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일 월요일 제암산 휴양림~보성버스터미널 12km
2026년 3월 2일 월요일 제암산 휴양림~보성터미널 12km
2월 마지막 날 새벽 4시에 <낮고 느린 걸음으로> 네 번째 교정 원고를 송고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 길을 떠났다.
3·1 민주구국선언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해남으로 갔다.
이틀 후 강진 옆 장흥으로 길을 떠났다. 5년 전 남도 순례 때 건너뛴 길을 마저 잇기 위해서. 여느 때처럼 비가 왔다. 이상하게 도보순례 첫날에는 거의 그랬다. 미처 일기예보를 확인 못 해 우비를 준비하지 못했다. 다행히 카메라 가방에 쓰고 버리지 않은 1회용 얇고 파란 비닐 우비가 있었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썼다. 2021년 6월 18일 흐린 날, 제암산으로 들어가 휴양림을 지나 보성으로 가려다 깊은 숲 속에서 자전거 임도를 따라 사자산으로 나왔었다. 그래서 이번엔 제암산 휴양림에서 출발했다.
휴양림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와 왼쪽 보성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1차선 차도 옆에 인도가 없어서 역주행 방향으로 걸었다. 양쪽으로 아름드리 벚나무가 나란한 길이 나왔다. 대산리였다. 가다 보니 왼쪽에 농로가 있길래 그 길로 올라갔다. 농로는 가다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아 웬만해선 들어서지 않는데 이번엔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얼마쯤 갔을까?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으로 돌아보니 조립식 주택 앞에 파란 개집이 옆으로 넘어져 있고 개는 물구덩이에 발목까지 잠긴 채 있었다. 얼른 울타리를 돌아 집 앞으로 들어가 개집을 일으켜주었다. 쇠꼬챙이에 걸린 개의 목줄은 쇠줄이었는데 길이가 1미터도 채 되지 않게 꽁꽁 묶여 있었다. 나는 자전거 주행용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꽤 좋은 것이었다. 장갑 낀 손으로 흙탕물에 잠긴 줄을 잡아 묶임을 풀려고 했다. 물에서 지린내가 올라왔다. 발 옆을 보니 황토색 똥이 무더기로 수면 위에 올라와 있었다. 똥오줌 물에 장갑이 닿아 젖었다. 하지만 끈을 풀진 못했다. 주머니에는 개에게 줄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해주기로 마음먹고 떠나야 했다. 그때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를 걷다 보니 ‘또 다른 이야기’라는 펜션 간판이 있었다. 내 상황을 말해 주는 듯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내가 탈핵이라는 기치를 들고 걸어온 지 8년. 이젠 또 다른 이야기를 쓸 시기가 온 것인가.
휙, 바람이 불었다. 들고 있던 우산이 날아가 밭고랑 고인 물에 떨어졌다. 얼른 잡지 못한 채 바람이 불자 뒹구르르 굴러 더 멀리 갔다. 마음도 붙잡을 힘이 없으면 그렇게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냉큼 잡았으면 밟지 않아도 됐을 진흙을 밟고서야 우산을 건질 수 있었다.
마음, 예상치 못한 모진 일들을 겪고 무너져버린 내 마음. 밤에 누우면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려 베개를 적시던 날들, 뭐든 위로가 될 좋은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던 불면의 밤을 지나 나는 살기 위해 다시 길 위에 섰다.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시편 88:18)
영어로 보면 좀 다르다.
You have taken my companions and loved ones from me; the darkness is my closest friend.
당신이 내 동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게서 빼앗아 갔으니, 이제 어둠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정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은팔찌가 끊어졌다. 2021년 12월, 남은 절반의 남도 순례를 완주하기 위해 먼 길 떠나기 직전 해남 대흥사 일지암 주지 스님이 왼쪽 손목에 채워주셨던 은구슬 염주.
“차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팍 끊어져 흩어지는 날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오래 차고 다닌다 해도 가늘디가는 내 손목보다 헐거운 그 염주가 끊어질 리는 만무했다. 그런데 그 염주가 4년만에 정말로 내 눈앞에서 줄이 끊어져 은구슬이 산산이 흩어졌다. 업장이 소멸하고 시절 인연이 끊어진 걸 보여주는 계시 같았다.
