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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an 16. 2017

공예작가와 시장상인의 두근두근한 동거

2016 신당창작아케이드 오픈 스튜디오 <황학동별곡>

2016 신당창작아케이드 ‘황학동별곡’이 열린 신당 지하쇼핑센터 전경
입주 작가가 만든 재활용 크리스마스 소품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인(삭제) 지난 12월 22일(목) 오후 신당 지하쇼핑센터(서울 중구 마장로 서울중앙시장 내)에서 특별한 파티가 벌어졌다. 어둑한 지하상가 통로가 상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 트리와 플라스틱 소쿠리 리스로 산뜻해졌다. 반짝이는 금사원단으로 감싼 기둥 장식은 한복원단을 재활용하여 한복집 사장님과 공예작가가 솜씨를 발휘한 합작품이다.      


2009년 서울중앙시장 지하상가 횟집과 포목점 사이 공예작가가 찾아든 후 이곳은 생활과 예술이 동거하는 이색 장소가 되었다. ‘황학동별곡’은 서울문화재단 신당창작아케이드의 입주 작가가 서울중앙시장 상인과 함께하는 연중행사이다. 올해는  야외 지상시장 대신 공방이 자리한 신당 지하쇼핑센터에서 기획 전시와 오픈 스튜디오로 열렸다.


쥬얼리 전시와 반지 걸이 만들기 체험 이벤트(이호수 작가)


이번 행사는 공예 창작 공간을 상징하는 기획전시 ‘중앙공예 두근두근 신당展’과 프로젝트 전시, 오픈 스튜디오, 아트마켓, 공예 체험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2016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예작가와 시장 이웃들의 따뜻한 나눔의 자리, ‘황학동별곡’ 현장을 소개한다.     


‘황학동별곡’ 기획전시를 소개하는 허정민(좌상), 오화진(좌하), 김병덕(우하) 입주 작가
중앙공예 두근두근 신당전을 감상하는 관람객
(전) ‘중앙공예’ 표영국 대표의 인터뷰 영상(제작: 손현정 작가(삭제))




공예 창작 터전으로 재탄생한 지하상가 상가게   


이번 ‘황학동별곡’ 기획전을 개최한 장소는 예전 지하상가에서 상을 팔던 가게였다. 과거 상점 주인이 지은 '중앙공예'라는 이름이 마치 미래를 예측한 듯 의미심장하다. 상가게 표영국 대표와 유금남(부인)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지하상가가 문을 연 1971년부터 40년 넘게 공간을 지켜온 산 증인이다. 신당창작아케이드 황현정 담당자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만났던 어르신을 기억했다. 그가 파킨슨병으로 2015년 폐업하기 전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신문을 보고 상을 펼치며 시장의 하루를 열었다고 추억했다.      


2016 ‘황학동별곡’ 기획전시 - 김쥬쥬 작가(좌), 한영권 작가(우)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순) 안나연(좌상), 강민지(우상), 이아름/이호수/허정민(우하), 오화진/이재훈/유보영(좌하)


전시장 벽면 둥그런 핑크색 조명이 은근하게 작품을 비추는 것이 아름다웠다. 이번 전시는 입주 작가 40 여명(팀)이 힘을 합쳐 낡은 벽체와 바닥을 보수하고 작품을 배치했다. 전시된 작품 디스플레이도 하나하나 독특하다. 특히 주방 도구를 이용해 전시한 이아름, 이호수, 허정민 작가의 금속 공예 작품이 더욱 돋보였다. 작품과 함께 진열된 냄비와 상, 채반 등은 모두 황학동 시장에서 산 물건이다.      


주얼리, 도자, 인형, 스피커, 텍스타일, 금속 디자인, 가죽 가방, 한지 작품, 조명 스탠드 등 입주 작가의 작품에는 ‘공예의 현재’가 집약되어 있다. 오프닝 행사에서 해설을 맡은 오화진 작가는 관람객에게 숨어있는 화병이나 브로치 등 작가의 노력이 숨 쉬는 작업을 꼼꼼하게 봐주기를 부탁했다. ‘중앙공예 두근두근 신당展’은 생활용품과 예술 작품이 조화로운 전시 기획으로 공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공예 트렌드 페어 입주 작가전 - 오화진(좌), 박수지(우)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 순) 허정민, 최챈주, 윤성호, 이재훈과 함연주 작가




‘황학동별곡’에서 다시 보는 공예 트렌드 페어     


이번 오픈 스튜디오에서 김태연, 박수지, 오화진, 윤성호, 이재훈, 최챈주, 함연주, 허정민 등 올해 공예 트렌드 페어에 선보였던 작가 8명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시선을 끄는 빨간색 조형오브제는 오화진 작가의 작품이다. 지난 서울-북경 예술가 교류 공동 전시회에서 보았던 ‘도플갱어’와 연결된 작업인 듯 소재와 표현 방식이 닮아있다. 작가는 드로잉, 페인팅, 평면 작업에서 입체조형작업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오브제에 스토리를 접목해 개인의 문화로 구축해낸다.      


