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순례주택』이 잘 안 읽히는 이유
월요일의 작가들이 선정한 5월의 책은 유은실의 소설 『순례주택』이다. 2021년 비룡소에서 출간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전국 곳곳에서 ‘한 도시 한 책’ 또는 각종 선정 도서로 추천되어 읽기 열풍을 일으키며 현재 판매 1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다. 하여 도서관 대출 경쟁이 치열할 것을 예상해 나는 진작부터 대출 예약을 하고 한 달 전부터 읽기 시작했었다. 청소년 소설로 시작해 연령대 구분 없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소설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초입부터 잘 읽히지가 않아 애를 먹었다. 읽다가 그치고 반납했다가 다시 대출하여 완독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내게 책을 읽는 재미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착각이 들게 했다. 그 유명한 '금쪽같은 내 새끼'나 '결혼 지옥'과 같은 가족 리얼 버라이어티 쇼 말이다. 어쩌면 평소 이런 예능을 즐기지 않는 나의 성향과 이 책이 잘 안 읽히는 데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순례주택』은 아마 이런 식의 가족 예능이 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16세 소녀, 수림이 고민이 있어 오은영 박사를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순례주택이라는 빌라와 아파트를 오가는 수림을 보며 오은영 박사가 묻는다.
"수림이는 왜 집이 두 군데죠?"
수림이 답한다.
"원래 저의 가족(책에서는 '1군'으로 칭함)은 외할아버지 아파트에서 공짜로 얹혀살고 있었는데요. 엄마가 산후우울증으로 둘째인 저를 순례주택에 사시는 외할아버지께 맡겼고,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가셔야 했기에 할아버지 여자친구인 순례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가 저를 키워주셨어요. 아기 때부터 순례 씨가 저의 주 양육자가 되어 애착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순례 씨가 좋아 두 집을 오가고 있어요."
나이답지 않게 똑 부러진 수림에 모두가 놀란다.
"그렇다면 수림이는 집이 두 군데나 있어서 무척 행복할 것 같은데, 어떤 고민으로 찾아왔나요?"
"저는 오히려 순례 씨에게 맡겨져 이렇게 잘 자랐어요. 공부는 중간이지만 생활 지능이 높고, 가족과 따로 자란 덕분에 가족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족들이 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갈 곳 없는 가족들은 순례 씨 덕분에 순례주택에 살게 되었는데요. 철없고 염치없는 이 가족들을 어떻게 적응시켜야 할지 고민이에요."
말이 끝나자 패널 한 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으로만 "헐" 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곧이어 카메라는 염치없는 가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내고, 오은영 박사와 패널들, 시청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상식 수준 이하의 1군을 향해 경멸의 눈빛을 쏘아댄다. 그리고 순례 씨와 수림이 등장한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순례 씨 생각 동의."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은 자기 힘으로 살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너희 집에 열여섯부터 알바해서, 스물엔 독립하겠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
"수림아, 승갑 씨 곁에 있으면서 내가 잘못한 게 그거 같아. 딸한테 뜯기고 살게 둔 거. 돈 주지 말라고 하면 내가 재산 욕심 있는 걸로 오해받을까 봐…… 한두 번 말하고 말았지. 승갑 씨는 딸이 힘들다고 하니가, 재건축할 때 잠깐 이사하는 것도 알아봐 줬어. 네 부모는 지금껏 저절로 살 곳이 생기는 세상을 살았지. 맘대로 아버지 돈 쓰는 세상만 산 거야. 승갑 씨가 그 사람들 철들 기회를 뺏었는지도 몰라."
"할아버진 왜 그랬을까?"
"승갑 씨는 젊어서 아내와 사별했잖아. 겁이 많았지....."
-유은실, 『순례주택』, 53~55쪽
모두가 순례 씨를 닮아 잘 성장한 수림을 칭찬하고, 순례 씨는 세상에 없는 어른다움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누가 더 어린지를 경쟁하는 철없고 염치없는 1군은 보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오은영 박사는 1군의 상태를 진단하고 그들이 어른답지 못한 원인이 결국 수림의 외할아버지의 헌신적인 딸 사랑으로 거슬러 올라감을 또한 지적한다. 수림은 세상 만천하에 1군을 고발하며 쾌감을 맛보지만 동시에 입안 가득 씁쓸함을 뭉개야 했다.
이상은 이 소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가족 예능 '뻔한 가족'이었다. 위와 같은 가족 예능은 어딘가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한다. 이 참에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예능의 첫 번째 덕목이자 핵심요소인 '재미'에서 비롯된 거였다.
하나, 가족 예능은 다른 가족의 일상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때 가족의 갈등이나 민감한 부분이 과도하게 드러나는 경우, 남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엿보는 듯한 불편함과 부담이 따른다.
둘, 실제 가족들의 사연을 다루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거나 공감하며 재미를 느끼는데, 그 고민과 갈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거나 왜곡하는 편집과 연출이 의심되기도 한다. 가끔은 눈물을, 가끔은 분노를, 또 가끔은 웃음을 주며 시청자들에게 감정적인 위로를 제공하기도 하나, 그만큼 감정이 소모되어 절로 피로감을 느끼고, 그 상황의 잘잘못을 따지고 이를 이슈화하여 단순한 오락거리로 만드는 것이 마뜩잖다.
셋, 오은영 박사와 같은 전문가들의 솔루션을 통해 도움을 주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한 번 출연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굳이 방송에서 그런 사연을 다룰 필요와 이유가 있을까, 혹 그것을 단순한 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결국 출연한 당사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와 문제를 야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된다.
나는 가족예능을 보는 듯한 이런 불편함으로 이 소설이 잘 안 읽히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1군의 행동과 사고하는 방식이 너무 뻔해 흥미를 끌지 못했다. 1군은 진정한 어른이 되려 노력하지 않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은 많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어떤 노력도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 매번 남 탓, 상황 탓만 하는 그들의 반복되는 모습에서 실망감과 지루함마저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넓은 지구에서 나는 어떻게 순례 씨를 만났을까.
"순례 씨도 행보가게 살아야 해. 1군들 때문에 속 끓이지 마."
"걱정 마. 내줄 공간이 있어 다행이야. 감사해."
순례 씨는 '감사'라는 말을 잘한다. 1군들에게선 거의 들은 적이 없는 말이다. 순례 씨가 좋아하는 유명한 말-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하다- 가 떠올랐다. 나도 순례자가 되고 싶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유은실, 『순례주택』, 99~100쪽
『순례주택』은 결국 진정한 어른다움에 관한 책이다. 수림과 순례 씨, 순례주택에 사는 사람들과 수림의 가족의 모습을 통해 어른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족 예능을 보는 것 같아 다소 편편찮은 느낌도 있었지만, 바로 그런 특성 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 재미와 공감을 선사하며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청소년 소설로서 당찬 주인공 16세 수림을 내세워 청소년들이 자신의 가족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며 고발하는 위치에서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수림은 우리에게 어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사는 모습을 반성하고 부끄럽게도 한다.
그렇다 해도, 더는 고개 숙일 필요 없다.
다시, 순례 씨의 질문을 시작으로
세상에 완벽한 '어른다움'은 있을지 몰라도
'완벽한 어른'은 없다.
우리는 그저 어른이 되려고 나름, 애쓰는 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