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정작 나에게는 묻지 않았던 질문

미뤄왔지만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묻고 싶은 것

by 세우담

이 브런치북은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엄마들은 이렇게 흔들릴까?


정보는 넘치고, 선택지는 분명 더 많아졌는데 정작 엄마들의 확신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이집을 고를 때도 그랬고, 유치원을 결정할 때도 그랬고, 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설명회를 다니고, 후기를 읽고, 맘카페를 들여다보며 누군가의 성공담과 누군가의 후회를 동시에 접하다 보면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선택지를 좁히기는커녕, 오히려 갈림길만 더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문제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문제는 기준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건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아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에서
어린이집 이야기를 했고, 유치원 이야기를 했고, 영어교육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사실 이 글들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질문은 하나였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왜 그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왜’에 답하려면 엄마는 결국 아이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온 세대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학원을 다녔고,

“이건 도움이 되니까”라는 말 앞에서 질문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 성적을 올려본 적도 있고, 상으로 주어지는 무언가를 목표 삼아 공부해본 기억도 있다.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해서 갔고, 전공을 선택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안전한 것'을 먼저 고려했다.


그 선택들이 전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너는 뭘 원하니?”라는 질문을 충분히 받아보지 못한 채 자라왔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는 익숙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말하는 데는 서툴렀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흔들린다.


남들이 보내는 어린이집이 괜히 더 좋아 보이고,
남들이 선택한 유치원이 왠지 더 맞는 선택처럼 느껴지고,

남들 아이가 하는 영어가 한 발 앞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건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준 없이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삶의 태도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세우는 일에 더 가깝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유치원에 보내고, 수업이 끝난 뒤 잠깐의 자유 시간이 생겼을 때
그 시간을 전부 수다와 비교와 정보 탐색으로 채우지 않아도 된다고.


물론 엄마들끼리 이야기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공감은 분명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이 또 다른 불안을 키우고, 또 다른 비교를 낳고,

또 다른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을 만든다면 그때는 잠시 멈춰도 괜찮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 한 페이지를 읽어도 좋고, 조용히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해도 좋고,
명상을 하거나 산책을 해도 좋다.

무언가 대단한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다.


기준은 밖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준은 정보를 더 모은다고 생기지 않는다.

기준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천천히 생각해볼 때 생긴다.

그리고 그 기준이 한 번 생기면 세상은 생각보다 조용해진다.

누군가는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누군가는 보내지 않아도,
누군가는 병설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사립을 선택해도
그 선택들이 더 이상 나를 흔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쓰며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기준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기준은 전문가에게서도, 맘카페에서도, 유행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 기준은 엄마 자신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그 기준을 세우는 일은 아이를 위한 일이기 이전에 엄마 자신을 위한 일이다.


아이에게 흔들리지 않는 어른을 보여주고 싶다면 먼저 엄마가 조금 덜 불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선택할 줄 아는 어른을 보여주고 싶다면 먼저 엄마가 자기 삶의 기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 자유를 말해주고 싶다면 먼저 엄마가 자기 삶에서 자유를 연습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고민 중일지도 모른다.

괜찮다.

기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다만 오늘, 아이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나는 어떤 엄마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한 번쯤 떠올려봤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지만 동시에 엄마가 자라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성장은 정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성장은 사유에서 시작된다.


누가 좋다더라, 어디가 요즘 뜬다더라, 무엇을 안 하면 뒤처진다더라..

이런 말들은 끝없이 쏟아지지만 그중 어떤 것도 내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아이의 삶을 결정하는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떤 기준으로 걸러내느냐다.

그리고 그 기준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살아온 시간, 엄마가 중요하다고 느껴온 가치, 엄마가 스스로에게 정직해졌을 때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리즈를 여기까지 읽어온 당신이라면 이미 그 과정을 충분히 해온 사람이다.


당신은 생각 없이 선택한 적이 없고, 대충 결정한 적도 없고, 아이 인생을 가볍게 여긴 적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덜 흔들려도 된다.
모든 선택 앞에서 다른 엄마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을 필요도 없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고민했고, 충분히 책임지고 있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

기준은 어디에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당신 안에 있다.

이전 11화10. (5) 영어교육, 단 한가지의 정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