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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Mar 28. 2016

남한산성

南漢山城

우리의 뼈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문화유적은 전국에 여러 곳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남한산성만큼은 정말 잊어서는 안 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성남시에 속한 남한산성은 사적 57호 지정되어 있으며 북한산성과 더불어 수도 서울의 남과 북을 지키는 중요한 군사요새였다. 그 역사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성터라고 하기도 하고 신라 문무왕 시절 쌓은 주장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남한산성 망루

이후 우리 역사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다가 1636년 12월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급한 나머지 왕궁을 버리고 남한산성에 들어 약 한 달간 청나라에 항전하다가 결국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는 굴욕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도 모자라 당파싸움에 몰두하던 정치권은 결국 정권이 바뀐 중국 대륙의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청나라의 무력침공을 받게 된다. 

남한산성 남문

그저 입만 살아 있던 당시 양반 사대부 중심의 기득권 세력은 결국 오랑캐라 업신여겼던 청나라의 무력 앞에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굴복하고 만다. 이후에도 삶이 더 고단 해진 건 대다수 백성과 민중들뿐 기득권 세력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지 않은 채 임진왜란 이후 악순환의 역사를 반복하고 만다. 남한산성을 둘러보며 현재의 우리 현실이 남한산성으로 도망 오기 직전의 조선 인조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남한산성 행궁

뉴스를 통해 전해오는 소식은 어찌 그리 당시 역사적 사실들과 비슷한지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몇 백 년 전 뻐아픈 역사의 현장을 눈앞에 두고도 현재 우리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처럼 남한산성과 같은 문화유적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모습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남한산성 행궁

최근 남한산성 내에는 기존에 남아있던 성벽과 망루 말고 당시의 행궁으로 사용했던 유적들을 발굴하여 복원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는 좀 더 볼거리가 많아진 샘인데 정작 남한산성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단순히 행궁을 복원하는 것보다 당시의 역사적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병자호란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록관이나 추모관 같은 시설이 함께 들어섰다면 더 의미기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 남한산성 웹 버전 사진 더 보기 ]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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