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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팀장 Apr 25. 2022

0.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야구 관람을 위하여...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온몸을 감싸는 일요일 오후, 사랑하는 연인이 잠실야구장을 찾았습니다.

 "오빠, 나 야구 하나도 모르니까 잘 가르쳐줘야 돼~~"

 "당연하지. 모르는 거 다 물어봐, 오빠가 또 야구 박사잖아. 하하하~~~"

 "오~~~ 우리 오빠 야구 박사였구나, 그럼 나 다 물어본다?"

 "아휴, 그럼 그럼... 다 물어보라니깐~~~"

 손을 꼭 잡고 야구장에 들어서며 치킨 한 마리와 맥주, 그리고 과자와 튀김 어포('꾸이꾸이'라고 하죠)까지 사니 한없이 즐거워져서 콧노래, 아니 응원가가 절로 나옵니다.

 3시간 동안 응원하려면 미리 배를 채워야 한다며 치맥까지 하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네요.

 따사로운 햇살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휴일 오후입니다.



 팽팽한 경기가 진행되자 남자 친구는 그라운드로 빨려 들어갈 기세입니다.

 동점 상황에서 맞이한 3회 말, 발 빠른 우리 팀의 선두 타자가 내야안타를 치고 나갑니다.

 무사 1루에서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1루측 응원석에서는 연신 뛰어~! 뛰어~! 하는 함성이 울려 퍼지고, 그 함성에 답하듯 1루에 있던 주자가 바람처럼 달려가 2루를 훔쳐내고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가 된 그 순간...

 "오빠, 저 사람은 왜 2루로 막 뛰어가? 저래도 되는 거야??"

 "뭐라고?"

 "아, 저 사람 왜 갑자기 2루로 그냥 막 가냐고~~"

 "아, 그거 도루한 거야."

 태어나서 야구장이라곤 처음 와본 여자 친구는 뭔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담장 너머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갈 듯한 남친이 신기해서 그저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원래 무언가에 이렇게 열중하는 사람이었나 싶었죠.

 거의 1년을 만나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 멋있어 보이기도 해서 살짝 심쿵합니다.


 발 빠른 주자와 정확한 타자가 나와 있는 무사 2루 상황에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던 그 순간, 타자의 방망이가 매섭게 돌아가고 빨랫줄 같은 타구가 2루수 머리 위로 날아가며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그 찰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공을 낚아채는 2루수!


 타구를 제대로 보지 않고 스타트를 끊은 2루 주자가 미처 귀루하지 못한 틈에 2루 커버에 들어간 유격수에게 공을 던져 더블 아웃을 만들고 씩 웃어 보이는 2루수를 보니 남자 친구는 피가 거꾸로 솟아오릅니다.


 "저 XX 같은 XX!! 아오, 삐이! 삐이! 삐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친의 야수 같은 모습에 깜짝 놀란 여자 친구는 조금 무서웠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지라 또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오빠, 근데 저 사람은 왜 죽은 거야? 그냥 3루로 뛰지 왜 괜히 돌아오다가 죽냐, 바보같이..."

 ".................."

 "뭐야, 갑자기 왜 둘 다 들어가?"

 "아오, 더블플레이당한 거야. 창조병살..."

 "응? 창조병살? 더블플레이는 또 뭐고.."

 "아! 그냥 잘 모르겠으면 응원가나 따라 불러."

 "뭐라고?"

 "그냥 응원이나 하라고~~"

 ".................."


 병살타로 짜증이 날대로 난 남친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물어보는 여친 때문에 더 짜증이 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말을 던져버리고 맙니다.

 이 시키는 이깟 재미도 없는 공놀이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무시하나 하는 맘이 든 여친도 말문이 막혀 버리죠.

 두 남녀는 분을 삭이려 맥주를 들이붓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뙤약볕에 미지근해지고 김 빠져버린 맥주는 떫은맛이 나고, 짭짤하고 바삭바삭하던 꾸이꾸이는 모래알처럼 텁텁하게 느껴집니다.

 망할 햇빛은 왜 이렇게 강한지 아까 마신 맥주 기운까지 더해져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신경 써서 하고 나온 화장은 다 무너져 내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자기에게는 신경을 1도 안 쓰는 남친은 입을 꾹 다물고 경기장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니, 지가 감독이야 뭐야...'


 오늘만 참는다며 참을 인을 열 번은 쓴 여친은 내가 다시 너랑 야구장을 오면 우리 엄마 딸이 아니라는 맹세를 하며, 3시간의 기다림 끝에 경기장에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래도 이겼다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대는 남친이 세상 한심하고 찌질해 보입니다.

 짜증이 난 여친은 예정되어 있던 저녁식사 대신 피곤해서 빨리 쉬고 싶다며 집으로 가 버리고 남친은 뭐가 그렇게 피곤하다고 그러나 하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친구를 불러냅니다.

 여친이 어떤 마음인지는 전혀 모른 채 친구와 즐겁게 삼쏘를 즐기고 집에 들어간 남친은 여친에게 몇 번씩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고, 자기도 피곤하고 내일은 월요일이라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


.


.


.


 그렇게 미소 냉전보다 더한 냉전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 분들 많으실 겁니다.

 야구도 약간 운전 같아서 잘 알거나 잘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 야알못에게는 세상 어렵고 복잡한 상황일 수 있죠.

 위의 이야기에서 벌어진 도루나 더블플레이 같은 상황도 야구를 즐겨 보시는 분들에게는 마치 좌회전할 때 좌측 깜빡이를 켜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지만 야구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습니다.

 야구는  축구나 농구에 비해 정지해 있는 시간이 길고 경기 진행 시간도 훨씬 긴 데다가 상당히 복잡한 룰에 의해 진행되는 종목이라 룰을 잘 알지 못하면 굉장히 지루한 스포츠입니다.

 생전 판소리라곤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5시간 걸리는 판소리 심청가 완창을 끝까지 보라고 하면 그만한 고역이 없겠죠?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야구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야구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끌어들이고 싶어 하죠.

 그래서 내가 가르쳐 줄 테니 같이 보러 가자 하고는 정작 보러 가면, 자기만 경기에 집중한 나머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거나 뭐 이런 당연한 걸 물어보나 하는 생각에 대충 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같이 보러 간 야구 초심자는 3시간 넘게 잘 알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시간도 긴 재미없는 경기를 보게 되고, 자연히 야구에 흥미를 잃게 되죠.

 야구에만 흥미를 잃으면 다행인데 그깟 야구 좀 잘 안다고 은근히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함께 간 사람에게 기분을 상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도 해제되고 예전처럼 다시 야구 직관할 일이 많아지겠죠. 꼭 직관이 아니더라도 야잘알과 야알못이 함께 야구를 보는 일들이 많아질 겁니다.

 위의 두 연인처럼 안타까운 일을 겪지 않고 모두가 즐겁고 평화롭게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김팀장의 야알못 교실>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야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무시당하지 않고 보실 수 있도록 기초적인 야구 룰과 얄팍한 지식을 나누는 글들을 써 볼 예정이니 평소에 야구에 약간 관심은 있었지만 잘 몰라서 못 보던 분들이나 나는 야알못인데 새로 사귄 남친이나 여친이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실 만하겠죠.

 이번 회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다음 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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