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내는 어린이집, 안 보내면 불안해.. 그런데 나도 죽겠다
우리가 자라던 80~90년대만 해도 '유치원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치원은 물론, 그 이전의 어린이집까지 보내는 게 너무 당연한 분위기가 됐다.
나 역시 첫째를 막 낳았을 때, 산부인과와 조리원에서 이런 대화를 자주 들었다.
"어린이집 대기 걸었어?"
"아직 출생신고를 안 해서..."
"얼른 해야 해. 아니면 대기 순번 밀려!"
그때 나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어린이집을?' 하고 흘려들었다.
하지만 첫째 봄이가 자랄수록, 어린이집 이야기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 되었다.
"언제 어린이집 보낼 거야?"
"대기는 어디 어디 걸어놨어? 맞벌이면 국공립 위주로 해야 해."
"원하는 곳 보내려면 빨리 걸어둬야 한대."
그런데 여러 이유로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유치원에 가기 직전까지, 무려 46개월 보름이라는 기간동안 봄이를 집에서 돌봤던 것이다. 가능했던 조건을 꼽자면 이렇다.
1.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휴직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2.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해 야근이 거의 없었으며,
3. 친정부모님이 가까이 계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감사하게도, 우리 집은 어린이집을 꼭 보내야 할 이유가 크지 않았다.
물론 가정보육은 생각보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매우 값졌고,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봄이와 작은 놀이방에서 하루 종일 이런저런 그림책을 읽고 장난감을 만지며 놀던 기억,
낮잠에서 깨고 나면 눈을 반짝이며 그림책을 들고 와 "엄마, 이거 읽어줘" 하던 봄이의 모습,
문화센터 수업 시간에 맞춰 유아차를 밀고 가며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를 함께 부르던 길...
그 시간들은 내게도 특별한 배움이었다.
봄이가 어떤 기질을 가진 아이인지, 싫어하는 음식과 상황은 무엇인지, 무엇에 관심을 보이고 좋아하는지,
나는 늘 아이 곁에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었고 그에 맞춰 작은 자극을 계속 건넬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 여름이는 달랐다.
2학기 복직을 앞두고 워킹맘 선배들이
"복직과 기관 적응을 동시에 시작하면 정말 힘들다.
봄이를 유치원 보내는 김에 여름이도 같이 어린이집에 보내라"며 조언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첫째를 챙기며 둘째까지 전적으로 집에서 돌보는 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지막지하게) 쉽지 않았다(!!!).
결국 여름이는 18개월 무렵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름이에겐 미안하지만,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두 아이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이다.
나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된 두 아이의 차이를 비교하게 됐다.
봄이는 집에서 주양육자인 엄마와 안정적으로 긴 시간을 보냈고,
여름이는 일찍부터 또래들과 생활하며 여러 경험을 했다.
그리고 겪어보니 가정보육엔 가정보육만의 장점이, 어린이집엔 어린이집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집을 '좋다/나쁘다'로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당연한 선택처럼 여겨지는 요즘,
첫째 봄이에 대한 나의 결정은 주변의 질문과 시선에 자주 부딪혔다.
"어린이집 안 보내면 사회성이 떨어진다던데, 괜찮아?"
"집에서 엄마하고만 지내면 언어가 늦을 수도 있어."
"너무 힘들지 않아? 요즘은 다 어린이집 보내잖아."
그리고 사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흔들렸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곤 했다.
그런데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리고 교사로서의 경험과 부모로서의 꾸준한 관찰을 더해 보니,
그 주장들에는 몇 가지 큰 오해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앞으로의 시리즈에서는 사회성이란 무엇인지,
언어 발달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를 내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풀어보려 한다.
내 메시지는 단순하다.
어린이집은 필수 코스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라는 것.
보내든 안 보내든, 중요한 건 그 선택 속에서 부모가 어떤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보느냐다.
그리고 그 기준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와 부모의 행복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