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홍석천

완벽의 기준에서 벗어나라, 그럼 세상이 즐거워진다!

by 서울문화재단

배우 홍석천
2017년 첫 번째 ‘스팍킹’의 주인공 ‘홍석천’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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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를 만난다는 것.
그만큼 설레고 어려운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런
‘낯설음’ 조차도 즐기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자리는
무엇보다도 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7년 서울문화재단
첫 번째 스팍킹의 주인공,
홍석천 씨를 만났을 때
받았던 느낌은 이 ‘낯설음’
속에서도 느껴지는 즐거운
에너지와 밝은 기운이었다.

지난 5월 10일(수)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는
스팍킹 시작에 앞서서
오늘의 주인공 ‘홍석천’씨를
조금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짤막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짧은 시간 속에서
‘홍석천’이라는 사람의
에너지 넘치는 일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중심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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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킹 Intro


Q. 이번 ‘스팍킹’ 때 어떤 점들을 직원 분들에게 말씀해주실 예정이신가요?

A.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요. 그렇게 했을 때,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는 합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시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생각의 틀에서 조금 벗어나서 다른 각도로 바라보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Q. 연예인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오시다가 요식업에 뛰어드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먹고 살려고 사실은... (웃음) 그런데 먹고 살려고 하는 것 중에서 제가 좋아하고 잘하고, 제일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것이 음식이고, 제가 잘하는 것이 음식이고 또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여기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게 외식업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도전했는데, 지금까지 실패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이런 실패들을 이겨내는 것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잘 버텨낸 것 같아요. 지금도 잘 버티고 있고.


Q. 요식업을 하시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최근 트렌드를 읽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최신 트렌드를 읽어내는 홍석천 씨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저는 뉴스를 많이 봐요. 뉴스만큼 빠른 정보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뉴스에는 모든 트렌드가 다 들어있거든요. 우리가 뉴스라고 하는 것이 정해진 시간에 방영하는 뉴스도 있지만, 최근에는 SNS에 떠돌아다니는 작은 영상들도 뉴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것들을 쭉 보다보면 최신 트렌드가 뭔지 쉽게 캐치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그냥 넘길 수도 있어요. 이런 작은 것들을 발굴해내는 감각, 그런 것들은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이 아니니까 뉴스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것들을 보면서 연습을 하는 편입니다. 같은 정보를 보더라도, 살아온 느낌이나 타고난 센스에 따라서 캐치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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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얼마 전에 저서 <찬란하게 47년>을 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서를 내신 것도 방금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A. 제가 이 책을 내기에 앞서서 2권을 낸 적이 있어요. 첫 번째는 커밍아웃 하자마자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는 레스토랑을 10년 동안 운영했을 때, 10년이 되었을 때에는 뭔가를 남겨야 되겠다 싶어서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다>라는 실용서 같은 책을 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보니까 사람들이 다들 힘들고, 지치고, ‘탈출구가 어디 있을까, 나의 실패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멘토를 많이 찾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홍석천’이라는 사람도 멀리서 지켜보신 분들한테 아 쟤는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사실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저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 어려운 이야기 다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제가 모든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려우니까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위로가 될 수 있고, 기운 낼 수도 있고, 저에게 영감을 얻어서 다시 힘을 얻으실 수 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친 뒤, 홍석천 씨는 이제 본격적인 ‘스팍킹’을 진행하기 위해 강단으로 올라섰다. 강단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혹시킬까.



방송 인생의 첫 시작


%EC%8A%A4%ED%8C%8C%ED%82%B9_%ED%99%8D%EC%84%9D%EC%B2%9C31.jpg?type=w966 "반갑습니다. 저는 이태원에서 외식업을 열심히 하고 있고, 틈틈이 여러분을 찾아뵙는 홍석천이라고 합니다."


"우선 저는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방송생활 20년 넘게 일을 쭉 하고 있구요. 사실 24년 방송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듣기로는 굉장히 쉬워 보이는데,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 저는 열심히 나름대로 대한민국 예능 문화에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도 활동을 쭉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영화를 제작하는데 돈이 꽤 많이 들어가요. 저는 시골출신이라 돈을 부모님께 많이 받을 수가 없어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저와 같은 사람이 방송국에서 연기를 한다는 꿈을 꿀 수가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배우라고 하면 너무 잘생긴 선남선녀들만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만 보면 너무 주눅 들어서 의기소침 했는데, 그때 저한테 한 사람의 한 줄기 빛 같은 은인이 나타나십니다. 모교 연극영화과의 교수님이신데, 교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바보 같은 녀석아
너가 졸업하고 방송을
시작할 때쯤 되면
우리나라에도 조연배우가
빛을 발할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연기만 배워라.




