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2 주일 무안공항
11월 2일은 천주교 위령 주일이었다.
평화바람이 무안공항에 간다기에 오전 11시 30분까지 군산으로 갔다. 먼 길 채비도 분주한데 식탁에 구운 소고기·송이버섯·마늘과 박대가 차려졌다. 날 위한 밥상이라고 했다. 혼자 굶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보신(保身)하러 큰언니네처럼 찾아오라며. 먹먹했다. 산해진미도 때론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맛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호들갑스러운 맛 표현이 언어로 나오지 못하고 꿀꺽 삼켜진다. 겉으론 털털한 척 무심한 척해도 허다한 날 숱한 사람들을 만날 텐데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극진한 정을 쏟는 평화바람이니 179명 참사 현장인 무안공항에 어찌 가보지 않을 수가 있으랴.
무안공항은 작년 12월 29일에 참사가 나고 3주 후인 1월 19일에 혼자 조문하러 갔던 곳이었다. 겨울학기 매일 수업 기간 중 심야에 참사 소식을 알았다. 다음 날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묵념을 했고, 종강하자마자 200km를 달려갔었다. 다음 날 올라오는 길에 전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 제26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마지막 월요 미사에 갔었다. 그 월요 미사를 반년 전인 7월 22일부터 매주 봉헌했던 평화바람은 올해 8~9월 새,사람행진에서 유족을 만난 후 추석에 무안공항에 갔다. 그리고 11월 첫 주에 광주와 전주 등지와 연합해 미사를 열었다. 그렇게 2025년 11월 2일 토요일 정오에 평화바람 차를 타고 문정현 신부님, 완두, 오이, 딸기와 함께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첫 추모미사에 100명 넘게 모였다.
미사 중에 유독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 있었다. 문정현 신부님이 그분에게 다가오시더니 손을 뻗어 달래셨다. 엄숙한 미사 중에 이동하는 신부님의 모습에서 신약 성경에 나오는 가슴 아픈 인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예수님이 연상됐다. 그 여인은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2기 김유진 대표였다. 그분이 눈물로 발언했다.
“……그러나 저희 유가족들은 혹시라도 그분들이 돌아가신 이유가 저희가 지은 죄 때문에 (울음) 저희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10개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참사와 마찬가지로 저희 참사는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고 10개월 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정부는 오히려 덮으려고만 하고 단순히 교통사고 정도로만 치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순간은 저희 가족들이 돌아가신 이유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저희의 죄로 인한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서,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또 누군가의 불행을 막고 여기 계신 분들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일들이 되도록. 그것만이 저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 사랑하는 남동생까지 세 분이 모두 이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야기가 가장 슬픈 이야기가 아닌 게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지 (울음) 응원해 주시고 이 사고가 잘 밝혀질 수 있도록 여러분이 힘을 보태주시고 앞으로도 같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에 맷돌 하나 내리누른 듯했다. 진상규명 촉구와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부르짖는 분노가 아니라 자책이라니. 유족의 죄책감은 피해자 심리 중 대표적인 하나이다. 나 역시 과거에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로 인한 유족이었다. 슬픔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합리화를 위해 자학으로 변하기 쉽다. 참사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을 때,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을 때 결국은 가장 손쉬운 자신을 벌하는 참담한 심리. 그래서 참사는 사망자와 부상자만의 사고가 아니다. 일련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에게까지 미치는 피해를 환산하면 피해자는 179명에서 1,790명, 17,900명, 179,000명……. 그렇게 미처 잡을 수 없는 물살처럼 확산된다. 세월호 참사 때 전 국민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은 것처럼. 그러므로 참사는 반드시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특히 국민재난안전사고는 더더욱. 그런데 저열하고 잔혹한 인간들은 유족에게 2차 가해를 한다. 보상금 때문에 저런다고.
문정현 바르톨로메오 신부님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유족들이 외칠 때 귀를 쫑긋 하고 들었다고 하셨다.
“……보상 문제 한 마디도 안 나오던데? 진상을 밝혀라. 진상을 규명하라. 그 얘기만 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에는 우리 교회가 이런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 외면해선 안 된다, 함께 아파해야 한다, 그런 말로 꽉 차 있습니다.
오늘 참 잘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왔어도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만은 그렇더라도 이 아픔을 외면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더 크게 위로해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은 무안에 그냥 오지 않으셨다. 참사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글귀를 새긴 서각을 만들어 전달하셨다.
‘힘을 내어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아직 1주기도 되지 않은 유족이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굳게 가질 수 있을까. 그리되기를 강복(降福)하는 신부님들의 마지막 기도 후 해남의 나무는 공선옥 작가 시 낭송에 맞춰 키보드를 연주했다. 이어 노래도 했다. 지난겨울, 동안거(冬安居) 중 무안공항 참사 소식을 듣고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나무. 이제야 그 애가(哀歌)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안으로 가는 길에 혼자 속으로 이번 위령 미사를 기점으로 1주기 때까지 매주 미사를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들과 유족들이 의논하더니 정말 그렇게 추진되었다. 거기엔 누구보다 먼저 매주 올 수 있다고 한 전주 유영 신부님의 공이 컸다.
