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 사당역-서울행정법원 5.3km (누적거리 260.1km)
사당역-서울행정법원 5.3km (누적거리 260.1km)
사당역 1번 출구 - 예술의 전당 (3km)- 서울행정법원 (2.3km)
서울의 월요일 아침은 그야말로 시민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날이다. 그래서 출근 시간을 비껴 9시에 새,사람행진단 85명 내외가 사당역에서 출발했다. 인도로 걷는 건 처음이었다. 경찰기동대 1개 제대 약 20명이 우리 뒤에 있었다.
예술의 전당 국립국악원 담벼락에서 문정현 신부님의 ‘평화란 무엇이냐’에 맞춰 작곡한 조약돌이 제 노래에 맞춰 춤을 추자 행진단은 흥이 넘쳤다.
오전 11시 10분 서울행정법원 100미터 앞이었다. 새,사람행진단은 경찰이 미리 쳐놓은 철책 안으로 들어갔다. 법원 앞 100미터 내에선 집회 시위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었다. 거기서부터 한 사람씩 행진하려는데 그걸 막았다. 갑자기 딸기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왜 협조 다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는 항의였다. 내 눈에서 파바박 불꽃이 일어남을 느꼈다. 우리 딸기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을 작정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그때 완두가 나섰다.
“자, 우리는 평화 시위를 합니다. 수라풀 타령을 부릅시다. 가지가지 어디 있어?”
의연한 단장의 판단과 제안에 어느새 자리한 가지가지가 수라풀 타령을 불렀다. 앞에 있던 완두와 알알이 등이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그들의 타령과 율동을 앞에서 보기만 하던 나도 최초로 그들을 따라했다.
도요새가 왔구나 으으으으응
저어새가 왔구나 으으으으응
수라갯벌 살아있다 신공항이 웬말이냐
철책이 풀렸다. 우리는 당당히 서울행정법원 앞으로 행진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11시 30분에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가지가지와 무안공항 참사 유가족이 발언했다. 김지은 공동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발언을 했다.
그리고 문정현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맨발에 지팡이로 그날 함성의 주인공인 뭇생명을 새기며 오신 분. 그 발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호통을 치시다 사정을 하시다, 장애인이 되셨던 인혁당 사건을 말씀하시던 신부님이 갑자기 지팡이를 던지시더니 무릎을 꿇으셨다. 판사님께였다. 아니 하느님께였다. 절절해서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애절한 기자회견 후 녹색당 나무와 꿀잠의 비건 카레가 제공되었다. 색과 맛이 일품이었다. 일주일 만에 맛있게 다 먹은 식사였다. 이날 내 두 번째 책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를 출판한 출판사 ‘책과이음’ 대표가 오셨다. 투고 원고 전달 차 행진 응원하러 오신 줄 알았다. 그런데 식사 후에 차 마시며 그분이 내민 건 내 세 번째 책 <가장 느리고 낮은 걸음으로> 계약서였다. 좀 전 기자회견에서 무릎 꿇으신 신부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혼란의 도가니에 있던 내게 드리운 예상치 못한 행운의 두레박이었다.
오후 세 시에 행정법원 앞 첫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딸기의 외침이 있었다.
“(상략) 12만 마리 도요물떼새들이 수백수천 마리가 되는 동안 그들이 쫑쨍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동네 참새같이 취급 받던 새에서 멸종위기종이 되는 동안 이 법원이 도대체 무슨 판결을 내린 것인가. 개화도 갯벌에 어렸을 때 갔을 때 아직도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너무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의 법원과 지금의 법원은 다르다고 260km를 걸어 오늘 이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하고 절하고 호소하고 간절히 요청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때 앰프가 고장났다. 그러자 딸기의 외침은 절규가 되었다.
“(중략) 20년 전의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생명들이 증언하고 있음에도 오늘 새만금신공항 취소하지 못한다면 왜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무슨 희망을 갖고 누구한테 기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말 못하는 생명들의 이야기를 어디에 가서 전한단 말입니까.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 이제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살아있는 뭇 생명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260km를 걸어온 우리가 이제 9월 11일 목요일 판결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미사와 1인 시위와 절 뿐이었다. 큰뒷부리도요가 뉴질랜드에서 새만금 거쳐 알래스카까지 가는 거리 13,000km의 상징으로 일만삼천 배를 하기로 했다.
1회 차 72배 28명, 미사 후 2회 차 72배 37명, 3회 차 72배 27명. 4회 차 30명.
그중 나는 2, 3회 144배를 올렸다.
이날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서가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되었다. 전북지방환경청은 접수되자마자 한국환경연구원과 국가유산청에 재보완서를 보내고 검토의견을 의뢰했다. 이번 주나 다음 주에 검토의견이 오면 전북지방환경청이 바로 협의를 할 듯했다. 판결을 코앞에 두고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
우리가 이 날 올린 절은 8,784회.
언제 채우나 했던 13,000배는 다음 날인 이틀 만에 거뜬히 달성할 수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