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하디, 『퓨처 셀프(FUTURE SELF)』를 읽고
손에 쥐는 순간 베스트셀러의 위엄이 느껴진다. 책의 제목은 『퓨쳐 셀프(FUTURE SELF)』, 저자는 조직심리학자이자 자기 계발 분야 파워블로거인 벤저민 하디다. 마침 3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어서 책의 외관부터 물성 자체가 남달랐다. 종이 같지 않은 매끈한 질감의 표지에 영문으로 반짝이는 큼직한 글씨체, 'FUTURE SELF'가 순식간에 나를 압도한다. 익숙한 두 단어의 조합이 낯설다. 우리말로 '미래의 나' 또는 '미래의 자아' 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문득 1년 전 내가 썼던 글 한편이 생각난다. 제목은 「먼 미래」, 글의 내용은 먼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리며 지금 이 글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꾸준히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냈다.
꿈이라는 말에 기대지 않고 담담히 먼 미래의 나를 그려 본다.
서재에서든, 도서관에서든,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퓨쳐셀프'로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책을 펼치자 '퓨쳐셀프로 살아가는 ㅡㅡㅡ에게'라는 짤막한 문구가 있다.
여기 빈칸에 내 이름을 넣어도 될까?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미래의 나를 위협하는 요인 7가지', 두 번째 파트는 '미래의 나에 대한 진실 7가지', 세 번째 파트는 '미래의 내가 되는 7단계'를 다룬다. 각 파트는 다시 7가지의 주제로 나눠 그에 관한 개념과 에피소드,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대부분 기존에 다른 여러 자기 계발서나 강의에서 소개된 바 있는 내용들이었는데, 다만 '미래의 나'로서 접근하니 새로운 시선이 열리고 알고 있으나 행하지 못한 부분에 있어 신선한 자극이 되어 좋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J는 작년에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사실 그전에, 재작년 교육청 글쓰기 강의를 들은 후 지하철에서도 동네에서도 스쳐 지나가는 그녀를 어렴풋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그녀를 동네 도서관 강의실에서 다시 만나게 된 거였다. 지금은 나의 선생님이자 글벗이자 친한 동생이 되었다. J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우리가 서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부터였다. 그 당시 나는 한참 '월요일의 작가들' 문집에 실을 글과 개인적으로는 포토에세이 전자책을 준비 중이었고, 그녀는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한 작가였다. 그것도 POD 방식의 자가출판으로 말이다. 진작부터 호감은 있었지만, 책을 낸 작가라는 것을 알고 나자 나는 그녀에게 더한 존경심과 부러움을 느꼈다.
이후 J는 책이 되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다음 책을 준비했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자신이 직접 책을 출간한 경험을 토대로 평생학습관에서 재능기부 프로그램 강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만, 너무도 깜짝 놀랐다. 책을 하나 냈을 뿐인데 책을 쓰는 강의를 하다니! 그런 일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글 한편 쓰는데도 한 달이 걸리고, 브런치 작가 도전하는 데만 해도 1년 남짓, 작년부터 준비 중인 전자책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그런 내게 J의 도전은 믿을 수 없는, 경악할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희한한 건 J가 그 소식을 전했을 때, 그렇게 깜짝 놀랐으면서도 나는 어느새 금방 그 사실에 수긍했다는 점이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겐 신뢰가 갔다. 그녀의 강의가 궁금하고 기대도 됐다. 나는 재작년에 (그녀도 같이 들었을) '내 인생 첫 책 쓰기'라는 강의를 심화과정까지 마친 후 책을 내기 위해 나름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강의에 큰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단지 그녀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덜컥 수업을 신청했다.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글 쓰는 오전 시간을 내야 했고, 강의실이 멀어 1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감수할 수 있었다. 기꺼이 감수하고 싶었다.
J에게 물었다.
"J야,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헉!",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 J야, 그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야. 네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야."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 이유는 불안과 두려움에 있다. 미래의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 그것에 겁이 난다. 나는 뭐든지 시간에 쫓기거나 낯선 환경에 처하면 크게 불안해한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막 널뛰기를 한다. 임기응변에는 아주 취약하다. 평소에는 잘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평소에 반도 못할 때가 많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오히려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내 안의 불안을 숨기거나 두려움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웬만해선 그런 상황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입에 담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맞고 그렇게 해야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래의 나에겐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저 나 자신을 몰아가지 않는 것. 그것이 스스로 나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J는 나와 완전히 다르다.
J의 말대로 그녀는 일단 몰아붙인다. 그 상황과 환경을 말이다.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떻게든 해낸다는 것을 믿고 있다. 불안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미래의 나'에게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J는 어떻게 '미래의 내'가 그 모든 것을 해낼 것을 알았을까?, 또 믿을 수 있었을까?
