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봄

by 시 선

어느덧 봄의 막바지다. 지난 주말엔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공원으로 벚꽃 축제를 다녀왔다. 날씨가 화창하고 좋았다. 따뜻했다. 아직도 겨울 옷을 벗지 못하고 있는 나는 기모 츄리닝 바지를 입고 면 체크 셔츠에 혹시라도 추울지 몰라 울 조끼를 걸쳐 입었더랬다. 더웠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내 등엔 땀이 조금 났다. 조끼를 벗었다. 벚꽃은 하늘하늘 땅과 구름사이를 오고 갔다. 하얗게 빛나는 꽃잎들이 숨결처럼 가볍게 휘날렸다. 그야말로 황홀했다.


여기 도서관 주변에 나무들도 봄을 맞았다. 하나 둘 초록 이파리들을 꺼내 보인다. 저기 앙상하고 수척한 나무 한 그루만 빼고. 여느 나무들은 벌써 여름을 준비하는 듯 바쁜데 저 나무만이 작은 새순조차 하나 없이 제자리다. 설마 생명을 다 한 건 아니겠지? 이렇게 봄은 저물어가는데 저 나무는 왜 아직도 자기의 봄을 꺼내지 않는 걸까. 나는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져 도서관 올 때마다 창 밖을 쳐다보곤 한다. '오늘은 나왔을까.'


며칠 동안 내린 봄비는 왠지 모를 서늘함으로 거듭 나를 감싼다. 나는 벗어뒀던 울 조끼를 다시 걸쳐 입고 나왔다. 그 사이 반가운 봄비를 달게 맞았을 나무들은 저의 활기찬 생명력을 뽐내듯이 엷디 여린 초록 이파리들을 마구마구 푸르게 뽑아내었다. 한가운데 그가 있다. 그토록 봄을 기다렸던.


그에게도 왔다. 드디어 봄이 그의 차지가 되었다. 그의 이파리는 초록이지 않았다. 옅은 주황빛이다. 무성무성한 초록 이파리들 사이로 이제 막 자기의 봄을 꺼내 갓 태어난 그의 어린 주황빛 이파리들이 선명하고 밝게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침내 그에게서 봄이 솟구쳐 나와 그의 생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결국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늦을지언정 봄은 다시 찾아온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불안했나, 내 마음은 그리 조급하였나. 그에게 봄이 오지 않을까 봐, 그가 죽었을까 봐 혼자 애를 태웠다.


이렇게 오는 것을.

그에게도 봄이 있는 것을.

그에게 맞는 시간이 있던 것을.

그에게 지난겨울은 조금 더 길었던 것을.

그는 좀 더 쉬어야 했던 것을.

잠을 자야 했던 것을.

그는 결코,

죽지 않았던 것을.



나는 나의 이 글쓰기가 불안하다. 나의 책 쓰기가 조마조마하다. 잘하지 못할까 봐, 대단한 성과를 내지 못할까 봐, 는 아니다. 그건 지금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끝내 내속의 것을 꺼내 놓지 못할까 봐, 지레 겁이 난다. 그동안 꺼내 보지도 못한 것들이 내겐 이미 수두룩하게 많다. 춥고 외로운 겨울을 견디다 못해 그만 그 겨울과 함께 거둬 간 것들이, 그 잔재들이 내 안에 잔뜩 응어리져있다. 그것들이 나의 마음을 졸인다. 이 책 쓰기 또한 겨울을 지나는 사이 그 빛이 이울어 내게서 사그라들까 봐 나는 그것이 바잡다.


언젠가는 내게도 올 것이다. 봄이 안착할 것이다. 내속의 것을 꺼내 마음껏 펼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시간이 다소 걸릴 뿐. 지금 나의 이 겨울을 무사히 잘 보낸다면 기어이 올 것은 오게 되어 있다.


새순의 연둣빛이 돋아난다. 나의 봄이 솟아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브런치 작가 합격!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