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푸는 오후 4시쯤 산책을 합니다

나갈 채비를 합니다

by 세언
앙푸가 산책하던 어느날, 호숫가의 풍경입니다

앙푸는 오후 4시쯤에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16시, 무엇을 시작해보기에는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애매한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죠. 이럴 때면 목 주위가 늘어진 잠옷을 벗어버리고 도톰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 종일 제대로 한 것이 없어 불편한 죄책감이 마음 한켠을 쿡쿡 쑤시더라도요. 어차피 하지 못한 일에 매달려야겠다고 마음이 결심해도 몸은 끝내 게으르게 굴고 만다는 사실을 앙푸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잠옷 단추를 하나 둘 끌러 내리며, 산책이란 것은 본래 그다지 번거롭지 않으면서도 갖은 영감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시간 정도 시답잖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걷다가 쓸만한 것은 짤막하게 메모하는 겁니다. 그래서 앙푸는 눈이 나리는 이 추운 겨울에도 장갑 대신 펜과 노트를 챙깁니다. 물론 한 문장을 제대로 적지 못할 때도 많지만, 이것은 사실 지금부터라도 생산적으로 살아보겠다는 자기 선언에 가깝습니다. 그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의미를 느끼고 사색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불룩해진 주머니를 보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머리가 시릴 수 있으니 털모자를 씁니다. 싸구려 아크릴 소재라서 머리에 닿는 촉감이 영 까끌거려도, 그 색이 난데없는 형광 주황색이라서 남사스러워도 괜찮습니다. 근사한 식당에서 그와 밥을 먹는 약속 같은 게 아니라면 따뜻하니까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살짝 얼룩덜룩한 표백제의 흔적은 조금 민망하군요. 거울 앞을 한참 못 떠나다가 모자의 끄트머리를 안쪽으로 한번 접어 넣는 것으로 타협을 봅니다. 벌써 3시 58분인 만큼 빨리 운동화를 신어야겠습니다. 왠지 4시에 딱 맞추어 현관문을 벗어나면 그 날의 산책에는 좋은 예감이 따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