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그거 그냥 밈일 뿐이잖아~(?)
첫째 봄이의 오랜 가정보육을 마무리하며 유치원에 보내던 3월,
나는 같은 시기에 갓 18개월이 된 둘째 여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두 가지의 다른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드디어 나도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해방감,
그리고 여름이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봄이는 46개월 반 동안 내가 직접 돌봤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매일, 매순간 지켜봤다.
그래서 둘째를 고작 18개월 만에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건
마치 '나만 편하려고 아이를 맡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직 자기표현도 못하고, 혼자 밥도 잘 못 먹는데... 2학기 복직을 하면 더 자주 못 보게 될 텐데,
반년이라도 함께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하루에도 열 번씩 들었다.
갈팡질팡하며 마음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결국 '복직과 아이의 첫 기관 적응을 동시에 겪는 건 나도, 아이도 더 힘들 거야'라는 결론을 내리고
여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런데 아이를 보낸 뒤, 내 안에 변화가 찾아왔다.
하루 중 단 몇 시간이라도 '나 자신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돌아왔다.
커피 향이 느껴지고, 햇살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그 잠깐의 여유가, 이상하게도 아이들을 대할 때 내 태도와 목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내가 웃을 수 있을 때, 아이도 편안해진다는 걸.
영국의 정신분석가 존 볼비(John Bowlby)는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받을 때 자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단어인 '애착'을 토대로
아동의 생존 전략과 발달을 설명한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을 제시한 사람이다.
볼비는 아이가 세상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기준으로 '양육자의 일관된 반응성'을 꼽았다.
아이가 울 때, 두려워할 때, 실망할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아이의 세상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SNS 등으로 널리 알려진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낯선 상황 실험'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올 때, 엄마 품에 안겨 금세 진정하는 아이들은 '안정 애착형'이고,
엄마가 돌아와도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화를 내는 아이들은 '불안정 애착형'이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불안정 애착형 아이들은 양육자의 반응이 일관되지 않았던 환경에서 자란 경우였다.
이 결과는 명확했다.
엄마의 감정이 곧 아이의 정서적 기반이 된다.
엄마가 불안하고 예민할수록 아이는 그 불안을 '자기 탓'으로 받아들이며 세상을 불안하게 느낀다.
그래서 '엄마의 행복'은 단순히 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구호가 아니다.
아이의 정서, 사회성, 언어 발달의 밑바탕이 되는 '보이지 않는 토양' 같은 것이다.
아마 이전까지 내 글을 읽으며
'역시 가정보육이 더 좋구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나는 나쁜 엄마인가봐'
이런 생각을 한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 글의 목적은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가정보육에도 이런 장점이 있다"는
오늘도 가정보육을 하느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엄마들을 위한 응원의 의미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들이 때때로
엄마들에게 죄책감이라는 잘못된 의미를 전달하고,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릴 땐 엄마가 옆에 있어야 최고지."
"힘들어도 아이 곁에 있어주는 게 엄마야."
이런 말들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엄마를 스스로 몰아붙이게 만든다.
마치 '좋은 엄마는 울지도, 지치지도, 흔들리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처럼...
그러나 아이가 진짜 원하는 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안정된 엄마다.
육아우울로 감정이 흔들리는 상태에서 "그래도 내가 직접 봐야 해"라며 버티는 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민감하다.
엄마가 미소 짓고 있어도 눈빛이 흔들리면 그걸 알아챈다.
'엄마가 기분이 좋을 때랑 아닐 때랑 말이 달라.' 이건 아이들의 무의식적인 감각이다.
그러니 엄마의 회복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그건 아이를 위한 선행이다.
각자의 리듬을 되찾은 뒤 다시 만났을 때
아이의 눈빛이 더 밝아지고, 엄마의 목소리도 부드러워진다.
그 시간은 서로에게 필요했던 휴식일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어린이집을 고를 때
'영어, 코딩 같은 교육활동이 많다더라',
'시설이 깨끗하고 새거래, 크고 넓대',
'그 원장님이 유명한 곳에 있다가 왔대'
이런 눈에 보이는 기준, 카더라하는 소문으로 고민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린이집은 영어 단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나 대신 아이의 하루를 함께 살아줄 사람을 찾는 공간이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건 커리큘럼이 아니라 사람이다.
아이에게 말을 걸 때 교사가 어떤 눈빛을 하는지,
울고 있는 아이를 안을 때 손길이 따뜻한지,
원장이 상담 중 부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지...
이런 작고 진심 어린 부분들이 바로 아이의 하루를 만든다.
아이의 하루는 결국 사람으로 채워진다.
화려한 프로그램보다 따뜻한 교사의 표정 하나가 아이에게 훨씬 더 큰 안정이 된다.
엄마의 마음은 알고 있다.
그곳이 따뜻한 곳인지 아닌지를.
아이를 위한 '좋은 어린이집'을 고르는 일은 사실, 아이가 아니라 엄마 자신의 감을 믿는 일이다.
육아는 여전히 어렵고, 정답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엄마의 행복은 사치가 아니라, 아이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흔들리지 않아야 아이도 자랄 수 있다.
내가 행복한 하루를 사는 것이, 결국 아이의 내일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 결정이 단순히 '모두가 하는 선택이라서'가 아니라 '나와 아이가 더 행복하고자' 하는 선택이라면,
그건 충분히 옳은 결정이다.
가정보육을 하든, 어린이집을 보내든, 우리는 모두 아이를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죄책감 대신, 조금의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오늘도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중심을 세우려 애쓰는 모든 엄마들에게 전한다.
당신이 웃는 하루가, 이미 아이에게 가장 큰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