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업무차 찾은 제주에서 말로만 들었던 아르떼뮤지엄을 방문하게 됐다. '시공을 초월한 자연'을 주제로 빛과 소리의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미술관이었다. 화면 속 입체적으로 펼쳐진 장엄한 미디어 폭포,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자연이지만, 그 움직임은 색다른 감동으로 전해져 그야말로 실감 나는 체험장이었다.
제주 아르떼뮤지엄에 전시된 영상작품. 사진=전통플랫폼 헤리스타
몰입감 있는 새로운 경험은 보는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카타르시스(Catharsis)는 순화, 정화, 배설이라는 뜻이 있으며, 심리학에서는 억압된 감정을 진정시키는 것을 뜻한다. 문학에서는 비극의 과정을 보는 관객에게 연민과 동정, 슬픔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감정을 정화하는 효과를 의미한다.
긴장감 넘치는 영화를 보며 느끼는 통쾌함과 슬픈 영화를 보며 쏟아내는 눈물이 마음을 후련하게 할 때가 있다. 우리는 TV 드라마와 예능을 보며 열광하고,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독자 내면에 방치된 채 썩어가던 상처를 픽션의 비극을 통해 직면하고 비로소 하지 못했던 슬퍼함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주인공이 당하는 '비극'에 공감하게 되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주인공을 옹호하며 화를 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이 정화됨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인들은 감정을 어루만져서 위로해주는 것을 카타르시스라 칭했는데, 이를 현대적 표현으로 하자면 영혼을 정화하는 것을 말한다.
비극을 감상할 때 관객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이때 자기의 고뇌를 발산하고 감정이 깨끗이 정화된다는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이 인간에게 주는 효과를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카타르시스는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감상함으로써 마음속 감정을 토해내고 정화하기도 하며,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을 통하여 외부에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문화를 통한 치유가 절실한 사회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미술 작품의 감상, 독서, 공연 관람, 문화재 탐방, 스포츠 경기 응원은 불안, 우울, 무기력감을 겪고 있는 코로나블루의 치유제다.
지난 3월 13일 제주에서 비대면/온라인 페스티벌로 진행된 2021 제주들불축제. 사진=다큐멘터리사진가 김철회
2018년 서울 한강 여의도에서 진행된 서울세계불꽃축제 모습. 사진=한화그룹
백신 예방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는 아직 진행형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에서 봄꽃축제가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봄은 대부분 취소되고 있다. 드라이브 인이나 비대면, 온라인으로 변화를 꾀하거나, 코로나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을 무렵으로 연기하고 있다. 영등포 벚꽃축제는 XR(확장 현실) 온라인 페스티벌로 전환해서 가상의 봄꽃축제와 '봄꽃 온라인 세일 페스타', '봄꽃 온라인 마켓'을 개최한다. 지난해 취소됐던 서울세계불꽃축제와 부산불꽃축제도 가을 개최를 목표로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축제가 과거에는 신성한 의식이나 공동체 결속력을 위한 종교적 형태로 개최됐으나, 현대에 와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우리의 여가문화로 그 속성이 확장됐다.
축제는 사람들이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는 차원이 아니라 일상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여 심신을 위로하는 기능이 있다. 더욱이 지역경제 창출과 사회 통합을 실천한다.
페스티벌을 통해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핵심콘텐츠는 역시 예술작품이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과 예술의 결합은 더욱 강조된다. 첨단기술과 결합한 불꽃축제, 미디어아트, 실감콘텐츠는 사람들의 울적한 감성을 달래주는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지금의 삭막한 삶에 예술은 마음을 위로하고 긴장감을 풀어주고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과 연민이 예술작품을 통해 자극되면서 해방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예술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강렬한 체험이 감정의 정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사회로 연결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축제의 위로가 절실한 작금의 사회다. 코로나로 억압된 우리 마음속 응어리를 날릴 예술작품은 치유제다. 디지털 환경에 맞게 축제는 진화해야 한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첨단기술과 결합한 축제로 말이다. 사람들에게 문화는 위로이고, 콘텐츠가 희망의 선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