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정답은 없다는데, 왜 다 자기 말이 정답이래?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언어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교육 교사이다.
이 정도 이력이라면 육아에서도 '정답'을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단언컨대, 정답은 없다.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며 수많은 육아서와 유튜브, SNS를 찾아 헤맸다.
'도대체 뭐가 맞는 거지?'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녔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만약 정답이 정말 있었다면 그 많은 책과 강의, 영상들이 왜 필요했겠는가.
쪽쪽이 하나 끊는 방법만 해도 말이 이렇게 다른데,
아이가 크며 겪는 수많은 문제들에 정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아이가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 엄마처럼 하면 되겠지?' 싶다.
"누구네 누구는 서울대 갔대"라는 말을 들으면, 그 엄마의 교육 방식이 곧 정답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엄마들의 단톡방은 늘 시끄럽다.
"이게 좋대."
"아니야, 누구는 저게 효과 있대."
"우리 동네 엄마들은 다 이렇게 하던데?"
알고 보면 다 누군가의 경험담일 뿐인데, 듣다 보면 하나같이 정답처럼 들린다.
그 결과, 우리는 더 흔들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흔들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영어도, 조기교육도, 사교육도, 대학입시도 결국은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존재한다.
안타까운 건 정작 엄마들이 '아이의 행복'이라는 숲은 놓치고,
눈앞의 '성적'이나 '입시' 같은 나무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숲 전체의 모양을 바라보며 나무를 다듬어야 하는데, 나무만 보다가 숲을 망가뜨리는 일이 반복된다.
다행히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숲을 보도록 가르쳐 준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성적표의 숫자보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다.
공부에 관심 없던 나는 받아쓰기에서 늘 10점, 20점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60점을 받아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보통이라면 "100점도 아닌데 뭘" 하고 넘겼을 점수다. (현 교육과정 기준으로는 D, 못한 점수였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우담이 진짜 잘했네!" 하며 크게 칭찬했고,
저녁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을 구워 주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점수보다 노력을 봐주는 엄마 덕분에,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또 다른 장면은 고3 시절이다.
나는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엄마, 나 대학 안 가고 일본 가서 타코야끼 장사할래"
라고 선언했다. (2000년대 후반, 일본 문화가 10대 사이 열풍을 끌던 시절이었다.)
좋은 대학에 간다 해도 또 취업 경쟁, 승진 경쟁...
그런 인생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엄마는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혼자 가면 위험하니 엄마랑 같이 가자. 엄마가 도와줄게."
우리는 실제로 일본에서 사업을 어떻게 시작할지 구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엄마는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런데 만약 잘 안 돼서 한국에 돌아오면 어떡하지?
아직 우리 사회는 학벌이 중요하니까 힘들 수도 있어. 대학에 가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도 많더라."
엄마는 이렇듯 언제나 나를 믿어주면서도 현실을 보게 해주었다.
강요 대신 지지, 기대 보단 공감...
엄마는 나무 몇 그루의 성적이나 대학보다, 내 인생이라는 숲의 건강함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 엄마의 시선은 교사로서의 나에게도 이어졌다.
학교에서 나는 숲을 보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성적이라는 나무에만 매달리다 자신을 잃어버린 아이,
목표에만 몰두하다 정작 무엇을 위해 배우는지 모르는 아이...
그 아이들을 보면서 더 확실히 깨달았다.
숲 전체가 무너지면, 곧게 자란 나무 몇 그루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며 흔들릴 때마다 먼저 아이들의 숲을 본다.
누군가 "지금 이 나무부터 고쳐야 한다"고 다급히 말해도,
그 나무를 손대는 것이 정말 숲 전체를 지키는 일인지 먼저 생각한다.
나무 하나의 결점을 고치려다 숲을 망가뜨리는 건 아닌지, 늘 멈추어 바라보려 한다.
내 육아 에세이는 정답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마주한 수많은 현실적 선택들 앞에서..
나는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기준을 세웠는지를 나누려 한다.
어린이집을 보낼지 말지, 보낸다면 언제 보낼지,
조기 사교육을 어떻게 바라볼지,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말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선택이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부모의 선택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잠시 멈추어 생각할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나의 이 고민은 숲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무만 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