J의 '미래의 나'에 대한 그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현재를 거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J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의학 박사였다. 셋째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어 오가며 나와 마주쳤던 것이었다.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정도라면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꽤 오랜 기간 동안 공부했을 것이다. 중간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어도 스스로 목표한 바를 포기하지 않았을 터였다. 육아와 살림을 오가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니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J는 그때그때 자기 역할과 의무에 충실했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성취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 확신은 곧 그녀의 '미래의 나'에게까지 이어졌을 거다.
나 역시 늘 꿈과 목표가 있었다. 다만 끈질기게 끝까지 해낸 것은 지금껏 육아 외엔 없다. 어디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나는 싫증을 잘 냈고 조금만 틀어져도 포기를 잘했다. 그러니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했고 중간에 꿈도 접었다. 내겐 J와 같은 경험이 없다. 고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나아가 '미래의 나'에 대한 확신은 더더욱 있을 리 없다.
이러한 '미래의 나'에 대한 확신이 J와 나의 큰 차이점이고, 그로 인해 우리의 행동방식이 서로 다르게 표출되는 건 아닐까?
J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첫 글쓰기 강의를 아주 성공적으로 훌륭히 마쳤고, 내겐 그녀의 강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체가 큰 의미가 되었다. 강의를 마치고 함께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 여기까지 와서 내 강의를 들어줘서 고마워. 언니가 있어서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특히 이렇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언니도 좋지? 또 몰라, 언젠가 언니가 나의 이 경험을 언니 글에 써먹을지도. 호호호!"
신나게 웃으며 말하던 J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는 지금도 웃음이 난다. 밝고 활기찬 에너지의 J는 그야말로 '퓨쳐셀프'로 살아가는 산증인이라 말할 수 있고, 그녀를 통해 '퓨쳐셀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퓨쳐셀프'가 아무리 '미래의 나'를 중심에 둔 삶이라고 해도, 과거의 경험과 현재삶의 만족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거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저자는 현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지나치게 '미래의 나'에게만 맞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제목에 따라 퍼즐을 끼어 맞추듯이 그 모든 것의 기준을 '퓨쳐셀프'에 근거하는 것은 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과거나 현재의 나는 일시적이고 바뀌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쓸 것이 못 된다는 식의 논리는 내게 적잖이 거슬리는 면이 있다.
J처럼 '퓨쳐셀프'로 살아가는 사람도 현재 세 딸의 엄마로서 모든 것을 '미래의 나'에 두고 살지는 못한다. 나의 '먼 미래' 역시 '미래의 나'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이 글쓰기가 좋아서 한다. 우리 삶에는 온전히 순수하게 현재에 충실해야 할 절대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를테면 집중적인 육아의 기간이라던가, 몰입하는 독서나 취미활동 등도 그렇다. 대학입시를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새벽까지 공부를 하느라 잠도 못 자는 학생들을 보면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퓨쳐셀프'를 위해 현재 너무도 소중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 같아, 내가 보기에 그 '퓨쳐셀프'란 다 소용없는 짓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살고 싶은 사람이다. '퓨쳐셀프'가 아닌 '현재셀프'. 그렇다고 현재셀프의 즐거움만을 위해 도파민만 충족시키는 영상만 본다거나 당장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콜라만 마신다는 뜻은 아니다. 매 순간 나를 위해 좋은 선택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 선택의 기준을 미래에 두지 않고 '현재 나'에게 두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현재를 쌓고 쌓다 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좋은 미래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매일 글을 쓰면 결국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듯이 말이다.
다시 말해, 현재 내 삶을 바꾸기 위해 굳이 '미래의 나'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퓨처셀프'로 살아가는 것도 결국,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선택한 삶의 한 방식일 뿐이다.
'퓨쳐셀프' 든 '현재셀프'든,
"미래의 나에 대한 여섯 번째 진실은 자신이 바라는 미래에 진실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명성이나 돈, 지위 등이 없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완벽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성공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건 외부 요소가 절대 아니다.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가느냐만이 성공의 유일한 척도다."
-벤저민 하디, 『퓨쳐 셀프(FUTURE SELF)』, 199쪽-
우리가 '퓨쳐셀프'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에게 진실된 퓨쳐셀프를 그려야 한다. 진실된 퓨쳐셀프를 위해서는 현재 자신에게 충실하고 만족하는 삶이 전제되야만 한다. 매 순간 자신에게 진실하고, 좋은 선택을 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먼저다.
"무엇보다 진실한 자아를 가져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p.s.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퓨쳐셀프 J는 또 어떤 미션을 '미래의 나'에게 내던지고 있을지, 문득 그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몹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