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쯤, 인터넷에서 이 책의 저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꽤나 큰 충격이었다. 책에는 저자가 경도의 우울증으로 정신과의원에서 상담치료를 받은 대화내용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본인의 우울함을, 그리고 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은 내용을 책으로 담아 세상에 공개했기에 당연히 극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어떤 상태 였을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쓰던 시점의 저자는 20대 중반의 여성으로, 문학 관련 전공을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어린시절부터 아토피 질환을 앓았고, 학창시절 뚱뚱했기에 외모로 놀림받고 차별받은 기억이 있었다. 저자의 언니는 저자와 함께 어울리는걸 좋아하지만, 사실 저자는 모든 부분에서 언니에게 맞춰주고 있어 힘들었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는 항상 연애를 했고, 남자친구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편이라고 한다. 출판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직장 동료들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으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힘들어 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경도 우울보다도, 경계성 인격장애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쓰고, 인간관계에 굉장히 몰두하고, 가까운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며, 어떤 행동을 굉장히 좋게 평가하기도 나쁘게 평가하기도 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특이하면서 기억에 남고 마음이 아픈 것은, 저자가 분명 수차례 상담세션을 겪으며 본인을 더 알게되어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으나, 중후반부 부터는 그 전에 없던 자해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스로 손목을 그었다. 점점 횟수도 많아지고, 빈도도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상담자인 의사는 입원치료를 권했고, 다른 정신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작성해줬지만 더 중증인 환자들이 입원해야 한다며 그 쪽 병원에서 입원을 거절했다. 치료를 받으며 저자는 본인의 욕구와 불만에 더 솔직해졌는데, 자해시도는 사실 '내가 죽을만큼 힘들다는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눈으로 보이는 증거로 남았으면 좋겠어'라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책을 읽다보면 실제로 저자가 점점 본인을 더 잘 깨달아가고,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해소하려 시도한다고 느껴진다. 더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자해시도라던지, 항상 자신을 옆에서 지지해주는 안정적인 성격의 남자친구가 부럽고 본인은 그렇지 못해 슬프다며 자책하는 모습이라던지, 기존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한지 얼마안되서 또 퇴사하려 한다던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과도기라고 보였고 점점 더 나아질 것으로 느껴졌다. 책을 쓴 시점과 생을 마감한 작년 겨울 무렵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말이 그렇게 난 것이 정말 안타깝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심한 우울감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상황이 힘들고, 도저히 나아질 가망이 없고, 지지해줄 가족, 친구, 사회관계도 없고, 물리적으로 우울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환경이라면, 과연 약물치료나 상담치료가 큰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일차적으로 약기운으로 얻는 평온함, 그리고 상담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울감은 지속될거고, 결국 저런 환경을 바꾸는게 우선으로 보인다. 치료를 통해 정신건강을 회복하고 의지를 다잡는데 도움을 줘서, 물리적인 조건을 바꿀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걸까? 그게 가능은 할까? 그런 의문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를 잘 아는건 아니지만 앞서 말한 정도의 어려운 환경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저자는 여러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것이 충족되지 못해 우울감이 있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목표나 바라는 바가 있고, 그에 대응하는 결과 혹은 성취가 있을 때 둘 사이의 갭이 너무 크다면 항상 부족한 마음이 들고, 자존감이 낮아지곤 했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뛰어난 동료들,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 내가 가지지 못한걸 갖고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작아진다. 먼 미래를 본다면 이상과 현실이 있을 때 현실을 높이는 방향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결과값을 두고 본다면 그 말이 맞을거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 그 반대 시도를 해보고 있다. 목표를 낮추고, 이루고자 하는걸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까지 끌어내려보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이상과 현실, 둘 사이의 갭을 줄여보고 있다. 대신 성취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려고 한다. 되도록 남들보다는 예전의 나와 비교하려 시도하고있다. 이게 전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안일함이 생기기도하고, 좀 더 현실에 안주하게되는 느낌은 분명히 있다. 그래도 확실히 스트레스는 덜 받고, 하루하루 해야할 일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목표와 성취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현실에 타협한다는 이야기를 거창하게 말한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만약 저자의 입장이었다면, 옆에 소나무 같은 남자친구도 있고, 내 이름으로 쓴 책도 있고, 직장도 있고, 나이도 젊고, 가족들도 원만한 관계에 있고, 이미 가진게 많은,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