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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Dec 03. 2022

호날두와 수아레즈가 쌓은 업보

돌고 돌아 결국은 나에게 돌아온다...

 태극전사들이 해냈다.

 너무너무 식상하고 구태의연한 표현인 거 아는데, 어젯밤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표현하는데 '전사'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그야말로 전사의 심장으로 뛰고 뛰고 또 뛰며 만들어 낸 값진 결과. 16강!

 항상 주눅 들어있던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우리의 플랜대로, 우리가 그동안 연습해 온 대로 싸워서 이겨내는, 낯설지만 가슴 벅찬 모습을 보여준 우리 선수들 모두 정말 대단했다.


 대회 첫 슈팅을 기가 막힌 역전골로 만들어낸 황희찬.

 자신이 왜 월드클래스인지를 비로소 증명한 손흥민.

 최전방에서 미친 듯이 싸운 조규성.

 선발 출장하면 어떤 선수가 되는지 보여준 이강인.

 중원에서 온몸으로 뛰고 구른 황인범과 정우영.

 초인적인 활동량을 보인 양 사이드의 김문환과 김진수.

 김민재가 결장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 권경원.

 동점골을 터뜨린 김영권.

 수차례 열릴 뻔한 골문을 기어코 걸어 잠근 김승규.

 이재성, 황의조, 손준호, 조유민, 그리고 벤치에서 함께 뛴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 박수받아 마땅하다. 




 우리 선수들이 만들어 낸 과정과 결과의 아름다움은 백번 칭찬해도 모자랄 정도로 빛난다.

 오늘 하루는 온통 축구 기사로 도배가 되고 TV에서 어제 혈투의 하이라이트를 몇 번씩 돌려대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이 짜릿했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한 편의 드라마였던 것이다.

 이런 기적적인 스토리에는 항상 조력자가 등장하기 마련이고. 

 어젯밤 우리의 조력자는 바로 호날두와 가나 대표팀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지난날 쌓은 업보가 돌아와 우리를 돕게 된 케이스라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호날두의 업보


 호날두는 포르투갈의 슈퍼스타이자 메시와 함께 누가 최고냐를 두고 다투던 '메호대전'의 주인공이었다.

 평생 까방권 보유자인 박지성의 맨유 시절 동료였던 이력까지 더해져 국내에서의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유벤투스 시절이던 지난 2019년의 '호날두 노쇼 사건'으로 한순간 '날강두'가 되어버렸다.

 당시 K리그 올스타와 친선전을 벌이기로 했던 유벤투스가 1시간을 지각한 데다가 간판스타였던 호날두는 단 1분도 경기를 뛰지 않았다.

 거액을 받고 온 유벤투스와의 계약상 분명히 호날두가 45분 이상 출전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그는 결장했고, 인터뷰나 팬미팅에도 불참했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며 경기 전에 열린 사인회에도 불참해 놓고 정작 경기에는 나서지 않은 호날두.

 이도 저도 싫으면 웃으면서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줄 법도 했지만 경기 내내 뚱한 표정으로 앉아 생수만 들이키다 서둘러 빠져나간 호날두.

 호날두 한번 보겠다고 비싼 돈 들여 경기장에 온 관중들을 기만한 그의 행동에 경기 막판 관중석에서는 메시를 연호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 호날두는 우리나라 축구팬들이 가장 꼴 보기 싫어하는 축구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어제 경기에서 호날두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김영권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고 김승규와 맞닥뜨린 상황에서 깔끔한 다이빙 헤더로 볼을 걷어내는 결정적인 수비까지 하며 우리를 도왔다.

등 어시스트로 동점골 견인
다이빙 헤더로 걷어내기


 양 팀 통틀어 최악의 평점을 기록하며 물러난 그에게 위안이 된 것은 자랑스러운 열두 번째 태극 전사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열두 번째 태극전사


 재외 국민으로 주민등록증도 나왔고, 선수 프로필 상 국적도 대한민국으로 수정되었다.


