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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Apr 20. 2016

영천향교

永川鄕校

시간에 쫓겨 오후5시가 넘어 찾아 갔던 적이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안에 들어 갈수가 없었다. 아쉬움 때문에 주변을 뱅뱅 돌다가 어둑해져서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고 몇 달이나 지나 다시 한 번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난번 경험 때문에 아예 영천역전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찾아 갔는데 이른 아침인데도 문이 열려있고 향교 옆에 붙어 있는 문화원은 무슨 행사가 있는지 아침부터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구석구석 구경 할 수 있었는데 이곳도 멎진 향교였다.

영천향교는 1435년 세종 17년에 대성전을 처음 만들고 1513년 중종 8년에 군수 김흠조가 중수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전란을 피해 자양면 기룡산의 성혈암으로 향교의 위패를 옴겼다가 전쟁이 끝나고 전소된 향교를 다시 지어 제 자리로 모시고 왔다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 과정을 거쳐 최근까지 남아 있는 향교라 한다. 특히 보물 제616호로 지정된 영천향교 대성전은 전란 후 1435년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목수가 중국식 건축양식을 가미하여 중수하였고 이런 이유 때문에 미세하게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건축 형태를 가지고 있다.  

여기도 거창향교처럼 근대교육에 힘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8년 향교의 전답을 재정적 기초로 사립 영흥학교를 설립하여 근대교육을 시행하고 1909년 명륜학교 로 1910년 봉명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가 일제강제병합으로 국권상실 후 1911년에 영천공립보통학교로 이관되었다 한다. 이런 역사적 전통 때문에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은 향교는 요즘도 관련 행사를 개최하는 듯한 플랜카드가 걸려있고 실제로도 시끌벅적 아침부터 활력이 넘쳐 보이는 분위기다. 

보물 제616호 영천향교 대성전을 보고 싶어 두 번이나 찾아 왔지만 현실에 맞게 변신하고 요즘도 그 기능을 잃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향교의 모습이 더 인상적 이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주택가이다. 찾는이가 없다고 덩그라니 방치해 놓고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걸어 잠가 놓은 다른 지역의 향교에 비하면 이런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주변머리가 없어 어떤 행사를 하고 있는지 까지는 자세히 알아 보지 못했지만 향교를 나오면서도 웃음이 끈이지 않는 부속건물 안이 여간 궁금했다. 

[영천향교 웹버전 사진더보기]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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