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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Apr 04. 2016

광한루

 廣寒樓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역사를 500년이나 간직한 우리나라에는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문화유적이 드물다. 전라북도 남원시 한가운데 위치한 광한루원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문화유적이다. 보물 제281호로 지정된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 목조건축물로 조선 초기 재상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누각으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현재 건물은 1638년 인조 16년 재건한 건물로 이후에 정조 때 다시 한번 증축한 것이다. 명승 제33호 광한루원에는 광한루를 비롯하여 광한루 앞 연못, 오작교, 방장 정, 영 주각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처음 지었을 때 광통루 라 불렀던 광한루는 이익 공형식의 공포를 가진 누각으로 익고 사이에 화반을 배치하고 후면 중앙에 누마루에 오르는 계산을 배치한 형식을 갖고 있는 목조건축물이다. 규모도 제법 커서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장중한 느낌이다. 광한루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기둥 사이에 복합문을 달수 있도록 설계하고 여름에는 개방하고 겨울에는 문을 달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광한루 본 건물 양쪽에는 2칸의 부속건물이 있고 그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 난간을 세웠고 부속건물 내부는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남원은 지리산 북쪽에 위치한 고을이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살아 이 지역에서는 비교적 큰 고을이었고 때문에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전라도 구례를 점령하고 북상 남원성을 공격한다. 남원성을 지키고 있던 명군 3,000명과 조선군 4,000명은 왜군 6만 명과 전투가 벌어져 치열한 공성전이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명군 장수는 수하들을 데리고 도주하고 전라병사 이복남 이하 조선군 대부분이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후 왜군은 남원성을 함락하고 전주성까지 공격 호남일대를 장악하게 된다.

참혹한 남원성 전투의 역사와는 상반되는 광한루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공존하는 남원은 지금도 지역의 중심도시로 활력이 넘쳐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전주와 여수 순천을 있는 철도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최근에는 주변에 영호남을 있는 88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의 요지로 발전한 남원 시내에는 오밀조밀하게 세워진 많은 건물들과 오가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 광한루 웹 버전 사진 더 보기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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