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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an 11. 2017

떳떳

작가 · 연출가 · 배우 오세혁


정   워낙에 바쁜 작업자로 유명하다. 바쁘다보니 많은 곳에서 찾게 될 것이고 그러면서 더 바빠질 텐데, 많은 작업을 소화하기에 절대적인 시간이나 에너지가 부족하지는 않은가?


세혁   2005년 걸판 창단이후 마당놀이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바쁘기 시작했다. 내년부터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한다. 취미랑 일이 분리가 안 되는 느낌이 든다. 연극이 너무 좋아서 시작해서 많이 보러 다니다보니 연극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들어오는 일이 그 자체로 좋아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걸판이 월급제를 추구 했다. 극단 운영과 배우들의 월급을 챙겨야 하다 보니 그만큼 많은 일정들을 소화해야 했다. 의뢰가 들어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소화해야 했다. 10년간 극단을 운영하며 배우들의 월급을 지급했다는 것이 극단의 자랑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요즘 들어 생기는 고민은 그것이 과연 자부심일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배우와 스텝이 수입을 공정히 나누는 것, 그리고 일정한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당연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것에 얽매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것들을 위해 쉴 틈 없이 바쁘게 공연을 하게 되고, 충실히 열심히 공연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우리는 좋은 작업을 하러 모인 집단인데 일정한 수입을 위해 움직이고 있진 않은가 하는 고민이 밀려온다. 지금은 월급제에서 개런티제로 바꾸었고 매일 출근의 원칙도 작업이 있는 배우만 나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바쁜 게 싫다. 바쁜 게 어쩌면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걸판을 위해서 바쁘다고 이야기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추구했던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다.


정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창작자로서 바빠지는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보통의 연극은 최소한 2개월을 연습하고 공연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3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일정일 텐데, 몇몇 연출가 분들 혹은 작업자 분들을 보면 그 기간 동안 신작 공연이 2~3개가 동시에 올라간다거나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업적 완성도를 차치하더라도 창작자로서의 소모랄까, 그것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세혁   작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빠져서 했었는데 올해부터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한 명의 작업자로서 정신없이 기쁘게 몰아칠 때도 있고 오랜 시간에 거쳐 하나하나 신중하게 꺼내 놓을 때도 있는 것인데, 올 해 들어서 내가 과연 바쁠 시기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걸판의 대표로서 바쁘게 작업하며 극단을 유지하는 역할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내 개인으로는 이제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기쁜 마음으로 몰아치며 작업하는 시간은 지나 간 것 같고, 그래서 내년의 일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해가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공연이외의 작업들(인터뷰, 팟캐스트, 칼럼 등)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해가면서 결국에는 공연 만드는 일에만 시간을 쏟고 싶은 욕구만 더 강하게 남았다.



정   지난해부터 올해까지의 수많은 작업들로 지쳤다는 것으로 보아도 되나?


세혁   지쳤다기보다는 후련한 마음이 든다. (웃음) 이제는 해볼 것은 다 해봤다 하는 마음인 것 같다. 극단의 운영방식을 조정한 것도 극단의 운영을 위해서 많은 양의 작업을 소화하는데서 벗어나 창작자체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나도 조금 천천히 가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한다.


정   바쁘다는 것은 찾아주는 곳이 있고 우리가 갈만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많은 곳을 다니기 위해서는 작품도 일정한 요구에 맞춰지는 공연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적인 창의성 보다는 다른 가치들에 쏠리진 않는지 궁금하다.


세혁   걸판은 마당극으로 시작했고 주로 극장 밖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짧은 공연들을 하게 되었다. 주로 집회나 농성장등을 다녔는데 문화제를 진행하시는 분들에 의해 시간은 10분 15분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담아야 하는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그 현장에 나와 있는 분들이 즐겁게 볼 수 있게끔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공연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 공연들을 주로 하다가 극장에 들어와 보니 훨씬 다양한 취향과 생각을 가진 관객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다양함을 만족시켜 주기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상업프로덕션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공연을 보러 오시는 관객 분들 중 공연 마니아층이 많은데 오히려 그런 작업에서 내가 가진 사회적 메시지나 작가로서의 색깔이 더 드러나는 공연에 열광해 주신다는 것이다. 어떤 강렬한 목적과 욕구로 모여 있는 집회나 농성장에서는 오히려 즐겁고 가벼운 공연이, 소극장에서는 재미도 있으면서 걸판 만의 색깔이 잘 조율된 공연이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상업프로덕션에서는 오히려 내 색깔이 더 드러난 공연들이 호응 받는 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다.