‘마리옹은 예술작품을 포함해서, 앞서 제시한 포화의 네 가지 방식(예술작품, 역사적 사건, 살(메를로 퐁티의 후기 개념과 분명한 근친성을 가지는 개념-필자 주), 그리고 아이콘(또는 얼굴))을 종합하는 포화의 다섯 번째 양상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그것이 바로 계시 revelation이다.’
‘계시는 주어짐의 유 genus의 예시이자 경험 안에서의 지속적 가능성으로 정립된다.’
‘결국 마리옹은 프리드리히 셸링의 계시에 대한 이해를 인용한다. “이 사건에 관해서, 그것은 더 이상 확증될 수는 없지만 발생되고,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원초적 사실……, 탁월한 일어남의 사실이다.”
“탁월한 일어남”으로서의 계시는 의미작용을 거부하고 개념성을 압도해 버리는 보다 더 일반적인 경험의 형태로 주어진다. 실제로, 마리옹이 그의 여러 작업에서 명확하게 제시한 것처럼, 계시는 모든 경험 안에서의 가능성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와인을 마시고, 정원을 가꾸고, 타인을 만지거나 죽음을 증언하는 일을 통해서 주어진다. 계시는 매일의 경험의 항구적 가능성으로 주어지고, 본성이나 기원에 있어서는 종교적일 필요가 없다.’ (예술로서의 삶, 니체에서 푸코까지, p. 326, 327)
암담한 나날을 보내다가 갑작스레 걷게 된 이 날 걸음에는 화두가 있었다.
‘집착’이었다. 내가 어디에 집착하는지. 그 집착을 알고, 내려놓을 수 있는지.
내 머릿속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날까 봐, 내가 버려질까 봐, 나만 남겨질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웅치면사무소는 대체 공휴일로 휴무였다. 그 앞 쉼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려고 마스크를 내리는데 아차 아까 개 목줄 풀어주러 똥오줌 물에 담갔던 장갑 낀 손으로 마스크를 내렸구나. 온갖 병균이 입속으로 들어올까 심란했다. 어설퍼도 어설퍼도 어쩜 이리도 하는 짓이 다 변변치 못할까.
웅치우체국 앞 폐교는 우체국 트럭이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여순사건 보성 웅치면 희생자 위령비가 있었다. 어느 논 너머 저 멀리 산 중턱에는 나무를 베고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 흉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피의 역사와 숲의 상처, 보성의 단면이었다.
성봉 지나 채석마을, 연향구암마을, 장변 지나 예동 정류장에 잠시 앉아 물을 마셨다. 맞은편에 낮은 배롱나무가 있었다. 아직은 작고 헐벗은 나무. 전국의 배롱나무를 모두 찾아다닐 듯하던 지난 수년. 지금도 미처 구해주지 못한 배롱나무가 아직 가슴에 남아있다. 카메라 안으로 스며든 습기처럼 몽환적으로.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우산은 앞으로 숙여 밀고 나가면 발을 떼기가 어렵고 약간만 각도를 틀면 뒤집힐 듯하다. 우산을 접어들고 걷다가 다시 펴고 걷기를 반복했다. 저항과 수용의 지점을 분별해야 한다.
어느 지점부터였을까. 욕망이 비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집착은 사라지리라.
옥암, 예동, 남산, 재궁, 웃건지, 하건지, 서울에도 있는 신촌, 연봉마을 지나 은행나무식당이 초입에 있는 보성군 번화가로 들어갔다.
오후 1시 47분, 보성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5년 전 숱하게 왔던 곳이다. 터미널을 사진 찍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그날 아침 밥상에서 내가 말했다.
“도보순례만 하려면 비가 오네요. 비 와도 우산 쓰고 걸으면 되는데, 원래 보성터미널에 자전거를 두고 제암산 휴양림으로 차를 몰고 와서 보성터미널까지 걸은 후 자전거를 타고 제암산 휴양림에 오려고 했거든요. 근데 비가 와서 자전거를 탈 수 없네요.”
그랬더니 옆자리 사람이 그럼 종착지에 가서 날 태워 출발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이가 오후 두 시쯤 도착 예정이라던 나를 태우러 온 것이었다. (나는 걷던 중 그이에게 목장갑이나 고무장갑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개 목줄을 풀어서 늘여주려고.)
