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3) 엄마표 영어가 두려운 엄마들

"전 영어를 못해서 안돼요"... 진짜요?

by 세우담

나에게 영어유치원에 대한 정말 솔직한 답변을 묻는다면,

그리고 예의의 경계를 잠시 내려놓고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


"그 돈을 투자하고도, 아이가 영어를 못하거나 싫어해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경제 상황이라면 보내도 좋습니다."


조금 단호하게 들릴 수 있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앞 글에서 말한 바대로 영어유치원은 비용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도 인간인지라 자연스레 '이 정도 돈이면, 그만큼 결과가 나와야지'하고
어느정도의 비용 대비 효과를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투자한 만큼의 눈에 띄는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라는 실망감과 분노는
그대로 아이에게, 배우자에게, 그리고 결국 가족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으로도 빠듯하고, 정서적으로도 눌리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영어유치원를 고려하고 있을 만큼의 경제력은 있지만,
그 선택이 가족 모두에게 상당한 경제적 희생과 절약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더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이는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이기도 한데, 바로


"영유 대신, 엄마가 아이와 함께 집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주기적으로 해외여행 등으로 실제 영어를 써 보는 경험을 만들어줄 것." 이다.


우리 집의 실제 영어 루틴


이 쯤에서 우리 집을 예로 들어보자.
참고로 둘째 여름이는 아직 모국어 구조가 완벽하지 못해서

현재까지 어떤 영어 인풋도 전혀 주지 않고 있는 상태라 앞으로의 이야기는 온전히 첫째 봄이에 대한 것이다.


봄이는 말이 빨랐기에 두 돌 무렵부터 노부영, 마더구스 같은 영어 노래들로

가볍게, 부담 없는 노출을 시작했다.
이 시기의 목표는 학습이 아니라, 그저 '저 소리 재밌다, 다르다'라는 감각을 심어주는 정도였다.


어느 정도 노출이 쌓였다고 느껴질 때쯤, 나는 봄이의 수준보다 딱 한 단계(i+1) 높은 문장을
일상 속에서 슬쩍슬쩍 끼워 넣어 말해주었다.

예를 들어, 봄이가 'hop', 'rabbit' 정도를 알고 있을 때
나는 "봄아, can you hop like a rabbit too?" 같은 식으로
익숙한 단어들(i)에 새로운 요소(+1)를 덧붙여 주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문장 길이의 영어를 이해할 만한 시기쯤,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한 영어 전집을 중고로 구매해서 꾸준히 들려주고, 같이 읽었다.
(i+1을 매번 직접 설계하는 건 꽤 에너지가 드는 일이라,
이미 연구와 설계가 되어 있는 전집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6개월이 지난 후, 우리는 가까이는 홍콩, 멀게는 스페인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영어가 단순히 책에서 배우는 문자 언어'가 아니라
공항, 호텔, 식당, 길거리에서 실제로 쓰이는 언어라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 여행에서 봄이는 엄마가 한국말을 쓰지 않고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아이의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아는 어떤 언어가, 나와 다른 세상 사람들과 이렇게 말을 통하게 해주는구나' 라는 놀라움.


그리고 48개월이 지난 어느 날, 봄이는 스스로 말했다.

"엄마, 나도 영어 잘하고 싶어."


그때부터 우리는 필리핀 선생님과 화상영어를 시작했다.

화상영어를 시작한 이유는 '영어를 잘하게 만들겠다'기보다는
'이미 생긴 동기를 살려서, 말해볼 기회를 열어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엄마들의 반응은 거의 똑같다.


"넌 영어 선생님이니까 그렇지. 난 영어 못해"
"나도 책으로 해보려 했는데, 애가 단어 물어보는 순간 내가 몰라서 포기했어."


엄마들이 이렇게 말할 때마다 느낀다.
'아, 영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마음 상태’가 문제구나'라고.


그래서 이 글에서는 영어유치원보다 우선인, 그리고 어떤 교재나 어떤 학원보다 먼저 다뤄야 하는
엄마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아이의 영어 태도는 엄마의 언어 감정을 닮는다


아이의 영어는, 사실 영어 실력보다 먼저 함께 걷는 사람의 감정을 닮는다.

최근 제2언어교육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결론이 있다.


"아이의 외국어 태도는 부모의 언어정서(linguistic emotion)에 의해 크게 결정된다."


즉, 부모가 영어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거의 필터처럼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만약 엄마가 영어만 나오면 긴장하고, 틀릴까 봐 두렵고, 발음을 걱정하고,

"(I want coffee! 정도의 영어는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 못해"를 입에 달고 산다면, 아이 역시 영어 앞에서 몸이 먼저 굳는다.


반대로, 엄마가 틀려도 웃고, 모르면 "같이 찾아보자" 하고,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말해보는 모습이라면, 아이도 영어를 훨씬 가볍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영어교육론에서 유명한 Affective Filter Hypothesis(정의적 여과막 가설)도 바로 이 지점을 설명한다.
학습자의 감정(불안, 두려움, 부끄러움)이 언어 입력과 습득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아이의 여과막은 혼자 생기지 않는다.

부모의 여과막, 특히 함께하는 엄마의 여과막을 그대로 따라 만든다.

엄마가 "틀려도 괜찮아. 말만 통하면 돼."라고 말해놓고,

정작 아이가 단어를 물어보면 눈이 동그래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 그.. 잠깐만. 그건... 엄마도 모르는데... 어쩌지”


이렇게 당황한다면,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렇게 새겨진다.

'아, 영어는 모르면 큰일 나는 언어구나.'
'틀리면 안 되는 언어구나.'
'잘 모르면서 말하면 창피한 거구나.'