정   개인적으로 이미 관객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데 기획단계에서 그들의 욕구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중성과 실제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의 수준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세혁   실제로 내가 연출한 뮤지컬을 보고 소극장을 찾는 분들이 많았다. 그들은 다양한 공연들에 노출 될 준비가 되어있는데, 오히려 작업자들이 관객층들을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공연을 통해 솔직히 할 말을 하면 그것에 대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열광할 것은 열광 할 것이라 생각한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현장에서 작업을 하면서 그 당사자 분들을 직접만나고 그들을 만나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많은 실망을 느끼는 부분은 주로 그 문화제를 주최하는 분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공연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도구로서 사용되어 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내부에서도 정체성의 부분에 있어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우리가 현장에서 보았던 것들, 지금 주변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극장에서 던진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면서 극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   갑자기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떠오른다. <팝업씨어터> 때문에 몇몇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준비를 하던 때인데 그때도 바쁘셔서 계속 얼굴을 못보고 있다가 대학로 어딘가에서 팀원들과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솔직히 너무 얄미웠다. (정색) 사실 오늘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도 여전히 그런 이미지였다. 작가님과 SNS 친구이다 보니 작가님 타임라인들에 올라온 소식들을 보게 되는데 요즘 워낙에 어지러운 세상이다 보니 곳곳에 억울한 일들 불편한 사실들로 빼곡한 페이스북 공간에 작가님 타임라인의 공연소식들과 함께 작가님의 행복한 모습들을 보다보니 솔직히 더욱 그런 얄미운 이미지가 더 견고해 졌던 것 같다.(웃음) 하지만 오늘 만나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지금 보다 훨씬 전부터 현장을 찾아다니고 가까운 곳에서 함께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현안들이나 연극계내부에서 논의 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적극 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은 없는지 알고 싶다.


세혁   불편함이 확실히 있다. 조금 다른 불편함일 수 있는데 예전에 작가의 권리를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작가의 권리가 침해 받는 부당한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 많은 작업자들로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연락을 받게 되었다. 연극계 내부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에 대해 도움을 청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해결해 보고자 동분서주 노력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해결된 게 거의 없었다. 좁은 연극계 안에서 관계들에 있어 자유롭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관례들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극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 같은 것이 들었다. 그 회의감은 연극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 검열, 블랙리스트 사건들이 터져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명백히 부당한 것에 대해 당당하고 용감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나에게 다른 것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우리 연극계 내부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들과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겹쳐보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14년 이전의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서슴없이 발언했다. 떳떳했던 것 같다. 하지만 2014년 4월16일 이후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당시 안산 단원고 연극반에서 내가 쓴 대본으로 걸판 극단원 중 배우 한명이 학생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극단원이 시간 될 때 한 번 와서 아이들이 하는 것을 봐 달라고 했었는데 바쁘기도 했고 조금 귀찮기도 해서 나중에 가겠노라 얘기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4월 16일 아침 내 작업연습을 하고 있을 때 그 극단원이 와서 ‘애들 오늘 수학여행 간다는데 갔다 오면 꼭 봐 주세요.’라고 했고 ‘알았어... 알았어...’ 지나가는 말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건 이후 연극반 학생 중 한 명 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한 동안 아무 발언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그 어른들과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나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그 일을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얼마 전 연극계 내부에서 일어나 문제들에 대한 도움요청이 나에게 들어왔고 나는 역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뿐 아니라 내 자신이 바쁜 작업들속에서 의도치 않게 놓지는 부분들이 생겼고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겐 부당함 혹은 상처로 다가 갔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해 앞장서서 나선 다는 것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고민하다 안산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안산 어린이극단, 청소년극단을 만들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이 2014년 이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내 작은 실천인 것 같다. 그리고 연극계 내부의 일들에 대해서도 무대 위에서 공연으로 풀어내 보고 싶다.


정   오세혁에게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세혁   방황하고 있는 시기 인 것 같다. 이제 10년을 이렇게 살아 왔으니 앞으로의 10년도 잘 살아가야 할 텐데. 변하지는 않아야 하는 데. 변하지 않기 위해 유지하며 사는 삶이 참…


정   가장 바쁘고 주목받는 작가인 오세혁이 방황하는 시기다, 라는 것이 작가님을 속속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모습일 수도 있겠다.


세혁   내가 타임라인에 계속해서 공연소식을 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걸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는 목적이고 또 하나는 내 스스로 지치지 않기 위함인 것 같다. 나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세상이 이리 어지럽다 보니 다 놓고 싶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차피 공연은 진행 되어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받았을 때 지치지 않을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나도 공연을 좋아해서 시작한 사람이라 그런지 칭찬과 격려는 늘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누군가 나에게 무엇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에 괜한 거부감이 있다.(웃음) 


어떤 문제에 있어서 다 각자의 생각과 대응 방식이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방식으로만 가는 것 보다 각자의 다른 방식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정   각자만의 대응 방식이 당연히 존재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계의 구체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 이지만 그런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그 자체가 부담이고 불편함이 된다. 스스로 그것에 상응하는 다른 대응 방식으로의 작업적 노력이나 접근들이 충분한가 하는 부분에서 떳떳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세혁   맞는 말이다. 어쨌든 결론이 내가 정리 되지 못한 채 복잡하다는 것으로 자꾸 모아진다. 내가 안산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하려는 일에 집중하고 지금 연극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활동들에 대해 지지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고 실제로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자꾸 고민에만 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정   나 역시도 제대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면서 발만 담구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양새가 너무 싫고 불편한 상태인 것 같다. 그래도 작가님이 하려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혁   자꾸 생각만 많아지는 것 같다. ‘내가 과연 떳떳한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정   누구나 연극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관계들이 넓어지고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질수록 그것과 함께 어떤 책임감들이 함께 커져가는 것 아닐까 싶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세혁에게 연극이란?


세혁   눈 감기 전까지 계속되는 것.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오세혁(작가, 연출가, 배우)
극단 걸판 작가 및 연출

주요작품
<나무 위의 고래>(연출) <우리의 여자들>(각색)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연출) <라흐마니노프>(연출) <보도지침>(작) <레드채플린>(작) 외 다수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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