편의점에서 닭고기 통조림 세 개를 사서 차에 올랐다. 운전자에게 개를 구하러 가자고 했다. 세 시간 걸어온 길은 자동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 그중 15분 정도 가니 그 개가 있었다. 노랗고 긴 축사 같은 건물 옆 조립식 주택 앞에. 개는 집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우리가 다가오자 집 밖으로 나왔는데 나오니 집이 다시 넘어져 있었다. 운전자가 나보다 먼저 끈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맨손으로 똥오줌 물속에 담긴 목줄을 풀기 시작했다. (부탁한 목장갑은 내가 끼고 있는데.) 그이는 순식간에 쇠줄을 풀어 끈을 늘여주었다. 몇십 센티미터 행동반경이 늘어난 개는 물웅덩이 밖 흙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통조림 뚜껑을 열어 개에게 주었다. 개는 거침없이 우걱우걱 먹었다. 밥그릇의 빗물을 쏟아내고 통조림을 담아 주었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세 개 모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내 실리콘 물통의 물을 밥그릇에 모두 부어주었다. 그래봤자 200밀리리터도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개는 그 물을 핥아 마셨다. 조립식 집에는 CCTV가 붙어있는데 개 주인은 어째서 개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을까.
개에게 할 수 있는 만큼 한 우리는 제암산 휴양림으로 갔다. 화장실에서 후다닥 장갑 두 켤레를 흐르는 물에 빨고는, 내 차도 함께 7.7킬로미터 떨어진 민간정원 카페로 갔다. 보성에서 해남으로 가는 길에서 현수막 광고를 보고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주메뉴인 따끈한 누룽지 라테를 주문했다. 거기까지 와주셨으니 내가 사려는데 그이가 계산까지 해 주셨다.
“다시 걸은 거 축하해요.”
“그러게요. 몸자보 없이 걸은 거 처음인 거 같아요.”
그랬다. 그 어떤 이슈도 담을 수 없이 나는 자신의 존재를 지탱하기도 버거웠다. 그럴수록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를 다 마셨다. 드문드문한 대화 사이 문득 이틀 전 해남 밤하늘에서 본 목성과 시리우스와 또 일렬로 선다는 별자리가 떠올랐다. 별들은 끊임없이 운행하고 행성은 자리를 옮긴다.
그이는 내게 조심스럽게 몇 가지를 물었다. 그중 전화번호 바꾼 이유도 있었다. 연말연시 불과 보름 사이에 딛고 있던 땅이 연속으로 무너지듯 순식간에 몰려든 사건을 감당할 수 없어 연초에 그만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그런데 무료 자동 연결 서비스 제공이 안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며 서른 명이 채 되지 않던 시점이었다.
나는 이유 대신 ‘던바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사람이 진정으로 사회적 관계를 가칠 수 있는 수는 150명까지라고 한다. 그중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진짜 친한 관계는 5명,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은 15명 정도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해진 숫자의 자리는 누군가 들어오면 누군가가 빠져나간다고 했다. 마치 내가 연락처 백 명뿐인 휴대전화기에 누군가를 입력하면 누군가를 지우듯.
그런데 내게 일어난 일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진짜 친한 관계’라고 여겼던 다섯 명 중 세 명에 관한 것이었다. 폭풍 같던 지난 8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 존재만으로 내 자랑이자 자부심이자 위로였던 그들이 없는 내 인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친구로 인정하는 첫째 조건은 비밀 유지 신뢰. 분별법은 간단하다. 누군가와 일 대 일 진지한 대화 후 그가 내 이야기를 내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하면 그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내가 속엣말을 하고 돌아서서도 전혀 불안하지 않던 반석 같은 이들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허물어진 폐허에 누구를 급급하게 들일 시점이 아니라 스스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지 기초부터 점검할 때였다.
아직 해가 짧은데 비가 내리니 어둠이 금방 내려올 기세였다. 커피를 다 마신 그이는 인위적인 정원은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정원 구경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곤 헤어지는 인사로 나를 살짝 안으며 말했다.
“밥 잘 먹고.”