이후 저는 저에게 용기를 주신 교수님 말씀을 믿고 열심히 연극하고, 뮤지컬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배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스스로가 어떤 꿈을 꾸고 다음 목표를 정할 때 ‘이것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을 항상 가집니다. 가게를 하나 오픈할 때, 어딘가에 새로운 사람과 함께 프로젝트를 할 때, ‘이걸 내가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들이 많잖아요. 우리가 일을 하면서 또는 서울문화재단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것을 통해서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을까’ 등등...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시잖아요. 근데 그 일들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너무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1등’과 ‘완벽’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의지를 갖고 눈에 막 빛을 발하면서 덤벼들면 희한하게 저보다 더 큰 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이 나타나서 주변에서 저를 막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도와주고, 알아서 끌어주고 알아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주고, 그런 기적들이 제게 많이 나타났어요. 제가 처음 시골에서 올라왔을 때, 수중에 7만원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제가 잘나가서가 아닙니다. 저는 스스로 부족한 과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앞장서서 나갈 때, 저는 그들을 따라가고 동등하게 인정을 받으려면 그들이 빈틈을 보이는 시간에 노력을 해요. 저랑 같이 작업을 하셨던 분들이 “홍석천이랑 작업 하면 자기 출연한 값은 해.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 다 마음이 편해. 모가 안났어” 이런 이야기만 들어도 25년 동안 방송을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어요.

저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목표를 가질 때 1등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1등을 하도록 만드는 게 너무 많아요. 1등은 너무나 피곤한 삶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중고등학교 때 전교 1등하는 애들 있잖아요. 걔네 이기려고 노력해보신 분? 걔네들은 절대 이길 수가 없습니다. 걔네들을 이기려고 하는 순간 삶이 불행해집니다. 저는 그래서 항상 목표를 3등으로 봅니다. 2등은 언젠가 한번쯤은 1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 불안해요. 천재 같은 1등이 앞에 있는데, 주변에서는 ‘왜 1등을 하지 못하냐고, 조금만 밤을 새면 1등을 할 수 있는데 왜 못하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1등의 절대적인 힘을 주변에서는 잘 모릅니다. 2등에게도 이러한 고충이 있는데... 제가 설정한 3등은 그런 게 없어요. 3등은 1등 하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주변에서 좀만 노력하면 2등할 수 있겠다고 응원을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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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방송할 때도 3등이 편해요. 말을 정말 말하는 MC들이 있는데, 여러분이 흔히들 생각하는 TOP10이 떠오르실 거예요. 거기에는 홍석천이 없어요. 저는 1군이 아니라, 3군 앞쪽에 있어요. 저는 제 포지셔닝을 묘하게 잘하는 스타일인데, 욕심내서 1군으로 가게 되면, 저에게 기본적으로 따라붙는 태생적인 안티세력들 때문에 제 삶이 너무 피곤해져요. 그렇기 때문에 완벽해지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제 인생의 방향성입니다. 연예인 중에서 이렇게 15년째 다양한 음식을 최고가 아닌 상태로 유지하는 연예인을 저밖에 없습니다. 저는 늘 중간 자리를 차지하고, 1등과 2등은 다른 분들이.... 하지면 저는 부담이 없죠. ‘나는 뒤에서 마음껏 놀아야겠다’ 모든 스트레스는 앞에 계신 분들이! (웃음) 저의 목표는 항상 이런 식으로 이어집니다."



더욱 발전하는 사회를 위해 부탁하고 싶은 말


"저는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계시는 여러분들께서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제 주변에 있는 예술인들이 이런 것들을 물어볼 때가 있어요. “제가 이런 프로젝트가 있고, 이런 것들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이걸 누구한테 이야기를 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까요?” 그럴 때 저는 아이템이 있으면 ‘정부나 재단 단체에 투자해주실 분, 관심 있으실 분들이 있을 테니 그쪽을 찾아봐라’ 이렇게 애매하게 답을 해줬었거든요. 왜냐면 저도 잘 모르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서울문화재단이 딱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여러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이태원 뒷골목 문화를 바꾼답시고 많은 일을 했는데, 구청 분들에게 아이디어를 내고 얘기를 하려면 그 분들의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또 좋은 아이디어,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늦어지면 사람들이 지치는 경우가 많아서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여러분들의 최고의 미덕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젊은 아티스트들한테 계속 지원해주는 것, 거기에 평가하고 판단하고 기준을 세우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슬기롭고 지혜로운 눈만 있다면, 많은 아티스트 분들이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지금도 물론 멋진 일들을 잘하고 계시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것들을 더 신경써주신다면, 더 새롭고, 다 즐거운 문화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열렬한 강의가 끝난 뒤,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드러낸 그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매료됐다. 곧 이어 그에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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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이라는 인물에게 궁금했던 점들


