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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루트다 Mar 19. 2016

The Gap

합격과 입학사이

(이 글은 2015년에 작성된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무조건 놀으세요. 여행도 다니고, 부모님이랑 시간 많이보내고, 막상 해외나오면 쉴 때는 완전 쉬거나 한국들어가느라 바빠요. “   

작년 2015년 4월말에 열린 ACM SIGCHI conference의 한국인유학생모임에서 들은 말을 합치면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4월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측으로부터 admission offer를 받고 학교측에도 admissino offer의 수락여부를 메일로 보냈을 것이다( 나는 2월에 Offer letter를 받고 2달 간의 고민 뒤 4월15일 최종일에 Offer를 수락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많은 미국CS의 Offer 유효기간은 4월15일이다.) 이메일 혹은 편지를 보내어 offer를 수락하면 드디어, 드디어! 기나긴 공부인생 중 달콤하면서도 불안한 휴식기간이 주어진다. 그 당시 나는 8월 초에 출국을 하기로 마음 먹었기에, Offer를 수락하고 난뒤 3달 남짓의 휴식기간이 주어졌었다. 

무엇을 해야할까?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4월말 학회가 끝나고 얼마 안있어 스페인-포르투갈로 2주간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 여행을 결심하기까지는 정말 오랜시간이 걸렸다.  맨 위에 적은 말처럼 바로 떠났으면 되지 않았을까? 맨 위에 적은 말들은 실은 그 당시 처음 듣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admission offer가 왔던 2월 초에도 들었던 말이고, 인터뷰를 보고있던 2월말에도, 학교 선택고민을 하던 3월에도, 그리고 학교에 offer를 보낸 4월초에도 들었던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쉬이 떠나지 못했던 것일까? 작년에 이 글의 초안을 작성할 당시 나는 이렇게 적었었다. 

사람들이 저런 말을 해주는 데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그들 중 몇몇은 유학생활에 있어 이미 나보다 먼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이 무엇을 아쉬워했는지 (후회라는 말보다는 아쉽다는 말이 더 적당한 듯 싶다.)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를 토대로 내게 말해준 것이라. 나머지 사람들도 비슷한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혹은 자신의 친구중 유학나간 친구가 한 푸념을 토대로 말해준 것이라. 100% 주관적이 아닌 어느정도의 객관성이 섞여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쉬이 떠나지 못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실은 내가, 그리고 이 길을 걸었던 많은 유학생들이 쉬이 길을 떠나지 못했던 것은 (물론 몇몇 사람들은 졸업논문을 완성하느라 그랬겠지만,)  자신을 연구자로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일주일의 달콤한 휴가, 휴식. 좋다. 하지만, 연구에서 마냥 동 떨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하지만 이는 필요하다고 본다. 쉬는 것도 능력이다.) 지금이라도 샤워하다 당장 아이디어가 나올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은 석사과정이 아닌 박사과정이다. 앞으로의 5년을(hopefully) 투자하기로 한 결정이다. 그냥 이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물론 충동적인 일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기에 언제든지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다년간 갈고 닦은 이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 이미 박사과정을 시작한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엄청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 때의 나는 학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는 설레임에, 마치 중2병에 걸린마냥  같은 글을 써놓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대답해줄 것인가?  아주 강력하게, 쉬세요! 여행이라도!  라고 말할 것이 당연지사. 박사과정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1년차에는 수업을 들어야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과제와 시험도 있을 것이며, 연구는 연구나름대로 시작을 해야할 것이다. 쉴 시간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의외로 큰맘먹고 길게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운좋게 학회가 시골동네가 아닌 파리, 샌프란시스코 ( 나의 경우는 운좋게 둘다 걸렸다), 이런 곳이라 학회겸 여행겸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의외로 시간내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저 때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은 또 아니다. 졸업 전의 페이스를 유지하진 못했지만, 학회도 참석을 했고, 관련분야 논문도 꾸준히 읽었다. 아이디어가 될만한 것들을 시험삼아 구현하거나 정리를 했다. 그 모든 것들은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연구의 밑바탕이 되었다 ( 하지만, 정말 아이디어 정리만해서 현재 엄청 큰 난관에 부딪혔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프로토타입 근처까지라도 가봐야한다.) 


2주 간의 스페인,포르투갈 여행도 즐거웠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구를 상상하며, 설렘을 갖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봤던 기억도 나름 즐거웠다. 그것이 아직까지 내 동력이기도 하고.. 

The Gap에 무엇을 할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달려있는 것이지만, 단 하나 한번정도의 긴 휴가는 꼭 갔다오는 편이.. 후회가 크게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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