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의 추모 2 -故 강태완 1주기

20251111 화요일 전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by 일곱째별


2025년 11월의 추모 22025년 11월의 추모 2

202025년 11월의 추모 2

11월 8일은 故(고) 강태완 1주기 추모일이었다.


작년 11월 8일, 다섯 살 때 몽골에서 엄마 따라와서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26년을 살아온 강태완이 5년 근무 한국 국적 취득 조건으로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일하다가 8개월 만에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와 친구가 엄동설한에 회사를 상대로 외롭게 싸우던 겨울 12월 2일, 전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 제19차 새만금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 미사에서 그들을 만났다. 8일 후인 12월 10일에 다행히 노사합의가 되어 35일이나 미루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나는 12월 15일 산본 원광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태완을 만나자마자 보냈다. 그렇게 잘 끝났는 줄 알았다.


1년이 지났다. 사망일 하루 전인 11월 7일 오후 1시 국회 소통관에서 고 강태완 님 1주기 추모 기자회견이 있었다. 11월 8일 오전 11시에는 산본 정각사에서 유족과 지인이 1주기 기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오전 11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청년노동자 故 강태완(TAIVAN)님 1주기 중대재해 신속 수사 촉구 기자회견이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들이 있던 것이다. ‘강태완을 추모하면서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일들을 상기하는 자리’ 셋 중 나는 전주로 갔다.


먼저 고인의 친구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이 경과보고 및 수사 촉구 발언을 했다.


“2024년 11월 8일, 전북 김제시 소재 특장차업체 HR E&I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32세 청년 노동자 강태완(몽골명 Purevtseren Taivan) 님이 산재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강태완 님은 HR E&I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개발 중이던 10톤짜리 텔레핸들러를 시험하기 위해 해당 장비를 리모컨으로 조작하며 이동시키다가 경사로에서 미끄러지는 장비와 뒤쪽에 줄지어 야적되어 있던 고소차 사이에 끼어 숨졌습니다. 강태완 님이 HR E&I에 입사한 지 8개월 만에 벌어진 끔찍한 재해였습니다.


사고 순간이 담긴 CCTV 영상과 현장을 목격한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당시 강태완 님은 리모컨으로 텔레핸들러의 방향을 전환하려고 했지만 리모컨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강태완 님의 기숙사에 있던 주간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텔레핸들러와 리모컨 사이에 통신 단락 현상이 수시로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며 통신 단락을 대비해 긴급정지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고 당일까지 긴급정지 기능은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는 회사가 그러한 상황에서 텔레핸들러를 경사로에서 이동시키도록 하면서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충분한 작업 공간도 확보해 놓지 않았던 것이 강태완 님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태완 님의 산재 사망 사고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만 다섯 살의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몽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경기도 군포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성장기를 보내고 고교 졸업 후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지내다가, 가까스로 체류자격을 얻고 대학을 졸업한 후 안정적인 체류자격을 얻고, 영주권을 따고, 귀화를 하기 위해 전북 김제로 내려왔던 강태완 님의 고군분투기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강태완 님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한 달이 넘도록 사과와 합의를 거부한 HR E&I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강태완 님의 산재 사망 사고의 진상이 밝혀져 책임자가 처벌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강태완 님이 떠난 지 1년이 넘도록 아직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조사는 마무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는 강태완 님이 산재로 사망한 지 6일째 되던 2024년 11월 14일, 이곳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강태완 님의 산재 사망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저희는 지청장 면담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중대재해 수사 절차를 따라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문의한 결과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길어지면 2~3년도 걸릴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오늘 다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강태완 님은 충분한 작업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긴급 정지 기능과 같은 필수적인 안전장치를 장착하지 않은 장비를 시험하다가 끼임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는 HR E&I의 안전 불감증에서 기인한 명백한 인재입니다. 강태완 님의 산재 사망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이러한 터무니없는 인재로 또 다른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의 수사는 철저하고도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루빨리 중대재해를 초래한 책임자가 처벌받고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 수립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 정부가 강태완 님의 비극적인 죽음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故강태완 님 1주기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 기자회견


