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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석 Nov 07. 2017

보물찾기

 “아빠! 보물 찾으러 가요.”

 몇 달 전, 토요일에 집에 있는데 다섯 살 난 아들이 내게 말했다. 며칠 전부터 “보물”, “보물”하더니만, 함께 찾으러 가자는 것이다. 도대체 보물이 뭐가 싶어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가자는 곳으로 따라나섰다. 아이가 데리고 간 곳은 동네의 문방구 앞. 그곳에는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장난감이 든 플라스틱 구슬이 나오는 기계가 있었다.

 “아빠, 이곳에 보물이 있어요.”

 ‘애 엄마가 장난감을 뽑게 해 주었나? 그리고 지금 아들에게는 동전이 없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들은 몸을 굽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빠! 보물이에요, 보물! 보물을 찾았어요.”

 아들은 환희에 가득 찬 얼굴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 손에 있는 것은 길에 떨어져 밟히고 더러워진 작은 공룡 장난감. 이제야 아들이 보물이라고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문방구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주로 초등학생들이 기계에 동전을 넣고 장난감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구슬을 얻는다. 하지만 기계에서 원하는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플라스틱 구슬이 나오기 때문에 그중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버리는 장난감들이 생기게 된다. 그 버려진 장난감들이 문방구 주변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멋진 모양의 장난감은 있을 수 없다. 잘해봐야 작은 공룡과 조잡한 모양의 플라스틱 개구리 정도일 뿐이다. 아들은 이런 버려진 장난감을 찾아서 보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려진 장난감을 줍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그다음에 하는 행동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 아들은 집에 가서 더러운 것이 있다면 물로 깨끗하게 씻기고, 다리가 부러진 개구리가 있으면 테이프로 다리를 붙여 준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은 나의 보물이야.”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과 함께하는 보물 찾기는 계속되었다. 때로는 개봉하지도 않은 플라스틱 구슬을 몇 개씩 줍는, 그야말로 노다지를 캐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날도 있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면서 아들이 말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보물. 내 삶에서 보물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아들보다 조금 더 컸을 때 나의 보물은 ‘돌’이었다. 산이나 강에 가서 다양한 모양의 돌을 주워서 진열해 놓았다. 그것들은 때로는 나의 자동차가 되었고, 비행기가 되었고, 또 배가 되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내 삶에서 보물은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그 자리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나 아니면 추구하고 싶은 어떤 것들로 채워갔다. 학생 때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사회적인 성공이나 경제적인 안정과 같은 손에 쥘 수 없는 무형의 어떤 것들로 말이다. 

 내 손안에 있었던 작은 보물들은 만족과 행복을 주었지만, 살면서 추구해야만 했었고 지금도 쫓아가고 있는 무형의 어떤 것들은 삶의 갈급함과 불안을 가져 주었다. 살아오면서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길을 추구하는 일은 항상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소속되었던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고자 하는 그 길을 가고자 발버둥 친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대다수 사람들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가 계획하고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의 상실감은 인생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들이 보물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멋지고 다양한 기능의 장난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선 속에서 필요 없다고 여겨져 버려진 것들이었다. 버려지고, 밟히고, 망가진 것들. 아들은 그것들을 데려와 소중하게 돌봐주고, 고쳐준다. 아들에게 그토록 소중한 보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아닌, 자기만의 가치를 부여한 특별한 보물이었던 것이다. 사회의 대다수가 원하는 것 혹은 주변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소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이란 단어의 또 다른 의미일지 모른다. 삶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항상 최고만을 바라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을 덩달아 바라보기만 한다면,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진정으로 아름다운 가치들을 보기 힘들 것이다. 이미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고 얼마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소중한 것들이 주변에 있는데, 그저 막연한 허상만을 바라보다 스스로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의 가슴속에 늘 자신만의 보물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또한 자신이 기대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툭 털어내고 자신의 길을 계속 가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며, 그리고 소중한 것들은 인생의 길을 가다 또다시 찾을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버지로서 아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아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지금 아들과 함께 있을 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보물을 주고 싶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무언가를 배우게 하기보다는, 지루할 만큼 남아도는 시간을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그리고 아이의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될 최고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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