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기도 이튿날

20250909 화요일

by 일곱째별

20250909 화요일 서각 전시 및 기도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1인 시위를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고성이 법원 뜰에 치솟았다. 경찰이 신부님께 자리 이동을 요구한 것이었다. 시민들이 앉을 수 있게 의자도 있는 곳이었다. 법원 땅과 시민 땅, 공유지를 놓고 땅따먹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평화시위하는 새,사람행진단을 경찰이 자꾸만 자극했다.


그사이 옆에선 학내성폭력 공익제보교사 지혜복의 부당해임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용산까지 도보행진이 있었다. 전날 다친 다리로 꿀잠에서 우리에게 식사 준비를 해 주던 태백 교사도 함께 있었다.


CKC08509'' 지혜복 교사 .JPG


큰뒷부리도요를 만들어 준 신유아 문화예술활동가가 왔다. 그이가 땅바닥에 놓인 신부님 서각들을 철제 망에 가지런히 걸어주니 어느새 법원 앞은 야외갤러리가 되었다. 갤러리가 꾸며지는 사이에 절이 시작되었다.

2003년 3월 28일부터 5월 31일까지 새만금 해창갯벌부터 서울까지 65일간 322km 삼보일배하셨던 문규현 신부님은 22년 후인 이젠 앉아서 고개만 숙이셨다.


삼일기도 이틀 째인 9월 9일, 우리의 절은 1회 차 15명, 2회 차 15명, 3회 차 16명.


CKC08539'' 절.JPG


연거푸 절을 하고 나니 점심시간에 17년 전 만나 10년을 함께 기도하던 옛 교회 교우가 찾아왔다. 그이가 사준 전복가자미 미역국을 먹으며 원기가 회복됨을 느꼈다.


오후 13,000배 4회 차 25명.


오후 두 시, 생명 평화를 기도하는 종교환경회의에서 하는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 촉구 종교인 기도회가 열렸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각기 다른 방식의 기도가 올려졌다.


CKC08569''현장기도회.JPG


곧이어 세 시 미사가 시작되었다. 새,사람행진단 김회인 신부님이 미사 인사말을 하셨다.


“전북지방환경청에서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을 요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어제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가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접수되자마자 곧바로 ‘한국환경연구원’과 ‘국가유산청’으로 보내어 검토 의견을 의뢰했다고 하지요.

지난주 국무총리가 전라북도를 다녀가고, 이어 환경부 장관이 새만금청을 찾은 일과 더불어

이렇게 차례차례 밟아가는 걸음을 보니 누구라도 ‘이미 정해놓은 일정을, 착착 진행해 나가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새만금 사업을 적극추진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조력발전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마치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의 모든 해결책이라도 되는 양, “조력발전을 수용했으니 나머지 논란은 퉁치자”는 식의, 장사꾼 흥정 같은 카드를 꺼내 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명의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이런 흥정은 대단히 잘못된 행보입니다.

상시 해수유통을 요구한 근본 요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관리 수위를 고집하며 추진되는 조력발전을 두고 “제대로 된 해법”이라고 내놓는 것도 문제지만, 조력발전으로 타협했으니 새만금 신공항문제까지 다 정리된 것처럼 얼버무리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새만금의 수질 문제와 신공항문제는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현안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두 사안은 엄연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한데 묶어 정해진 일정을 그대로 밀어붙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누가 봐도 유추 가능합니다. 9월 11일 서울 행정법원의 판사들을 압박하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문득 떠오릅니다.

예전,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던 때, 새만금 사업의 타당성에 수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였지만 공유수역 매립면허와 사업시행인가 취소소송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기업과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삽을 들었습니다.

바다의 숨을 막아 세우던 그날,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사법부의 법과 정의의 천칭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그들 뒤편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저만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 건 아니겠지요?)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미사의 지향은 분명합니다.

어제 문정현 신부님께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청하셨듯, 서울행정법원 판사님들이 과거와 같은 잘못, 아니 그 이상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정치권에 눈치를 보느라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허물던 바에서 벗어나 이번만큼은, 그리고 앞으로 줄곧 뭇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죄의 고리를 끊어내고 정의롭고 바른 판결하기를 청합니다.

실은 이러한 우리 모두의 지향, 걸어오며, 이곳에서 기도회를 시작하며 줄곧 외쳤던 바입니다. 이 순간 함께 지향을 드러냅시다.


새만금 신공항 취소판결하라!


그리고 미사 안에서, 미사 지향이라는 표현으로 신자든 비신자 든, 누구나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러 지향을 봉헌하곤 합니다.

오늘 특별히 미사의 지향으로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생명, 그러기에 ‘사람’ 일 수밖에 없는 이름을 불러 기억합니다.


상괭이 사람,

물수리 사람,

알락꼬리마도요 사람,

고라니 사람,

금개구리 사람,

바지락 사람,

황조롱이 사람,

양뿔사초 사람,

가마우지 사람,

줄장지뱀 사람,

칠게 사람,

검은머리갈매기 사람,

대모잠자리 사람,

삵 사람,

흰발농게 사람,

퉁퉁마디 사람,

황새 사람,

백합 사람,

검은머리물떼새 사람,

가창오리 사람,

저어새 사람,

큰뒷부리도요 사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욕망에 밀려 삶의 터전을 잃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생명,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오늘 미사를 봉헌합니다.”


인사말 안에 그간의 모든 사실과 새,사람행진단의 의견이 들어있었다.


