屛山書院
사적 제260호 병산서원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곳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화회면 하회마을 인근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그 주인이 너무나 유명한 분이다. 우리 모두가 임진왜란하면 떠올리는 인물이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인데 그를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리고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명재상 유성룡이 병산서원의 주인이다.
병산서원은 안동시내에서 하루에 서너편 시내버스가 다닌다. 그리고 관광지로 잘 조성되어 있는 화회마을 지척이기 때문에 찾아오기 비교적 편리한곳이다. 오래전에는 버스를 타고 왔었고 이번에는 자가용을 타고 편안하게 온길 이지만 병산서원 앞에 서니 내막을 잘 알아서 인지 왠지 엄숙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고향으로 낙향하여 이곳 병산서원에서 임진왜란 7년간의 전쟁을 기록한 징비록을 집필하였고 이 책을 탈고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징비록의 한문 제목을 풀이해보면 책을 직접 읽어 보지 않더라도 더 감동적이다. “미리 징계하여 훗날을 경계한다.” 책 제목이 가진 뜻인데 왜란을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을 뼈져리게 후회하고 후세에 이런 일을 또 격지 말도록 미리 대해하라는 뜻이 담긴 책이다. 의당 전쟁이 끝나고 일등 공신이 되어야 마땅한 서해 류성룡이 모든 부귀 영화를 버리고 낙향하여 써내려간 징비록 제목이야 말로 우리가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되는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생한다.
2~3장 밖에 안되는 징비록의 서문을 읽어보면 책을 다 읽어보지 않더라도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을 끝내고 나서 그 전쟁의 기록을 남겨 후세에 대비고저 했다는 그분 뜻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만 한다. 그래서일까 미국의 도움으로 동족상잔의 비극 6.25사변을 겨우 마무리하고 기적적으로 50년만에 경제적 기반을 구축한 대한민국이 자주국방을 위해 한척에 2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 건조한 현존하는 최고의 이지스 전투함, 그 3번함이 서해 유성룡함이다.
병산서원은 원래 인근 풍산현에 풍악서당이라는 풍산류씨의 사학이였다. 그걸 류성룡이 1572년 선조5년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였고 임진왜란후 낙향하여 이곳에서 징비록을 집필하였고 1613년 광해군 5년 그의 사후 존덕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1863년 철종14년 사액서원이 되었다. 또한 대원군시절 서원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중 하나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류성룡의 문집을 비롯하여 1,000여종의 문헌과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에게 꼭 와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곳이기도 한 병산서원 입구에는 양옆으로 분홍색 철죽이 화려하게 피어 있고 서원안쪽의 만대루에 올라서면 낙동강이 굽이 굽이 돌아 나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화산이 병풍처럼 펼져지는 절경이다. 중요사적지 임에도 어디에도 매표소는 보이지 않는데 서원 구석구석은 정말 잘 정비되어 있다. 병산서원은 한마디로 볼만한 곳인데 왜 이리도 마음이 짠해지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도 유성룡이 저술한 책제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막을수가 없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