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4) 엄마표 영어,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아니 알겠어요, 알겠는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된다구요?

by 세우담

이번 글에서는 엄마표 영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첫째 봄이에게 내가 영어 환경을 어떻게 제공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경험담을 솔직하게 쓰다 보면, 자칫 내가 활용한 상품들만이 정답처럼 보이거나

그걸 따라 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비싼 돈을 쓰는 엄마들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먼저 이 말을 꼭 적어두고 싶다.

내가 쓴 상품 이름은 예시일 뿐, 절대 정답이 아니다.

새 제품을 사야 할 이유도 없고, 같은 걸 따라 살 필요도 없다.


그리고 시작 전, 반드시 강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국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수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모국어 능력은

단순히 단어 몇 개를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모습이 보일 때를 말한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을 수백 단어 이상 말로 뱉을 수 있고,

“큰 빨간 공”, “아까 봤던 그 강아지”처럼 꾸미는 말을 적절히 붙여 문장을 만들 수 있으며,

“내가 ○○하고 있는데, 그런데 동생이 와서 ○○해서~”처럼

두 개 이상의 생각을 한 문장 안에 이어 말할 수 있는 복문 구조를 쓸 줄 알 때.


즉, 아이 머릿속에 이미 한국어라는 언어의 뼈대(문장 구조)가 어느 정도 잡혀 있어야 한다.

이건 단순히 애국심이나 국어를 더 사랑하자는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대학원에서 언어학, 그중에서도 통사론(syntax)을 전공했다.

통사론은 각 언어의 문장 구조가 제멋대로가 아니라,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 문법(Universal Grammar)을 바탕으로 변주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전 세계 수많은 언어가 서로 겉모습은 달라도

주어가 있고, 동사가 있고, 목적어나 보어 역할을 하는 요소들이 있고,

이를 특정한 순서로 배열하는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언어 구조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수십년간 이어온 학문의 근간이 되는 ‘보편 문법’이라는 전제를 언어습득론에 대입해보자면,

머릿속에 한 언어의 구조가 단단히 자리 잡을수록,

그 위에 다른 언어의 구조를 올려놓기가 훨씬 쉽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나는 “모국어 구조가 어느 정도 잡힌 뒤에 외국어를 쌓는 게 좋다”라고 말할 때,

그냥 엄마 감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학을 전공한 전공자로서 하는 말이다.


1. 봄이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을까? - ‘시기’를 결정하자!


봄이는 말이 매우 빠른 아이였다.

대략 18개월 즈음에는 모국어 문장이 안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단어 나열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복잡한 문장으로 잘 얘기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이렇게 판단했다.

“이제는 다른 언어를 살짝 얹어도 모국어 체계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같이 자라겠구나.”

그래서 영어 노출을 시작하기로 시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남들 다 두 돌 전에 한다더라, ○○네가 벌써 영어 유치원을 보낸다더라

이런 외부 기준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모국어 상태를 보고 시기를 정했다”는 점이다.


모국어 기반이 어느 정도 잡힌 뒤라면, 영어는 경쟁 언어가 아니라 추가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2. 첫 노출 - Mother Goose, 노부영 베이비


처음 영어 노출은 아주 가볍게 시작했다.

유튜브의 Mother Goose 채널과 노부영 베이비 시리즈의 책과 노래 정도였다.


“Hop hop hop like a bunny”처럼 리듬과 동작이 바로 연결되는 노래,

“Goodnight Moon”처럼 익숙한 상황(잠자기 전)을 다루는 단순한 문장들.


이 정도만으로도 아이는 영어의 소리, 리듬, 억양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이 시기 목표는 딱 하나였다.

“영어는 재미있는 소리다. 함께 노래하는 언어다.”

그래서 공부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웠다.

부담 없이, 귀가 열리는 단계였다.


3. i+1을 어떻게 줄 것인가 - 디즈니 월드 오브 잉글리시


어느 정도 노출이 쌓이자,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제 영어를 조금 아는데, 그다음 단계(i+1)를 어떤 식으로, 어떤 난이도로 줘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엄마 혼자서 i+1을 매일 설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영어 전공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체계적으로 짜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그때 나는 가정보육 중인 워킹맘 준비 중인 엄마였다.


하루 종일 육아하면서 아이 수준에 맞는 표현을 직접 고르고 문장 길이를 조절하고,

반복과 변주를 설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는 시스템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때 선택한 것이 디즈니 월드 오브 잉글리시(구 CD/DVD 버전)였다.


이 전집의 단점은 분명하다.

새 제품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것.


그래서 나는 중고로만 구했다.

운 좋게도 그 당시에는 중고 매물이 많았고, 상태 좋은 세트를 꽤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이 책은 1권부터 12권까지 난이도가 정말 절묘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짧은 패턴이 조금씩 길어지고, 익숙한 문장이 새로운 어휘와 섞여 나오는 식으로

정말이지 정교한 i+1 구조를 제공하고 있었다.

(어떠한 설명 없이 아이 스스로 명사의 단/복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니 말 다했지 않는가)


언어학자 크라센이 말하는 “지금 수준(i)보다 살짝 높은 단계(+1)”가

1편부터 12편까지, 시리즈 전체에 촘촘히 녹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내가 직접 i+1 시스템을 만드는 대신, 이미 수십 년 연구 끝에 설계된 시스템을 빌려 쓰자.”


지금은 디즈니 월드 오브 잉글리시가

태블릿 버전으로 바뀌면서 예전처럼 중고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굳이 새 제품을 비싼 돈 주고 사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가능하다면 중고로, 혹은 비슷하게 i+1 구조를 가진 시스템을 찾아라.


