오고 왼쪽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는 정말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평생을 거의 울지 않았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자주 훌쩍거리시긴 했다. 근데 다른 이유로는, 적어도 내 기억에 없다. 엄마가 나 몰래 울고 있는 것을 처음 본 것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다. 약 6년 전의 일이다. 나의 할아버지는 내 기억이 존재할 때부터 거의 20년을 계속 누워계셨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 친가 쪽 친척들, 특히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약 1년간을 요양병원에서 계시다 돌아가셨다.  나는 장손이고, 장남인 아버지가 안계시기 때문에 상주 노릇을 해야 했다. 작은 아버지가 계시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그 자리에 있어주었다.


 장례식은 힘들었다. 옛날처럼 밤샘을 하지 않더라도 빈소에서 먹고 자고 하며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위로를 주고받고 명복을 빌어드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이틀째 되는 밤. 장례식장에 흔히 있는 자판기 앞 벤치 같은 곳에서, 우는 엄마를 다독여주는 고모를 보았다. 고모는 담배를 피우러 가던 나에게 그냥 지나가라는 듯이 손짓했다. 다시 들어와 보니 금세 엄마는 다시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끼니를 챙겨 먹을 때 고모에게 약간은 상기된 채로 물었다. 엄마가 왜 울고 있었냐고.


 엄마가 그리 슬피 울었던 이유는 곡소리 때문이었다. 일가친척 중에 한 분이 곡을 하시다 나를 보고 '애비가 없는 새끼'라고 했다. 들었지만, 그분이 안쓰러워하는 마음에, 슬퍼하는 감정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지만 엄마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당시에는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게 되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 자기를 도와주길 바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당연히 아버지의 가족들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엄마는 서운함과 원망감이 컸던 상태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서러움에 무너졌다. 그동안 친가 쪽과 점점 생겨나는 거리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고. 그동안 고생했을 엄마를 생각하며 고맙고 또 미안했다. 



 

 엄마는 그렇게 본인의 서러웠던 일들을 눈물을 훔치며 맘껏 쏟아 내었다. 나는 또, 내 헤아림의 깜냥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느끼며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한 가지 만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가면,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 그리고 이모들은 되려 내가 잘 챙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주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었다.

 

 엄마는 내 옷방에서 문쪽으로 등을 돌리고 잤다. 엄마의 몸은 너무 작았다. 


 2021.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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