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 AM, 출근하기 전 옷을 고르는 시간이다.
고등학교 교복, 스무 살 때 멋모르고 산 난해한 원피스, 철 지난 세미 정장...
손을 안 탄 지 오래된 옷들이 잔뜩 걸려있다.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매일 입는 셔츠를 꺼낸다. 벌써 단추가 하나 떨어졌다.
비어있는 단추 구멍과 함께 피곤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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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주는 스트레스가 참 많다.
단추 하나가 떨어져서, 옷이 너무 꽉 끼어서, 보풀이 쉽게 일어나서...
옷 하나에 걱정은 여러 개다.
이처럼 사소한 것에서 오는 피로를 줄이고, 내가 할 일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이지 나는 멀쩡한 물건을 왜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집 한 구석에 자리를 내줘야 물건에 대한 예의 아닌가.
내 의견은 그냥 삼켜버렸다. 나는 자취방이 아닌 본가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 엄마는 미니멀리즘을 좋아하고,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다.
(내 옷장에서)안 입는 옷을 찾아 과감하게 버리고, (내 방에서)안 쓰는 물건을 찾아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한다.
멀쩡한 물건은 버리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물건을 새로 사는 그녀의 모습은 가끔 모순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엄마의 미니멀리즘 철학에 스며들고 말았다.
나 스스로가 물건이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내 방에 있는 큰 가로형 책상에는 모니터 하나, 키보드 하나, 마우스 하나, 스피커 두 개만 놓으면 적당하다.
하지만 이건 굉장히 드문 광경이다.
시험기간에는 필요할 때마다 얼른 집어 읽기 위해 방대한 양의 프린트를 늘어뜨려놓는다.
또 항상 입에 뭘 집어넣어야 행복하므로 비상 간식도 필수다.
그러다 보면 그 큰 책상이 물건으로 가득 차는 건 시간문제다.
청소를 해도 이내 다시 더러워짐을 느끼고, 이것이 물건 때문에 일어난 악순환임을 깨달았다.
급한 불은 내 옷장에 떨어졌다.
나는 땀을 많이 흘리고 열이 많은 체질이다. 그래서 여름옷은 기본적으로 여러 벌을 사서 돌려 입은 후 싹 다 버리고 또 구비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옷의 퀄리티는 뒷전이고, 최대한 많은 옷을 구매하는 것이 여름 쇼핑의 목적이다.
그러면 옷장은 어느새 퀄리티가 낮은 수많은 티셔츠로 가득 찬다.
옷을 깨끗하게라도 입으면 모를까, 목이 답답한 걸 못 참아서 목티도, 목도리도 못 매는 나는 티셔츠의 목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만진다.
그러다 보면 티셔츠는 어느새 목이 늘어나고, 손을 많이 타서 너덜너덜해진다.
무언가를 느낀 나는 좀 더 질적인 옷을 몇 벌만 사보았다.
소재가 좋은 브랜드 티셔츠를 무채색 계열로 몇 벌 구매하니, 이전보다 훨씬 오래 입을 수 있었다.
옷도 오래 입고, 돈도 오히려 아끼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본격적으로 미니멀리즘 패션에 대해 알아보겠다.
먼저 미니멀리즘의 개념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면서, 소비문화로부터 자유를 얻는 흐름을 말한다. 낭비를 하나하나 줄여나가면서, 소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우리가 물질의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비우는 것이 모으는 것보다 행복하다. 옷장이 쌓여가는 것을 보면 당장은 기분이 좋겠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공허해진다.
미니멀리즘 패션의 사전적 정의는 ‘최소한의 단순한 요소들을 조합하여 큰 효과를 내는 옷차림’이다. 옷 자체보다 그것을 입고 있는 인간에게 주목하는 패션 스타일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여 인간 본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기능적인 요소도 갖추고 있다.
간단하게 ‘심플’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도 있다. 장식을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색감을 지니고, 코디를 단순히 하는 극강의 간결함을 보여준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은 찾아볼 수 없는 금욕주의적 패션 양식이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미니멀리즘 패션의 시초는 다름 아닌 2차 세계대전이다. 당시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원단 사용을 줄이고자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또한 주머니나 단추 등 디테일한 요소들을 과감히 없애 부족한 물자를 아꼈다.
뿐만 아니다. 금욕주의를 통해 전쟁이 가져온 정신적인 결핍 또한 채워주었다. 이후 실존주의, 초현실주의 등 인간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사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위 콜라주 사진은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앞서 보여준 사진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섣불리 시도하기 힘든 반면, 이 패션은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좌측의 미니멀리즘 패션은 남색과 회색 계열을 사용하여 색감을 단순하게 배치했다. 또한 남녀를 구분 지을 수 없는 중성적인 느낌도 준다. 장식도 최소화했고, 그렇다고 전반적인 스타일이 무거워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 우측의 맥시멀리즘 패션은 비록 레드, 블랙, 화이트 세 가지 색상만 주요하게 사용했음에도, 다양한 패턴과 어우러지면서 화려한 느낌을 준다. 사람보다 옷에 더 눈길이 간다.
물론 패션에 정답은 없기에 맥시멀리즘 패션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밈 없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미니멀리즘 패션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이제 미니멀리즘 패션에 입문하도록 도와줄 사람이 한 명 있다.
독일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인 ‘질 샌더(JIL SANDER)’다.
“나는 단순함 속에 호사스러움이 있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 잔의 물은 또 다른 한 잔과 서로 같지 않을 수 있다.
한 잔은 단지 갈증만을 채워줄 뿐이고, 다른 한 잔의 물은 진정 당신이 즐길 수 있다.”
- 질 샌더
질 샌더는 단순함과 간결함을 특징으로 하여 자신만의 브랜드 ‘질 샌더’를 론칭했다. 당시 대중은 과장된 디자인의 불편한 슈트에 대해 질려가던 찰나라, 질 샌더의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질 샌더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그녀는 옷을 입는 ‘주체’인 인간의 몸을 우선시하여, 인체를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또한 원단과 소재에 있어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자 했다.
솔기나 포켓이 눈에 띄지 않도록 철저히 계산된 디자인이다. 당시 페티시적인 옷으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하고자 특정 성별에 제한되지 않는 양성적인 디자인을 고안해냈다.
질 샌더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성별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보기만 해도 편해 보이는 미니멀리즘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면, 이제 실천할 차례다.
지금 당장 옷장을 열고 일주일에 한 번도 안 입는 옷을 다 꺼내보자. 옷의 순환 주기를 7일로 잡고, 옷장의 모든 옷이 7일간 다 사용될 수 있도록 적은 양의 옷을 알차게 써야 한다. 당장은 돈이 아깝겠지만, 며칠만 지나도 인생이 바뀐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교복 같은 추억의 아이템은 쉽게 버리기 힘들 것이다. 그럴 때에는 사진으로 남기면 된다. 굳이 물건 그 자체를 소유할 필요는 없다. 이제 고등 시절을 거치고 성장한 현재의 모습을 직면하고, 과거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이제 안 입는 옷을 모두 추려냈다면, 이번에는 복잡하고 과장된 패턴의 옷들을 한 번 골라내 보자. 눈에 피로감을 주는 색상을 골라내고, 장식이 많고 불편한 디자인을 과감하게 꺼낸다. 보는 사람이나, 입는 사람이나 편안한 옷만 보관하면 된다.
이후, 옷장에 남은 옷을 깨끗하게 보관하며 입는다. 이처럼 미니멀리즘 패션을 통해 옷으로부터 구속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이번 주말은 새어나가는 돈을 막고, 정신적으로도 편안해질 수 있는 미니멀리즘 패션에 입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