중요한 건 브랜드가 아니라 구조다.

비슷한 대체재로는,

잉글리시 에그도 같은 내용을 난이도 다른 두 버전으로 제공해 i+1 관점에서 꽤 괜찮은 편이다.


이외에도 요즘은 많은 연구 끝에 만들어진 다양한 영어 전집들이 있다.

시스템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 패턴이 확장되도록 설계되어 있느냐”이다.


4. 같은 레벨의 다양한 책 - 튼튼영어, ORT, 각종 원서들


i+1 외 중요한 것은 바로 다양성이다.

즉, 같은 i 단계의 다양한 노출을 시켜주는 것.


그래서 고민 끝에 튼튼영어와 ORT(옥스퍼드 리딩 트리) 중고,

단어 수나 난이도를 보고 고른 원서들(웬디북 등)을 추가로 구입했다.


여기서 기준이 된 건 1) 단어 수, 2) 문장 길이, 3) 반복되는 패턴의 유무였다.


대부분 비영어권 학습자를 위한 영어 리더스 책에는

AR 지수, 레벨(레벨 1, 2, 3 등), 혹은 단어 수 정보가 같이 표기된 경우가 많다.


나는 봄이가 이미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있는

디즈니/노부영 수준을 기준으로 지금보다 살짝 쉽거나, 비슷하거나, 아주 조금 긴 문장정도로 책을 골랐다.

다시 말해, 전집 자체를 신봉한 게 아니라 i+1의 관점에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가장 중요한 건

현재의 단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부모 스스로가 “우리 아이에게 이 책이 i+1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일이다.


5. 듣기에서 실제 경험으로 - 영어 문화센터, 그리고 여행


언어 발달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듣기 - 말하기 - 읽기 - 쓰기.


따라서 나는 봄이에게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수용 언어(듣고 이해하는 능력)가 올라왔다고 느낀 순간,

나는 “이제 이 언어가 책 안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쓰이는 언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어로 진행되는 문화센터 수업과 해외 여행이었다.


영어 문화센터에서는 영어로 진행하는 스토리타임, 노래, 간단한 활동들을 통해

책에서 보던 표현이 실제 사람 입에서 나온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건 역시 여행이었다.


우리는 봄이가 36개월을 넘긴 시점부터 가깝게는 홍콩, 멀게는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아이가 직접 본 것은,

엄마가 영어로 주문하는 모습, 길을 묻고 대답하는 모습,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는 외국인들,

그리고 “Thank you”, “Here you are” 같은 표현들이 실제 삶 속에서 쓰이는 장면들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뒤, 봄이의 말은 달라졌다.

“엄마 나 영어 잘하고 싶어.”

“엄마 영어로 말해봐!”

“엄마처럼 말하게 해줘.”


즉, 영어가 시험 과목이 아니라 '엄마가 세상과 대화하는 언어',

그리고 '내가 언젠가 갖고 싶은 능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시기의 영어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motivation)다.

동기가 없는 언어학습은 오래 가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영어는 즐거워야 한다”,

“영어는 세상을 넓혀주는 언어라는 감정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는 말을 계속 강조하고 싶다.


6. 화상영어 - 아웃풋의 시작, 그리고 선생님 선택 기준


여행을 다녀온 후, 봄이는 이처럼 스스로 “영어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우리는 주 1회 화상영어를 시작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아이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빈도로, 진짜 사람과 영어로 말해볼 기회를 주자.”


이때 많은 엄마들이 궁금할 것이다.

“북미권 선생님이어야 하나요? 필리핀 선생님은 안되겠죠?”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단호하다.

국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명료한 발음(intelligibility)과 선생님과 아이의 궁합이다.


주구장창 이야기하는 바이지만, 실제로 전 세계 영어 사용자의 80% 이상이 비원어민이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영어로 대화하게 될 사람들은

미국인, 영국인만이 아니라

싱가폴, 필리핀, 인도, 유럽, 중동, 아프리카 사람들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화상영어를 알아볼 때 부담없이 필리핀 선생님 위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을 선택할 때 내가 본 기준은 단 두 가지였다.


1) 발음이 명료한가? (단어 인지에 문제가 없는가?)

2) 아이에게 친절하고, 반응을 잘 이끌어 내는가?


이 두 가지만 충족하면 아이에게 훌륭한 파트너였다.


7. 정리 - 시기, 모국어, i+1, 동기


여기까지의 봄이 사례를 한 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모국어 구조가 먼저.

충분한 한국어 어휘, 문장, 복문 사용까지 확인한 후 외국어를 올릴 시기를 결정한다.

2) 첫 노출은 가볍게, 즐겁게 Mother Goose, 노부영 노래로 소리나 리듬에 먼저 익숙해지게 한다.

3) i+1 제공은 시스템을 빌릴 수 있다.

많은 연구 끝에 설계된 전집을 활용해 난이도 빌드업을 맡긴다.

4) 같은 레벨의 다양한 책으로 폭 확장을 확장한다. (튼튼영어, ORT, 원서 등)

5) “영어는 살아 있는 언어”라는 경험 제공한다.

6) 아이에게 동기가 생긴 뒤, 아웃풋 기회(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하나다.


언어는 “얼마나 빨리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단단한 모국어 위에, 얼마나 알맞은 i+1을, 얼마나 즐겁게, 얼마나 꾸준히 쌓았느냐”의 문제라는 것.


아이의 성향에 따라 3,4번 이전에 5번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동기부여가 선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부모가 억지로 아이를 끌고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영어교육은 영어가 공부가 될 때,

재미도 동기도 함께 소멸하고, 부모의 노력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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