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리는 우리아이, 어린이집에 가면 좀 달라질까?
첫째 봄이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린다.
이런 봄이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늘 한결같았다.
보내기 전에는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야 사회성이 늘어, 어서 보내",
"집에만 있으면 낯가리는 거 더 심해지기만 해서 힘들어."
유치원에 보낸 이후, 적응 기간에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린이집을 안 보내서 그래."
라는 말이 돌아왔다.
학기 초, 아이가 첫 기관인 유치원에 적응을 쉽사리 못하고 힘들어할 때는 나도 흔들렸다.
'정말 내가 어린이집을 안 보낸 탓일까?' 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유치원에 훌륭히 적응해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칭찬은, 봄이가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감정을 성숙한 태도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들어왔던 '사회성'이라는 단어가,
사실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흔히들 말한다.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면 확실히 사회성이 늘더라."
참 그럴듯한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많은 부모들이 여전히 사회성 = 사교성이라고 여긴다.
즉, 낯을 안 가리고, 누구에게나 잘 다가가며, 친구를 금세 사귀는 아이가 사회성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을 떠올려 보자.
어디서든 주도적으로 말을 걸고 모임 분위기를 휘어잡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언제나 남의 경계를 함부로 넘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항상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이 사람은 과연 사회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단순한 나만의 판단이 아니다. 국가에서 실시하는 영유아건강검진 문항만 봐도 알 수 있다.
먼저, 돌 전후(9~12개월) 받게되는 3차 영유아검진의 '정서 및 사회성 교육' 항목에서는 이렇게 묻는다.
- 아이가 엄마 또는 양육자와 함께 새로운 놀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까?
- 아이가 엄마 또는 양육자의 행동을 모방합니까?
- 아이가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만, 엄마 또는 양육자와 함께 있으면 가까이 갑니까?
- 엄마 또는 양육자가 없으면 불안해하지만, 엄마 또는 양육자가 돌아오면 편안해합니까?
굵은 글씨로 표시한 것만 보아도 알다시피,
이 시기 사회성은 전적으로 엄마·양육자와의 안정된 애착을 기준으로 한다.
다시말해, 낯을 안 가린다고 사회성이 높은 게 아니라, 보호자와의 신뢰 속에서 낯선 세상을 탐색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두 돌 전후(18~24개월) 받아야 하는 4차 영유아검진도 비슷하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놀거나 관심을 보입니까?"라는 질문이 하나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주양육자와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 아이가 때때로 엄마 또는 양육자 곁을 떠나 혼자 주변을 살펴봅니까?
- 아이가 불안해하다가도 엄마 또는 양육자 곁에서는 안심합니까?
- 아이가 엄마 또는 양육자가 웃을 때 같이 즐거워하며 잘 웃습니까?
- 아이가 화가 났을 때 엄마 또는 양육자가 달랠 수 있습니까?
두 돌 무렵까지도 사회성의 중심은 여전히 부모와의 신뢰 관계다.
세 돌 전후(30~36개월)의 5차 영유아검진이 되어서야 사회성 질문이 확장된다.
-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함께 놀 수 있습니까?
- 아이가 어른이나 다른 아이들의 행동을 따라하거나 흉내 냅니까?
- 아이가 엄마 또는 양육자와 잠시 동안 떨어질 수 있습니까?
- 아이가 듣는 사람을 바라보며 말할 수 있습니까?
- 아이가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 있습니까?
드디어 이 무렵에야 또래와의 상호작용, 규칙 지키기가 사회성의 일부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만 4세(42~48개월), 6차 영유아검진에서는 사회성의 정의가 한층 분명해진다.
- 아이가 또래와 노는 것을 좋아합니까?
- 아이가 역할놀이를 할 수 있습니까?
- 아이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을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공감의 말, 또는 표정과 행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까?
- 아이가 협동 놀이(서로 역할을 정해서 놀이를 하거나 협동하며 충분히 상호관계를 이루어 함께 어울림)를 할 수 있습니까?
이쯤 되면 사회성이 단순히 '낯 안 가리고 친구를 잘 사귄다'가 아니라,
'공감, 협동, 규칙 준수 같은 공동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이집은 어떨까?
돌도 안 된 아이를,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해서 사회성이 저절로 자라나는 건 아니다.
이 시기의 사회성은 결국 가정에서 주 양육자와 얼마나 충실히 상호작용했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나쁘지 않다. 다만 '보냈으니 사회성은 다 해결됐다'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어린이집은 아이가 생활하는 수많은 환경 중 하나일 뿐이다.
가정교육이 방치된다면 사교성은 늘 수 있어도, 사회성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 있다.
또 반대로, 집에서 애착과 신뢰를 충실히 쌓아준다면,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아도 사회성 발달은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엄마들이 이렇게 말한다.
"낯가림이 심한데 어린이집 가면 사회성이 좋아질 거야. 우리 애도 처음엔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가고 싶다고 난리야"
하지만 사실은 겉보기와는 조금 다르다.
처음 간 환경에 낯설어 힘들어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환경에 익숙해져서 잘 지내게 되는 것뿐이다.
그건 사회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단순히 적응한 것이다.
낯가림은 타고난 기질이기에 새로운 장소에서는 다시 드러나게 된다.
다시 말해, 어린이집에 다닌다고 낯가림이 사라지거나 사회성이 갑자기 높아진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공간과 사람들에게 익숙해졌을 뿐이란 말이다.
반면 진짜 사회성은 기질과는 별개로, 부모와의 안정된 애착 속에서 차근차근 무르익는다.
그래서 내가 전하고 싶은 말?
"어린이집 보내야 사회성이 좋아진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는 모습은 사회성이 자란 결과가 아니라, 그저 그 환경에 적응한 모습일 수 있다.
낯가림이나 사교성은 기질이고, 사회성은 애착 위에서 무르익는 능력이다.
결국 사회성이란 건 '낯을 안 가리는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규칙, 공감, 협동을 배우는 능력이다.
어린이집은 그 길 위의 하나의 선택지일 뿐, 정답은 아니다.
정답은 언제나 아이와 부모가 함께 쌓아가는 관계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