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가면 말이 쑥쑥 는다는데, 왜 우리애는 아닐까..?
큰아이 봄이는 말을 참 빨리 시작했다.
16개월 무렵부터 본인 경험의 범위 안에 있는 단어라면 어눌하게나마 말할 수 있었고,
20개월쯤 되자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었다.
“우담아 우담아! 나 쩌거 먹고 찌퍼!”
마트 벽에 붙은 아이스크림 포스터를 가리키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당시, 발달 단계를 평가해 준다는 어플에서 재미삼아 검사를 여러 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언어 영역에서 또래보다 적게는 1년, 길게는 2년 이상 빠르다는 결과가 늘 따라왔다.
유치원에 입학한 지금도 선생님들은 “봄이는 말을 어쩜 그렇게 잘해요? 표현력이 남달라요.
나중에 변호사가 되려나?”라며 웃곤 한다.
반면 둘째 여름이는 달랐다.
두 돌이 갓 넘은 지금, 문장 발화가 아직 완전하지 않고 언어 발달 수준은 또래 정도이거나 약간 느린 편이다.
같은 부모, 같은 집,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두 아이인데 왜 이렇게 발달 속도가 다를까?
봄이를 가정보육하던 시절, 주변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있었다.
“어린이집 보내야 말이 트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집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오히려 집에서 키운 아이가 말을 훨씬 빨리, 훨씬 다양하게 했다.
도대체 왜일까.
교육학이나 언어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개념이 있다.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가 말한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과,
미국 언어학자 크라센(Krashen)의 i+1이다.
먼저, 근접발달영역이란, 아이가 이미 혼자 할 수 있는 것과 전혀 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도움을 받으면 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며, 바로 그 경계에서 배움이 가장 빠르게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혼자 옷을 다 입을 수는 없지만, 엄마가 단추를 한두 개 같이 채워주면 끝낼 수 있다면
그 단추를 잠그는 과정이 바로 근접발달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어른이 제공하는 작은 도움(Scaffolding, 발판)이 다음 성장의 계단이 된다.
크래션(Krashen)의 i+1도 같은 맥락이다.
i는 아이가 이미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수준, i+1은 그보다 딱 한 단계 높은 수준을 뜻한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아이가 "사과"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때,
부모가 "빨간 사과"라고 말해 주면,
기존에 입력되어 있는 값인 '사과(i)'는 별다른 의식적 노력 없이 처리된 후,
새로운 정보인 '빨간(+1)'에 초점이 맞춰 학습이 일어나서 새로운 단어나 '형용사+명사'라고 하는
구조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또, 예를 들어 "쩌기 붕붕 간다"라고 말 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진짜네~? 파란 붕붕이가 빠르게 슝 간다!"라고 살짝 덧붙여주면
'붕붕이가 간다(i)'에 더해진 '파란(+1)', '빠르게(+1)'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는 늘 이렇듯 '지금보다 단 한 단계 높은 자극'을 만났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너무 쉬운 입력은 자극이 되지 않고, 너무 어려운 입력은 이해되지 않는다.
언어는 섬세하게 조율된 +1 입력 속에서만 자라난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적절한 i+1'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아이의 눈을 가장 자주 마주치는 주양육자다.
아이의 말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순간적으로 나온다.
어느 날은 블록을 쌓다 "엄마, 높다!" 하고 외치고,
다음 순간엔 "무너졌어!"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때 그 감정과 표현에 즉각 반응하며 언어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 바로 주양육자이다.
반면, 어린이집은 구조적으로 다대일 환경이다.
교사가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고, 그 아이가 내뱉은 순간의 표현에 맞춰
곧바로 +1을 던져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이 한 명이 "토끼!"라고 말했을 때,
교사가 동시에 5~10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 귀여운 토끼네? 귀가 정말 길~다!"라며 맞춤 반응은 대부분 없이 그냥 흘러가버린다.
물론 다양한 활동 속에서 언어적 자극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집중되고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단순히 집단적인적인 '노출'에 가깝다.
노출은 언어에 익숙하게 만들 뿐, 새로운 문장 구조나 어휘 확장을 직접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즉, 어린이집에서는 언어의 '폭'은 얕게나마 넓어질 수 있어도,
깊이는 자라기 어렵다.
언어는 대화 속에서 자란다.
TV나 영상 속 캐릭터가 아무리 또렷한 발음으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해도
그건 아이를 향한 상호작용이 아니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킬 때
그 시선을 따라가 "그래, 우리 어제 본 원숭이가 여기에 있네?"라고 말해 주는 순간,
그게 바로 언어 발달의 핵심 장면이다.
그 대화 속에서 아이는 단어를 배우고, 문장을 익히며, '서로 주고받는 말'이라는 언어의 본질을 이해한다.
이건 어린이집이라는 집단적 공간보다는 가정이라는 밀착된 관계에서 훨씬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봄이와 여름이를 키우며 나는 언어 발달의 본질을 다시 깨달았다.
언어는 장소나 기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내뱉은 한마디 위에 내가 한 단어를 더 얹어줄 때 그때 언어는 자랐다.
결국 아이의 언어는 '어디서'보다 '누구와, 어떻게'의 문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