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공간에 바라는 건 유행에 맞춰 영혼을 바꾸려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
재생공간에 바라는 건 유행에 맞춰 영혼을 바꾸려 하지 말기를 바라는 것, 그게 다입니다.
존재의 특별함을 지켜줄 수 있는 공감의 언어는 상대방을 잡아주는 손이 될 겁니다.
공감이 공명되는 순간이죠.
문화비축기지, F1963, 성수연방 등 옛 공장을 개조해 만든 재생공간은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공간 브랜딩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언제나 재생공간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지만 여전히 따뜻한 활기는 아쉽습니다.
오래된 재료, 잘 정비된 공간, 정성스러운 디테일은 각자의 시들을 담고 있지만, 공간을 채우는 건 요즘 가장 핫하다는 브랜드들입니다. 인스타그램에는 같은 공간 같은 모습으로 하루가 바쁘게 공유되죠.
내 경험이 특별해지는 게 없습니다. 두 번의 방문은, 글쎄요.
유행에 맞춰 영혼을 바꾸려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당장의 테넌트와 프로그램을 채우기에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닌,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전체의 아키텍처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생공간은 공간을 넘어 태생적으로 새로운 Movement가 될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생공간이 가지는 건강한 의도는 건강한 상생의 가치로 증폭될 때 사회의 가치를 바꾸고 비즈니스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이는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되는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재생공간에 바라는 건, 논리도 유행도 아닌 굽히지 않는 신념과 강렬한 자신만의 영혼에 따라가 진심으로 교감하는 것 그게 다입니다. 소통과 교감은 기술이 아닌 '공감의 언어'로 당신만의 특별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공감의 언어 1] 건강한 삶의 비전에 대한 공유는 지속적으로 찾아와야 하는 이유와 명분을 만듭니다.
방콕의 더 커먼스(The Commons)는 이름 그대로 The Commons를 지향하고 함께의 성장을 꿈꾸는 공간입니다. 건물 전체가 마치 축제 중인 마을에 초대받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놀라운 건 입구에서 맞이하는 공간의 의도와 존재이유에 대한 소통의 방식입니다.
“Our intention is to build first a community, then a mall.”
“The Commons는 열정적이고 실력 있는 제작자를 위한 커뮤니티 장소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대한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온전한 삶과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기원합니다.
인생의 가장 단순한 즐거움은 마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마중 앞에서는 이미 공간의 시간을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 당위성과 목표는 진심의 깊이에 닿는 가장 빠른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팀과 좋은 의도는 좋은 공간을 만듭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기쁘게 고민도 즐거움도 함께하죠. ‘진실성’이야말로 공간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는 없을 겁니다. 공감은 신뢰로 이어져 있습니다.
[공감의 언어 2] 복제 불가능한 스토리는 공간만의 특별함을 지킬 수 있습니다.
‘Authentic(진정한)’의 단어는 ‘autos(자기 자신)’와 ‘heentes(되다)’에서 왔습니다. ‘진정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의미인 것이죠. 각자의 존재의 중심에 서 있을 때 고객은 그 내면에 있는 위대함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동물원 옆에 위치한 ‘비키니 베를린(Bikini Berlin)’은 1950년대 직물공장을 베를린 감성으로 디자인해 오픈한 컨셉 쇼핑몰입니다. 통일이 되고 도시의 중심축이 동베를린으로 이동하면서 서베를린은 활력 넘치는 교통의 중심지에서 노숙자와 알코올 중독자들이 가득한 곳으로 쇠락해가기 시작합니다. 그 후 Bikini Berlin이 들어서면서 이 곳은 가장 힙한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곳은 젊은 사람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대규모 실험실입니다.”
쇼핑몰 중앙에 배치된 팝업 박스는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임대를 해주며 독립 브랜드들을 지원합니다. 베를린답게 자유로움과 꾸밈없는 창의적인 공간으로 가득합니다.
쇼핑몰에 들어선 ‘25hours hotel’은 지역에서 영감을 얻은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유명하고, 객실마다 망원경을 비치해 쇼핑몰 옆 동물원의 사자와 기린 등을 자세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위트를 남겨둡니다. 로비에는 동물원을 바라보며 편히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해먹을 나른하게 걸어두고, 루프탑에는 원숭이를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Monkey Bar(몽키바)’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Bikini Berlin은 베를린의 자연, 공간의 문화, 지역의 창조성이 충돌하여 ‘도심 속 정글’이라는 복제 불가능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공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기꺼이 찾아가고 싶게끔 하는 호기심을 자극하죠.