가고 오는 길에 사고 현장을 지나쳤다. 둔덕이 그대로 있었다. 기사 하나가 기억났다.
경향신문 1월 21일 자에 따르면,
'올 1월 21일 손창완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손 전 사장은 21일 오후 6시3분쯤 경기도 군포시 아파트에서 숨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 등의 타살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대학장 출신의 손 전 사장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2018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지냈다.
한국공항공사는 2020년 무안국제공항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개량 공사 설계용역을 발주했다. 개량 공사는 2023년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진행됐다.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 위 방위각 시설은 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토부는 올해 4월 30일 ‘항공안전 혁신방안’에 따른 전국 7개 공항의 방위각 시설 개선 작업을 내놓았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일 먼저 포항경주공항에서 8월 25일부터 9월까지 둔덕을 철거하고 경량 철골로 교체한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 기초대 개선공사를 했다.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실 제공 자료를 보니 현재 광주공항은 철거가 끝났고 여수공항은 콘크리트 둔덕은 철거했지만 4m 둔덕이 존재하고, 사천과 김해공항은 콘크리트 기초대 제거, 제주공항은 H형 철골 교체로 2026년 8월 착공 예정이다.
지난 10월 20일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사고 110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2·29 여객기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반쪽짜리란 것을 알게 된 유가족들은 5월 협의회를 구성했다. 특별법에는 진상규명에 대한 내용은 없이 추모와 지원에 관한 것만 담겼다. 김유진 협의회 대표는 “10개월 기다린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의 조사 결과가 ‘조종사의 과실이다’뿐이었어요. 관제 기록 일부, 관제사와 조종사 통화 기록 일부만 보여주면서 (받아들이라고 하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어요. 국토부 소속 사조위가 어떻게 제대로 (국토부에 대한) 조사를 하겠어요. 아직도 전국 공항에 둔덕은 그대로 있어요”라며 사조위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할 것과 독립 조사기구 구성, 유가족의 조사·검증 참여 보장 등을 강조했다.’
공항 길 건너는 습지였다. 철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습지. 그곳은 갯벌이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정식으로 하지 않고 건설에 급급한 국토부가 애초에 잘못 선정한 공항 부지는 원래 철새도래지였다.
올 1월 13일 월요일 전북도청 앞 오후 3시 제25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 미사 후 새만금신공항공동행동 김나희 홍보국장이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애도로 시작한 발언이 새삼 떠올랐다.
“무안공항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들이 발견됐어요. 원래 조류 충돌은 미리 조사해서 조류 충돌이 별로 없어야 하는 지역에 공항을 지어야 안전할 텐데 (중략) 무안공항은 겨우 9일 했고, 몇 마리인지조차 제대로 기록이 안 되어있고, (비행) 높이와 방향은 말할 것도 없고, 조사 대상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조류 서식지가 있는지도 조사도 전혀 되어있지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 다음 날에 조류 전문가와 함께 가서 봤더니 그냥 가창오리가 20만 개체가 한 번에 날아가는 게 보이는, 그런 어마어마한 조류 서식지였습니다.
여러분이 지도에서 무안공항을 보시면, 그냥 바로 앞에 무안갯벌이 붙어 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법에도 8km 이내에 조류 보호구역이 있으면 안 되거든요. 우리나라 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무안공항 인근에 그런 여러 가지 보호구역이 9개가 있고요.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인 신안갯벌도 8km 이내에 있고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어있는 무안 갯벌도 1km 이내에 있습니다. 조류 서식지 바로 위에 공항을 지은 거예요.
새들이 살고 있는 곳에 공항을 지어놓고 조류 충돌이 일어나니까 조류 퇴치해야 된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 새들은 우리가 보호해야 되는 멸종위기종이거든요. 법을 어겨가면서 공항을 엉터리로 지어놓고 이 새들을 퇴치해야 된다, 멸절해야 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구요.
새만금신공항, 제주제2공항, 흑산도공항, 백령도공항, 서산공항, 가덕도공항까지 8km 이내, 좀 더 넓게는 13km 이내에 조류서식지가 없어야 되는데 없기는커녕 조류서식지 자체 위에 공항을 짓고 있습니다. (하략)”
철새들이 가득한 곳에 공항을 지어놓고 콘크리트 둔덕을 만들고는 조종사의 과실이라니. 많은 이들이 보도를 통해 조종석 기장의 최후 모습을 보았다.
2025년 1월 2일 YTN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일이었던 12월 29일 오전 9시 3분,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7C 2216편 기장 한 모 씨(45)는 6800시간이 넘는 비행 경력을 가진 공군 출신의 베테랑으로, 동료들 사이에서 "안전에 대해 타협하지 않던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조류와 충돌한 비행기를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착륙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팔을 뻗은 기장의 모습이 영상과 사진으로 버젓이 남아있는데 그의 목숨 건 책임감에 무슨 모욕이란 말인가.
사고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기 위해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및 관련자 모두 진실의 거울에 자신을 정직하게 비춰야 할 것이다.
https://www.gilmokin.org/board_02/27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