전시장 천장에서 바닥으로 길게 드리운 작품은 박수지 작가의 도자 작업이다. 작가는 도자 꽃잎 한 장 한 장마다 지문을 새겨 넣어 자연이 지닌 생명력을 작업에 불어넣었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비정형의 금속 공예품은 허정민 작가가 콩을 오브제로 빚은 작품이다. 작가는 태아와 닮은 콩의 형태를 변형해 생명이 끝없이 순환하며 반복되는 모습을 표현했다.     


최챈주 작가의 도자 위 드로잉 작업 ‘두 개의 기록’을 올해 세 번째 마주했다. 작가는 꽃잎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안 각기 다른 지점에서 보이는 세상을 도자 접시에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세상의 다른 부분에 대해 환기해준다.       


이재훈 작가는 공예란 일상에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고 사용할수록 편안함과 애착을 가질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황동, 철을 재료로 한 조명 스탠드(Swivel lamp, 2016)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선과 면, 입체의 조합이 모던하면서도 실용적이다. 그의 작품은 생활과 아주 가까이 자리한 예술이란 점에서 한층 매력 있다.         


작가 함연주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유공간과 현실 세계를 잇는 고리이다. 작가의 작업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파사드처럼 평평한 입체 이면에 자아로 통하는 공간이 있을 듯하다.     

  

윤성호 작가는 계단과 맨홀 뚜껑, 전봇대, 철길을 모티브로 그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미’를 표현한다. 흔히 발견되는 다양한 인공구조물을 기하학적으로 재배치한 작품은 감상자가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미’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이렇듯 예술은 새로운 시선의 발명이다. 


김태연 작가의 폐비닐로 만든 플라스틱 백과 크리스마스 공예품


마지막 공예 트렌드 페어 출품작은 작가의 공방에서 볼 수 있었다. 김태연 작가의 작업은 쓸모 있지만 쉽게 버려지는 물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애초 공예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이번 공예 트렌드 페어 현장에서 김태연 작가는 비닐에서 뽑은 실로 직물을 짜는 과정을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플라스틱 백, 태피스트리 등 그녀의 손을 거친 공예품은 비닐의 자취를 눈치채기 어렵다. 연말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스튜디오 입구의 비닐로 만든 우아한 크리스마스 리스가 유독 탐났다.      


황학동별곡 프로젝트 전시, ‘영진상회 X 제비우체국’ MAGNETIC5(팀)




서울중앙시장 상인을 응원하는 따뜻한 프로젝트     


“여기는 내 놀이터야. 맨날 오고 싶잖아. 내 삶의 터전이지.”  


‘영진상회’는 MAGNETIC5가 안형순 할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서울중앙시장의 변화를 담은 사진과 그림책 전시이다. 영진상회는 할머니가 운영하는 채소 좌판이다. 2016년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김병덕 작가는 5월 노점상 정비사업 때문에 울화로 쓰러진 할머니를 병문안하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올해 7월 말부터 시장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사진 중에는 김치 파는 아주머니가 속상해서 술을 들이켜는 장면도 있다.  

    

사진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구성된 이들은 ‘영진상회’에 앞서 2015년에는 ‘제비우체국’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작가 팀은 오래된 사이임에도 갈등이 잦은 상인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제비 우체부가 되어 이들이 쓴 연하장을 배달했다. 올해는 연하장 대신 병원에 입원한 안형순 할머니에게 엽서를 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오프닝 행사에서 김병덕 작가는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하면서 참석자에게 응원 메시지를 부탁했다. 작가와 시장상인, 나아가 감상자 모두 참여하는 전시로 신당의 창작공간이 훈훈하게 데워졌다. 


한영권 작가 작품과 작업실 모습
‘황학동별곡’ 행사로 진행된 입주 작가 아트마켓
옻칠 공방에서 ‘코스터 만들기’를 체험하는 방문객들




신당창작아케이드 오픈 스튜디오 – 공예 체험과 아트마켓     


신당창작아케이드 오픈 파티는 기획전시 외에도 신당 입주 작가의 40여 개 공방이 문을 활짝 열고 방문객을 맞았다. 작가들은 건축, 설계 인테리어, 리모델링 1일 무료상담, 반지 걸이 만들기, 옻칠 공예 코스터 만들기, 커피 시연 등 흥미로운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오픈 파티 크리스마스 균일가전 행사
산타 GO! 스탬프 투어 이벤트
2016 신당창작아케이드 오픈 파티가 열린 신당 지하쇼핑센터 전경


이날 구경꾼들의 견물생심은 황학동별곡 스탬프 투어 내내 이어졌다. 매듭 브로치와 주얼리, 수제 가죽 가방과 지갑 등 발길을 옮길 때마다 손맛 좋은 작품들이 마음을 유혹했고, 신당 지하상가는 파티 분위기에 젖은 채 저녁 늦도록 수런거렸다. 회센터에서 마련한 뜨끈한 어묵탕을 맛보지 못하고 와서 못내 아쉬웠다. 마지막 추첨 이벤트 경품은 누가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공예작가와 시장 상인의 두근두근한 동거는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생활과 예술이 만나 더욱 활기찰 신당창작아케이드 공간의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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