[공감의 언어 3] 상생의 비즈니스 구조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게 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의 공존, 지역과 지역의 이질성의 충돌은 궁극적으로 공간을 바꾸고 사회의 가치를 바꾸고 비즈니스를 바꾸는 에너지를 가집니다. Bikini Berlin은 영양이 무엇인지 또는 실내 농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탕 없이 굽는 방법 또는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식사 준비법 등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워크샵을 진행합니다. 즉,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는 것이죠.
생산자와 지역의 동반 성장, 현명한 소비에 대한 고민이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선순환 고리의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삶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목적성을 가지고 매사에 임하는 것,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진정한 공감은 찾아오는 이들 뿐 아니라 테넌트에게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게 합니다. 공감이 공명되는 순간입니다.
[공감의 언어 4] 스스로가 경험의 주체가 되는 것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습니다.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그제서야 세상에 대한 지리감각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온 감각을 일깨우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험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지도를 얻게 되고 자신만의 잊지 못할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The Commons는 자유롭습니다. 보물섬에서 단서를 찾듯 의외성으로 가득합니다. 동선을 표현하는 사이니지는 낙서하듯 기둥에 표시되기도 하고, 계단은 소통의 장소가 되기도 하며, 테이블이 가득한 광장은 밤이 되면 별이 총총히 내려앉는 루프탑 바(bar)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이 곳에는 당신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끔 하는 공기가 천천히 흐릅니다.
즉, 공간은 정해진 루트와 질서가 아닌 소비자 스스로가 경험의 주권을 가지며 탐험할 수 있도록 단서만 남겨줍니다. 한 번 구경하고 마는 것이 아닌 그 여정 자체가 곳곳의 행운들을 찾아나서는 흥미로운 탐험이 되게끔 말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창조해 낸 것이어야 당신만의 경험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공감의 언어 5]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넘는 지속적인 관심은 관계를 성장시키죠.
The Commons는 모바일 앱을 통해 프로그램 일정과 이벤트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Food Delivery 서비스를 도입해 언제 어디서든 수준 높은 테넌트들의 음식들로 시간을 특별하게 완성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관심을 전달하고 열심히 즐기며 살아가는 삶 자체를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들이죠. 이 곳에서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궁금합니다.
[공감의 언어 6]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진화의 방향에 초점을 둔 아키텍처를 바라보는 눈일 겁니다.
높이, 멀리 날려면 날갯짓을 열심히 해야하는 게 아니라 큰 날개를 가져야 합니다. 독수리처럼 말이죠.
재생공간은 스스로 존재이유에 대해 개념을 새롭게 재정의하고, 전체를 조망하며 방향성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테넌트를 유치하고 어떤 앞선 기술을 도입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아키텍처가 있어야 테넌트도 기술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테넌트에 의해 공간의 이미지가 귀결되는 것이 아닌, 공간이 가지는 신념과 지향점이 그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곳이 얼마나 멋진 것을 보여주고 있는가 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가로 논의의 축을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닌, 그 공간만의 생각과 시선에 열광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 것이죠.
공감의 언어는 상대방을 잡아주는 손이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의 위에 더해져 자신만의 공감 언어를 가진 재생공간은 고객과 더 깊은 소통의 관계로 나아가며, 나만의 답을 찾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이야기로 촘촘하게 기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 특유의 활기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안에서 각자의 공간은 서로의 작은 움직임을 응원하며 성장판이 열린 공간으로 건강하게 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재생공간에 기대하는 건 오래된 것에서 나오는 새로움의 이야기로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공간이 만들어냈던 시간, 눈빛, 목소리 뿐 아니라 세세한 감정까지도, 그리고 앞으로 공간이 만들어 갈 삶을 섬세하게 듣는 일입니다.
그렇게 존재의 특별함을 지켜줄 수 있는 공감의 언어는 상대방을 잡아주기 위해 건네는 따뜻한 손이 될 겁니다.
S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