평소에도 아무 때나 집에 들러 밥 먹고 자고 가라던 분이었다. 아주 가끔 외로움을 못 견뎌 연락도 없이 가깝지 않은 그 집까지 가면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기름보일러 온도가 높아졌다.
순례 직전, 길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귀인에게 주려고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마련했었다. 뒷좌석에 있던 그것의 임자는 그분이었다. 물에 헹군 목장갑과 함께 작은 상자를 드렸다.
뒷유리창에 노란 리본을 붙인 자동차가 떠났다. 한 시간 십 분 걸려 70킬로미터 달려와서 나를 12킬로미터 이동시켜 주고 다시 그만큼 돌아가야 하는 그이를 보며 도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9년 동안 3천 킬로미터 넘게 걸은 내게 이제 함께 걸을 사람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종착지에서 날 차에 태워 출발지로 데려다주고 차 한 잔 마시고 떠날 사람이면 충분하다.
함께 걷지 않았어도 도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이는 다시 걷는 나의 첫 번째 수호천사였다.
사랑했던 친구가 떠난 자리는 금세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옆에 새로운 자리가 생길 순 있다. 그러나 그 거리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거기엔 물리적인 시간과 쌓이는 신뢰가 필요하니까. 그보다 먼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 두려운 지금은 내 상처의 치유가 필요하니까. 정처 없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빗속에서 멀어지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저녁 6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그곳에 계속 있을 순 없으니 어디론가 출발해야 했다. 비는 계속 내렸고 일단 출발했다. 가는 길에 2021년 6월 도보순례 때 언덕을 넘다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주인과 대화했던 쇠실쉼터가 보였다. 그 막막한 중에도 반가운 마음에, 잠시 들러 곧 책이 나오고 그 책에 이곳이 등장한다고 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명은 꺼져있고 문은 닫혀 있었다.
빗발은 더욱 굵어지는데 순천, 광양, 사천, 진주를 지나 함안으로 향했다. 지명이 바뀔 때마다 4년 전 도보순례가 떠올랐다.
밤 7시. 함안군에 도착했다. 날은 어두워졌는데 번화가 숙박 시설은 거의 모텔이었다.
7시 30분에 함안성당으로 갔다. 모텔에 가느니 차에서 자려고 했다. 그런데 화장실이 없었다. 함안역으로 갔다. 역사 옆 철도 아래 주차 후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역은 자정까지 운영하고 새벽 6시면 다시 문을 연다. 여섯 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런데 밤 9시가 되니 몸에 한기가 싸늘하게 들었다. 철철 비가 쏟아지는 3월 초, 차박 하기엔 아직 추웠다. 시동을 걸고 숙박 앱을 검색했다. 좀 떨어진 곳에 호텔이 있었다. 저가라 예약을 했다. 10킬로미터는 가야 했다.
그런데 출발하고 보니 한절골에서부터 시작하는 그 길은 4년 전 함안에서 마산까지 걷던 산길이었다. 구불구불 깜깜하고 비 내리는 산길을 차로 넘어 다른 면까지 호텔을 찾아가는 나를 보며, 4년 전 군북이 기억났다. 그때 무인텔에 들어갔던 건 동행인 때문이었구나. 혼자였다면 그때도 다른 지역까지 갔을 게 분명했다. 역시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외관은 휘황한 시골 호텔에서 밤 10시 넘어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꺼냈다. 물을 끓여 수미차가 집으로 보내준 양배추 죽을 풀어 마시고 완두가 준 꿀과 이다가 보내준 견과류와 줄리아가 학교에 가져온 초코파이를 먹었다. 내가 먹고사는 건 챙겨주는 사람들 덕분. 따뜻한 숙소에서 라디오 앱으로 음악을 틀었다. DJ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무서워서 불을 다 끄지 못하고 자정 즈음 잠이 들었는데 새벽 두 시경에 악몽으로 깼다. 얼굴에 땀이 물처럼 흥건했다. 숱한 사람들이 거쳐 갔을 잠자리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꿈에 나온 것이었다. 어서 깨끗한 내 잠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개를 도와준 것으로 충분했던 하루. 나를 도와준 한 사람. 그리고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집착. 비오는 장흥에서 보성 구간을 이은, 완주를 위한 남도 순례 첫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