이어 이민경 민주노총전북본부장과 박영민 민주노총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공인노무사가 발언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저는 강태완의 엄마 엥크자르갈입니다. 지난 토요일은 제 아들 태완이가 산재사고로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된 날입니다. 아들의 첫 제사를 지내는 제 가슴은 너무도 아팠습니다. 아들이 제 옆에 없다는 게,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태완이는 저 때문에 비자 없이 살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갈 수 없었고, 핸드폰도 못 만들고, 카드도 못 만들고, 운전면허도 딸 수 없었어요. 한 마디로 젊은 사람답게 살 수 없었어요. 하지만 태완이는 한 번도 저를 원망하지 않았어요. 정말 착하고 듬직한 아들이었어요.


태완이는 서른 살이 돼서야 겨우 비자를 받을 수 있었어요. 비자를 받고 대학에 가서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졸업하고 나서는 자동차 회사의 연구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26년을 같이 살았던 경기도 군포가 아니라 전북 김제에 가서 취직했어요. 전북 김제에 가면 5년 안에 영주권을 따고 귀화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 아들이 취직한 지 8개월 만에 산재사고로 사망했어요.


태완이가 취직하고 나서, 저는 태완이랑 전화할 때마다 일이 위험하지 않은지 물어봤어요. 태완이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고 했어요. 저는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 아들이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저는 정말 알고 싶어요.


지금 태완이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는데 노동청에서는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해요.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해요. 내 아까운 아들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잘못한 사람을 감싸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조사가 오래 걸리는 건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을 해주면 좋겠어요. 또, 회사에서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무슨 대책을 어떻게 세웠는지도 모르겠어요. 회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알려주면 좋겠어요.


태완이는 죽었지만, 다시는 누구에게라도 태완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고, 잘못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렇게 해주세요.”


어머니와 친구


기자회견문 낭독으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강태완 어머니의 제안으로 함께 근처 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자 어머니는 또 함께 차를 마시자고 하셨다. 외아들 없는 빈집에서 텅 빈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밥과 차를 사주며 이야기하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 그이는 아들의 휴대전화기를 사용하고 계셨다. 그 전화기에는 아들의 추억이 아직도 체온처럼 남아있을 터. 어루만지는 손길에서 애달픈 모정이 느껴졌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어머니 허리춤에 매달린 아들의 것이자 어머니의 것이 된 휴대전화기에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전주 독립책방 토닥토닥 주인과 고객들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설이면 산본 댁까지 가서 몽골 만두를 함께 먹는다는 그들. 아들 없는 빈자리를 채워주는 또 다른 새 자녀 혹은 친구들. 그들은 한국 국적이다. 어머니가 29년을 같은 땅에서 살아도 취득할 수 없는 국적을 그들과 나는 태어나면서 저절로 갖고 있었다.


어머니와 친구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그들의 자녀인 미등록 이주 아동은 노동현장과 학교와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당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 7일 국회소통관에서 낭독한 故 강태완 님 산재 사망 1주기 추모 기자회견문 일부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1991년 한국이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에게 차별 없이 권리를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의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은 여전히 이주아동에게 안정적인 거주 자격이 아닌 임시적 체류만을 허용하고 있다. 강태완은 사망하기 3주 전, ‘Let Us Dream: 지금 여기서 꿈을 키우는 이주아동’ 영상 촬영을 통해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을 호소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주아동이 불안정한 신분으로 한국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청년 강태완처럼 이 땅에서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주아동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정부 지침이 아닌 법제화를 통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강태완의 죽음은 안전 관리 의무 소홀로 발생한 명백한 인재이기도 하다.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불과하지만, 산업재해 사망자 중 이주노동자의 비중은 10%가 넘는다. 노동환경의 개선 없이 위험한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는 ‘위험의 이주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사업주의 안전 의무 위반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상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국가에 다음을 촉구한다.


첫째,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즉각 마련하라!


둘째, 임시 구제대책이 아닌, 미등록 이주아동의 정규화를 위하여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라!


셋째, 고 강태완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상 신속한 수사를 진행하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라!



https://www.gilmokin.org/board_02/27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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