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목요일 13시 40분~
새벽 6시 반, 꿀잠에서 아침을 먹는데 다들 패소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향후 어떤 식으로 싸울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당장 그날 아침에 절을 할 건지 말 건지도. 그때 내가 말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끝까지 절해야죠.”
그리고는 기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지난주에 양해를 구하고 미리 수업을 해두었으므로 강의를 단축하고 택시와 기차와 지하철로 약 두 시간 만인 오후 한 시 10분에 서울행정법원 앞에 도착했다. 선고 시각이 13시 55분에서 40분으로 앞당겨졌고 허용 방청객이 30명에서 20명으로 줄어있었다. 행진에 전일 참가하고 밤샘 집필로 매주 주간새,사람호를 발간했는데도 그 20명 명단에 나는 없었다. 하지만 법정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방청객으로 선발된 인디가 “별님이 대신 들어가 주면 고맙겠어요.”라고 말했다. 어쩜 편집디자인과 옷 입는 센스와 더불어 말도 그리 이쁘게 할까? 잠시 후 가지가지도 내게 못 들어가면 자기가 바꿔주겠다고 했다. 누군들 역사의 현장을 보고 싶지 않을까? 이렇게 착한 사람들과 함께 행진했다니, 새삼 고마웠다. 인디의 선한 양보로 방청권을 얻어 B220호에 들어가 앉았다.
법정에는 캠코더 두 대가 방청객을 향해 설치돼 있었다. 패소 후 폭동을 우려한 것일까? 오동필 시민생태조사단장이 판사에게 양쪽을 촬영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지만 꺼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판장 이주영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상략)
결국 피고는 충분한 검토와 조사, 합리적인 이익형량을 통해 이 사건 사업을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지역균형 발전)이 이 사건 사업으로 인해 침해되는 공익 또는 사익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나, 이는 이 사건 사업부지의 조류충돌 위험의 근거 없는 축소 평가, 평가된 위험요소의 입지 선정 절차에의 미반영, 이 사건 사업이 서천갯벌 및 서식 조류 등에 미치게 될 영향의 부실 검토, 환경 훼손 정도를 저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단정으로 인해 이 사건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항공안정성에 문제가 없고 생태계 등에 별다른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일부 악영향이 있더라도 저감방안을 통해 이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른 뒤 그와 같은 결론을 전제로 이익형량을 수행한 데서 비롯된 것이므로, 객관성과 합리성을 결여하여 부당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 계획은 계획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하략)”
아악~ 정숙해야 할 법정에서 숨죽인 탄성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주영, 문지용, 고철만 판사는 퇴장했고 법정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법정에서부터 그리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전주에서부터 서울까지 큰뒷부리도요를 앞세워 새와 조개와 뱀과 잠자리와 풀과 고라니와 상괭이가 되어 260km를 걸었다. 그날 아침까지 3만 배 넘는 절을 했다.
신부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각을 하셨다. 그리고 그 작품을 전시하셨다. 그분 곁의 영길 샘은 색색 과일과 음료와 식사 준비로 먼 길 걸어온 우리의 피로를 회복시켜 주셨다. 큰뒷부리도요를 모시고 자전거를 타며 각종 발언하던 알알이의 알록달록 바지는 급기야 찢어졌고, 종일 방송하며 행진단을 인솔하고 매일 수라의 외침을 쓰던 딸기의 목은 쉬어버렸고, 맨 앞에서 경찰과 대화하며 우리를 이끌던 더덕의 얼굴도 거칠어졌다. 안전과 노래와 아재 개그와 팽수까지 담당하던 가지가지와 완두·김연태 단장님의 얼굴과 팔은 새까매졌고, 안전을 담당하고 매일 행진단을 계수하던 니키의 얼굴도 붉다 못해 검어졌다.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나 열에서 벗어나 촬영하는 나를 보호해 주며 행진단을 호위하던 망기와 맨 뒤의 민주, 그 뒤의 차량 운전자 다운, 고프로 카메라로 종일 촬영하며 급한 연락 친절히 받아주던 오이, 행진단이 잠시라도 심심할까 봐 쉬지 않고 흥을 돋우던 해당화와 청명과 작두와 흑미, 엄마께 드렸던 선물이었던 자전거를 빌려줘 큰뒷부리도요를 모시게 해 주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도배하던 샘, 밤낮없이 세계연대와 의료진을 조합해 준 리건, 후방에서 언론조직과 보도자료를 담당한 펭귄과 행진단 희진,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연대하면서도 문화제와 삼일 기도에 연주와 노래를 한 해남의 나무, 세계연대를 이끌어낸 고사리와 마리아, 무거운 카메라 들고 샌들로도 마라토너처럼 뛰어다니고 행진 끝남과 동시에 영상을 만들어내는 불철주야 공룡 설해 감독, 안전과 촬영을 담당해 매일 행진 후 그의 사진이 궁금했던 토니와 행진 끝나면 종아리가 얼마만큼 검어지나 궁금했던 인디. 우리 모두는 가마우지 친구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까매졌다. 특히 인디는 매일 행진과 매번의 절과 더불어 매일 밤 수라의 외침과 오늘의 정리 등 웹자보와 주간새사람호 1, 2, 3, 4호를 발행하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아마 그는 일 년 치 에너지를 이번 새,사람행진 한 달에 다 쏟아부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안동에서 장비 들고 와 나무와 강을 배경으로 사진관을 차려주던 재깍재깍, 서울에서 오간 세현, 무밍과 캄캄밴드, 전주에서 오가며 틈틈이 행진한 오디와 콩알과 팽수들. 그리고 우리가 한달 내내 입은 '수라살다' 앞치마를 17벌이나 재단하고 바느질하고 쪽물 들인 마후라와 와사비스튜디오 등등 그 외 일일이 거론하지 못하는 모든 행진단원들. 이번 새,사람행진에 참여한 누구인들 나중을 위한 기운을 남겨두었으랴. 그리고도 경광봉이 그리는 호와 직선이 예술이던 해초는 가자지구의 평화를 위해 배를 타고 간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 나는 수라갯벌에서 말했던 대로 260km 넘어 이번 행진에 306km를 걸었으며 그것으로 3,030.24km를 걸었다. 3천 km 걸으면 걷기 관련 책을 내도 될 듯했는데, 정말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새,사람행진이 내 도보순례 기록을 위한 순례는 아니었다. 대추리에서, 강정에서 항상 지는 싸움만 했다고 말씀하시던 문정현 신부님. 그분께 꼭 한 번은 이기는 싸움을 하게 해 드리고 싶었던 게 내 소망이었다. 2019년 10월에 평화바람을 만나 6년 만에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것으로 족하다.
수라갯벌의 뭇생명이 되어 300km를 걷고는 다시 인간 이야기를 하는 게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새,사람행진은 인간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내 고향 서울과 사람을 떠나 산 지 5년, 내 발로 걸어 점점 서울과 가까워지면서 30년 전 교회 찬양예배 때 치던 탬버린을 다시 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다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새,사람행진을 마치며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 보너스 ~
이번 새,사람행진에서 알게 된 노래 <나의 낡은 캐쥬얼화>
https://youtu.be/DxRXx2PG6nU?feature=shared
그냥 너를 노래하고 싶었을 뿐야~
그냥 너를 노래하고 싶었을 뿐야~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80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