 3년 전 그 사건 때문에 경기 시작과 동시에 볼을 잡으면 야유가 터져 나올 정도로 미움받았지만 어제 한 경기로 그때 진 빚을 일시불로 다 갚고, 이제는 누구보다 우리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선수가 되었으니 사람 일은 정말 알 수가 없다.



● 수아레즈의 업보


 나는 어제 솔직히 우리 경기를 보던 두 시간보다 우리 경기가 끝난 후에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를 보던 8분이 훨씬 더 힘들었다.

 생전 처음 남의 경기를 보면서 그렇게 진이 빠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만큼 쫄깃함이 지나쳤던 경기로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2 대 0으로 지고 있던 가나가 경기 막판에 보여준 모습은 조금 특이했다. 

 열심히 뛰었으나 패색이 짙어진 후반 추가시간 막판, 가나 골키퍼는 골킥을 하기 전에 시간을 끌었고, 가나 벤치에서는 선수 교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건 이기고 있는 팀에서 하는 행동인데 왜???  

 물론 이기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지고 있는 팀이 왜 시간을 끌었을까?

 그것도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가 쌓은 업보 때문이었다.

사과라도 할 걸...



 때는 12년 전인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전.

 16강에서 우리나라를 이기고 올라간 우루과이는 가나를 만나 1 대 1 동점 상황에서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 후반 막판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맞았다.

 가나의 헤딩 슛이 골문 안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


 바로 그때, 수아레즈가 홀연히 나타나 양손으로 공을 걷어내는 슈퍼 세이브를 보여줬다.

수아레즈의 슈퍼 세이브


 이른바 '수아레즈 신의 손' 사건으로 수아레즈는 이 핸드볼 파울로 퇴장당했지만 가나는 여기서 얻은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가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물론 비신사적인 행위였지만 워낙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고 수아레즈 또한 퇴장을 당하며 응분의 대가를 치렀으니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경기 후에 "나는 가치 있는 퇴장을 당했다"라며 가나 선수들과 팬들을 도발한 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우루과이와 수아레즈에 대해 가나 선수들과 국민들은 악감정을 품은 채 12년의 세월이 흘렀고, 어제 경기 전 인터뷰에서 12년 전의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수아레즈의 발언까지 터지며 기름을 부었다.

https://www.xportsnews.com/article/1661113


 우루과이와 수아레즈에 대한 복수심에 활활 타오른 가나 선수들은 열심히 싸웠지만 페널티킥 실축으로 선제골 기회를 놓치는 등 전반적으로 경기 운이 따르지 않았다.

 시원한 승리로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자 가나가 택한 복수 방법은 물귀신 작전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못 올라갈 바에야 우루과이라도 막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경기에 임했고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지만 복수에 성공했다.

https://www.etoday.co.kr/news/view/2199175



 당연히 우리의 16강 진출은 우리 선수단 전원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재능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성으로 커리어 내내 논란을 일으켰던 두 선수가 본의 아니게 우리의 16강 진출에 조력자 역할을 하며 조롱당하는 모습을 보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3년 전의 호날두와 12년 전의 수아레즈는 이번 월드컵에서 자신들이 한국과 가나를 한 조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 자신들의 지난 잘못이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호날두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언론에서 혹평과 비아냥을 듣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호날두는 토너먼트 진출이라도 했지만 수아레즈는 '어디 너도 당해 봐라' 하는 심정으로 달려든 가나에 의해 마지막 월드컵을 눈물로 마무리하게 되었으니 더욱 참담하다 하겠다.

 업보, 권선징악.

 너무 진부하고 촌스러운 말들이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 저녁 맑은 정신으로 어제의 경기를 곱씹어 보니, 이 말들이 떠올랐다.

 어젯밤 호날두와 수아레즈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다시 한번 우리 선수들의 16강 진출을 축하하며, 브라질 전에서도 자신들의 축구를 보여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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