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소울메이트가 하필 OB 팬 #3
즐겁지만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스무 살의 한 해는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그야말로 1년이 순삭 된 느낌이었다고 할까.
찰나처럼 느껴지던 1년이었지만 그동안 나는 점점 나와 녀석의 다름을 받아들이게 됐고 굳이 우리 사이의 간극을 없애보려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고 불편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마냥 좋았고 언제나 즐거웠다.
그리고 그 한 해동안 어딘가로 이사 가면서 싣고 가야 한다면 몇 트럭 분량은 될만한 에피소드들을 쌓았다.
평생 할 응원을 그 1년에 몰아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뭘 해도 마무리는 응원으로 끝내곤 했는데 과내의 크고 작은 행사가 됐든 세미나가 됐든 동아리 모임이 됐든 뒤풀이의 마지막 순서는 응원이었다.
학교 정문이든 후문이든 그냥 학교 근처 길바닥이든 장소 불문하고 모임이 끝날 때쯤에는 으레 한 명이 가운데로 나가 시동을 걸고 나머지는 둥그렇게 대형을 이루어 애니멀 사운드라고 하는 괴성을 지르며 응원을 시작하였다.
"우린 항상 널 응원해. 파이팅!" 같은 멘트를 날릴 법한 응원 로봇처럼 말이다.
아무도 축구든 농구든 시합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싸움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그렇게 응원을 해댔고 때로는 몇 시간 동안 이어지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피가 끓어올랐을까.
강남역에서 동기 서넛이서 술을 마시고 가장 취기가 오른 친구 하나가 학교 이름을 외치니 여기저기서 한두 명씩 모여들어 시티극장 앞에 열 댓명이 빙 둘러서서 엘리제를 목놓아 불렀던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리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최고의 응원가였는데 요즘 후배들은 '민족의 아리아'가 가장 피를 끓게 만드는 곡이라고 하더라. 그 '민족의 아리아'와 LG의 '서울의 아리아'가 같은 곡이니 역시 둘은 통한다. 육성 떼창으로 앰프를 이겨버리는 두 집단도 비슷하다.)
미팅을 나갔다가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찾아오면 타학교 여학우들과 강강술래 대형을 짜고 합세시키려고 했으니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그때 그냥 싫은 티만 내줘서 감사하다.
나이트에서 플로어 중앙을 차지하고 빙 둘러서서 말도 안 되는 몸짓을 하던 우리를 보면서 욕하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싸움 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우리끼리는 끈끈한 결속력이었지만 지나가는 누군가의 눈에는 술주정으로 보였을 수도 있고, 우리에게는 무용담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집단 광기일 수도 있는 그 모든 사건들에 그 녀석과 나는 늘 함께 있었다.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응원이었지만 정작 가장 열과 성을 다해서 해야 할 연고전(우리는 고연전이라고 불렀지만 그건 우리끼리만 그런 거였으니 그냥 연고전이라고 하자.)은 그해 열리지 못했다.
그해 8월 한총련이 연대를 점거하고 장기간 농성을 벌이다 경찰 병력에 의해 해산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한총련 사태' 또는 '연세대 사태'로 불리던 그 사건의 여파로 연대 전체가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힘들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복구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학하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행사였지만 취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과격한 양상으로 흐르던 학생운동에 대한 비난 여론이 폭발했고 운동권이라고 부르던 세력이 급격히 축소되어 대학가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진 계기가 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런 쪽에는 전혀 관심 없이 그저 신나는 이벤트가 열리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운 신입생이었다.
학생운동에 빠져있던 선배들은 나 같은 후배들을 생각이 없다며 못마땅하게 바라봤고 나 같은 후배들 또한 명분도 없이 과격한 사위만 일삼는 것으로 보이던 그런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뿌리 깊은 진성 운동권과 사회 문제보다는 내 문제와 나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개인주의자들이 공존하던 과도기의 시작이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지닌, 지금 생각하면 겨우 한두 살, 많아야 서너 살 차이인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지만 응원가를 부를 때는 세상 둘도 없는 사이인 양 거리낌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몸을 부딪히는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해 LG와 OB는 나란히 7위와 8위를 차지했다.
그 전해 우승팀 OB와 두해 전 우승팀인 LG가 나란히 맨 뒷자리에 머물렀다는 게 놀랍기는 했지만 야구가 아니라도 즐거운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던 스무 살의 그해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도, OB 팬인 나의 소울메이트에게도 야구 성적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떳떳하게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서 응원을 해도, 돌이켜보면 별 것도 아닌 주제로 제 딴에는 심각하게 밤새 논쟁을 벌여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자유와 특권을 누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