Q. 과거 재단 내에서 퀴어 관련 행사를 지원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퀴어 페스티벌을 지원한 적도 있었고, 저희 팀에서 진행했던 사업 중에 우사단 길에서 했던 사업을 지원한 적도 있는데, 사실 이런 행사들이 담당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지원하느냐’ 라며 항의 전화들이 올 때가 있어요. 이런 항의들이 올 때, 부드럽게 응대할 수 있는 답변이 있을까요?

A. 홍석천이 세금 더 낸다고 말씀드리세요! (웃음) 항의에 휘둘리지 마세요. 이런 반발에도 지지 않고 사업이 진행되었을 때, 굉장히 보람되고 의미가 있잖아요. 다른 기관들은 겁나서 하지도 않는 프로젝트의 지원을 '서울문화재단'이 했다는 것을 통해 우리의 프라이드는 얼마나 높아질까요. 이러한 것들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겪은 것들 이고, 우리가 계속 쫓아가고 싶어 했던 선진국 사람들의 모습이 되는 것이죠. 우린 계속 달려가고 있고, 그런 오류와 마찰을 묵인한다면 사회는 다시 뒤로 돌아가게 되겠죠. 미래는 여러분들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Q. 예전부터 홍석천씨 식당을 자주 가는 단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식당의 주인이신지 몰랐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태국 음식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잘될 줄 몰랐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키워드이고 트렌드이잖아요. 키워드를 트렌드에 맞게끔 제시하신 것이고, 그 이후 트렌드가 되면서 주변에서 따라 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식당을 하시는지, 트렌드를 어떻게 분석하고 선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마이’라는 시리즈의 음식점을 하고 있는 것이, 스티브 잡스가 미국에서 ‘아이’ 시리즈를 하는 걸 보고 사용한 것입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니까. 그래서 홍석천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저라는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있겠죠. 이것을 다양한 이름을 통해 브랜딩을 하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식당의 이름을 지을 때 ‘아워’를 썼습니다.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 차별 없이 와서 놀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아워’라는 것이 한국 사람이 발음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는 의미로 ‘마이’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딱 미국을 봤는데 미국의 아이폰이 있더라고요. ‘아이’가 무슨 의미인지 물었는데, 이게 ‘마이’와 똑같은 뜻이라고. (웃음)

그래서 저는 이제 한국에서 ‘아이’ 시리즈를 시작한 거예요. 이 ‘아이’ 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굉장히 쉽고 좋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가게를 오픈할 때 마다 ‘마이’ 뒤에 이름을 붙입니다. 저는 가게를 운영하며, 제 이름을 알리지 않아요. 저는 다른 분들과 반대로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가게인줄 몰랐다가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기쁨을 주고 싶은 것이에요. 그래서 제 이름을 알리지 말자고 했고, 이제는 이태원 하면 홍석천이 떠오르게 되었죠. 이제는 사람들이 “이 다음에는 어떤 가게 하실 거에요?” 이렇게까지 물으실 정도로. 이것이 바로 굉장히 뿌듯한 브랜딩의 결과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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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간에서도 그의 열정적인 토크는 계속 이어졌고, 아쉽게도 어느새 마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래와 같은 멘트로 2017년 첫 번째 스팍킹을 마무리 지었다.


여러분들께서 목표로 해서
쭉 가는 길이 막히고
덜컥 거릴 때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때 좌절하지 마시고
내 길이 아니다 싶을 때,
그럴 때는 옆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시면 다른 길도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연이 끝난 뒤, 그는 사람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셀카를 찍어주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길을 갈고 닦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피나는 노력을 갈고 닦았을 그. 오늘 이 행사는 ‘홍석천’이라는 사람의 수많은 페이지 중에서도 짧게 몇 페이지만을 봤을 뿐이었지만, 삶속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매순간 모든 열정을 아끼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문화’를 사랑하는 우리가 ‘완벽’과 ‘1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문화를 즐겁게 향유하고 키워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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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홍석천
탤런트, 영화배우이자 레스토랑 운영자. 대한민국 연예인 최초 커밍아웃.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며 ‘배우 겸 이태원 요식업계의 대부’로 활약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번역가 황석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