강론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신 다음에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러곤 곧,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지요. 나이나 직업, 행색과 몰골까지 참으로 제각각이었을 것입니다. 전라도 말로 하면, 그야말로 ‘오만 잡것들’입니다. 이를 두고 군상(群像)이라 하지요. 딱,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자니 피식 미소가 절로 납니다.)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셨다고 했지요?

우리는 새만금 신공항문제가 공론화되던 순간부터 현장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녔고, 장승을 세우거나, 천막을 쳤고, 문화제를 열며, 줄곧 기도했습니다.

뭇 생명들을 불러 모으고, 더 많은 동지를 만나며,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머물기를 청하며 걸어왔던 것이죠.

그 연장선이 바로 ‘새사람 행진’입니다.

그리고 어제부터는 백배, 천배도 아닌 무려 만 삼천 배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참으로 다양하지요?

피부가 그을려 까무잡잡한 이, 또는 희끗희끗한 이, 머리카락을 팔레스타인 국기로 물들인 분, 백발의 어르신, 저처럼 배 나온 신부와 몸 탄탄한 동지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과 인생 여정을 지닌 이들이 하나의 목적을 품고 이렇게 모였으니, 이보다 더한 군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군상의 또 다른 주인공이 있습니다. 단지 인간 사람들만이 아니라, 삶을 누릴 권리를 가진 모든 생명, 모든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서 인사말에서 호명한 새사람 행진단의 이름들, 큰뒷부리도요 사람에서부터 상괭이 사람뿐 아니라 갯벌과 산, 강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 사람들, 동학혁명을 비롯한 역사의 기억, 농부와 노동자의 땀, 마을마다 삶의 방식이 달라 슬래브지붕을 한 집으로부터 수도권으로 들어올 때부터 늘어나던 아파트 켜켜이 쌓여온 기억까지—

이 땅의 모든 존재가 오늘 우리와 함께 이 법원 앞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만 잡것들’이라는 말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이 자리에 떡 하니 놓인 현실 그대로입니다.

이렇게 모인 생명 ‘사람’이 바치는 미사와 만 삼천 배의 기도. 이는 단순히 판사님들에게 읍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의 간절함을 엮어 백배, 천배, 만 배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지요.

물론, 여기에 담긴 것은 비통함만이 아닙니다.

제1독서(콜로 2,6-15)에서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기쁨과 자유의 감각처럼, 우리의 여정에도 때로는 사춘기 소녀 같은 낭만과 감성이 담겨있습니다.

천막을 치고 동고동락하며, 장승을 만들고 세우는 과정에서, 노래 한가락에 절로 나는 춤사위에서,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어우러져, 즐겁게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간절함과 처절함, 무거움과 가벼움, 기쁨과 분노가 섞여 이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오만 잡것 군상들이 서울행정법원 앞에 모인 이유?

이는 보여지는 바와 모인 이 저마다 느끼는 바로 그대로입니다. 잘못된 환경영향평가서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얼마 전 참사로 증명되었고, 객관적 자료를 잠깐 살피거나, 공부하듯 봄으로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를 말하기 위해 오만 잡것들이 모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감히 우리라 해도 되겠지요?) 같은 범인도 아는 진실을 법적 책임을 지닌 사법부라면 더욱 분명히 판단해야 합니다.

(저 창문 너머 일하시는 분들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정치적 압력을 넣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판결해 달라.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바른 판단을 내려 달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무엇입니까?

저분들이 듣도록 목소리를 모아 함께 외칩시다.


새만금 신공항 취소판결하라!


사실 사법부가 제 일을 제대로 했다면야 이렇게 보통 사람들 군상들이 모일 이유가 없겠지요.

법원 앞에는 흔히 ‘정의의 여신’이라 불리는, 눈을 가린 채 천칭을 든 여인의 상징이 서 있습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지난 새만금 역사를 돌아보면, 사법부의 천칭이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기울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3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와 관련된 가처분 신청이었습니다.

법원은 일정 기간 공사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정이 상당히 진행된 뒤라 사실상 물막이는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이미 공사가 진척되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신청은 기각되었고, 사법부의 판단은 무력화되었습니다. 법의 권위가 스스로 무너진 사건이었습니다.

오늘의 재판은 과거의 잘못을 끊고, 사법부가 본래의 정체성과 권위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지금, 정권의 이인자인 국무총리가 움직이고, 재판과 직접 관련이 있는 환경부 장관까지 움직이며 정치적 압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정부와 기업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공정한 천칭을 손에 들어야 합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이 자리에 모인 이들과 이들의 여정에 마음을 쓴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고려하여, 행정적 절차에 오류가 있었음을 선언할 때—

사법부는 비로소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권의 행보처럼 사법부를 압박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법부가 본래의 정체성을 다시금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인 것입니다.

이 오만 잡것 군중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판사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 뭇 생명들의 바람, 생명 중심의 객관적 판단을 전합니다.

새만금 신공항 취소판결하라!

(중략)

분명 공정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역사 안에서 당신의 정의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때로는 더디게 보이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처럼 느껴질지라도, 하느님께서 함께 걸으시는 이 길은 결국 생명과 평화로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의 증인이며, 오늘 이 법원 앞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와 외침이 훗날 역사의 증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가 함께 걷는 이 길 위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반드시 빛으로 드러나리라 믿습니다.

아멘.



13,000배 5회 차 20명. 둘째 날 총 8,172배. 도합 16,956회.

13,000배를 거뜬히 넘었다. 초과 달성 이후에는 계산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우리와 해당화는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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