이렇게 형성된 영어 불안은 교재를 무엇을 쓰느냐,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보다 훨씬 더 큰 장벽이 된다.

그래서 3편의 진짜 핵심은 이것이다.


영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그 태도는 집 안의 분위기, 특히 엄마의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2. "발음 안 좋은 내가 가르치면, 애한테 해가 될까 봐요"


이는 한국 엄마들이 정말, 정말 많이 하는 말이다.

"내 발음이 구려서... 내가 가르치면 애 발음 망가지는 거 아니에요?"
"r/l, t/d도 구분 못하는데, 이런 발음 보여주는 게 맞나 싶어서요."


하지만 현대 영어교육에서는
'원어민 발음처럼 구사하는가'보다
'얼마나 명료하게 전달되는가(intelligibility)'를 훨씬 더 중요하게 본다.


흔히 한국인들은 영어를 '북미어'라고 착각하곤 하지만 사실 영어는 국제어(lingua franca)다.

전 세계 영어 사용자의 80% 이상이 비원어민이고, 아이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영어 화자는
미국, 캐나다, 영국 사람만이 아니라 싱가폴, 인도, 유럽, 중동, 아프리카 사람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런 시대에, 한국식 억양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게 곧 나쁜 영어는 절대 아니라는 소리다.

문제는 아예 다른 단어로 들릴 정도로 흐트러지는 경우겠지만,

보통 엄마들이 걱정하는 수준은 전혀 그 단계에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는 엄마의 발음을 들으며 이렇게 느낀다.


'아,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구나.'
'중요한 건 소리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 맥락이구나.'


이 인식이 커질수록, 아이의 발음 집착, 실수 공포는 줄어들고 '일단 말해보는 힘'이 자란다.


3. "엄마도 몰라"가 아니라 "같이 찾아보자"가 만드는 힘


또 하나, 엄마들이 엄청 불편해하는 순간이 있다.

"애가 영어 단어를 물어봤는데 내가 모르는 거야.

순간 너무 창피해서, 그 다음부터는 영어를 같이 하기가 싫어졌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도 한국어로 대화하다 새로운 신조어나 흔히 쓰지 않는 고어, 사자성어 등을 만나면

"그거 무슨 뜻이야?"
"그게 정확히 뭐야?"

라고 서로 묻는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서, '이 사람은 한국어를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어도 똑같다.
심지어 외국어인데 모르는 건 당연하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평생 써도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

나도 마찬가지다.

첫째 봄이가 물어본 영어 단어 중 나는 처음 보는 단어가 수두룩하다.

그럴 때 나는 당당히 말한다.

"baton twirler? 오, 엄마도 이건 잘 모르겠네? 우리 같이 찾아볼까?"

그리고 발음이 헷갈리는 단어가 나오면

"음, 이렇게 읽는 것 같긴 한데, 정확하진 않으니 우리 사전 켜서 발음 같이 들어볼까?"


하고 핸드폰 사전을 켜서 봄이와 함께 발음을 듣고, 같이 따라 해본다.

이때 아이가 받는 메시지는 정말 강력하다.

'엄마도 모를 수 있다.

'모르면 찾아보면 된다. 그리고 틀리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의 머릿속에서 '영어 = 시험'이 아니라
'영어 =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 자리 잡는다.


해외여행을 가면 나는 아이 앞에서 의도적으로 영어를 많이 쓴다.

공항 체크인 카운터, 호텔 리셉션, 식당, 길에서의 스몰토크 등등...

한국에서는 굳이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지만, 여행지에서는 다르다.
실제로 필요해서 쓰는 영어를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그럴 때마다, 봄이는 꼭 내 옆에 찰싹 붙어 내 얼굴, 표정, 억양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지금 엄마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목소리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지' 그걸 전부 눈에 담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거의 항상 이런 말이 나온다.


"엄마, 나도 영어 하고 싶어."
"엄마 영어로 한번 말해봐!"


이건 단순히 따라해보고 싶다는 장난이 아니다.
'나도 엄마처럼 저 세계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감정이고,

그 감정이 평생의 학습을 좌우할 강력한 내적 동기이다.


아이가 스스로 "나 영어 잘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순간, 사실 영어교육은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조금 길게 돌아왔지만, 이번 글의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엄마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좋다는 것.


어린 시기의 아이에게 영어는 능력이기 이전에 정서적 경험이다.


엄마가 영어를 대하는 표정, 모를 때의 태도. 틀렸을 때의 반응, 시도해볼 때의 용기이 모든 것이 아이에게 영어란 어떤 언어인지, 앞으로 평생 영어를 어떻게 바라볼지 결정한다.


아이는 결코 엄마의 발음 때문에 영어를 싫어하지 않는다.

엄마의 문법 실수 때문에 영어를 못하게 되지도 않는다.그리고 엄마가 원어민이 아니라서 영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영어를 무서워하면, 영어를 무서워하고

엄마가 틀리는 걸 창피해하면, 자기도 창피해하고엄마가 영어 앞에서 주저하면, 똑같이 주저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엄마의 영어 실력'이 아니라 '영어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이다.


틀려도 웃고, 모르면 당당히 찾아보고, 발음을 완벽히 못해도 일단 시도해보는 엄마.

그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 이런 메시지를 준다.

'영어는 틀려도 괜찮은 언어야.'

'말이 통하면 그게 충분히 잘하는 거야.'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영어를 해도 괜찮아.'


그리고 바로 그 태도가, 아이의 평생 영어를 만든다.

이전 08화7. (2) 불안을 잠재울 만병통치약, 영어유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