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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Sep 23. 2015

소설로 재미있는 것을 해보자

 매거진 <Axt>  편집장 백다흠 

문학계의 표절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7월,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 이른바 ‘문단 권력’에 대해 신랄하게 질타하는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언론에 수차례 인용됐다. 출처는 7월 창간한 매거진 <Axt>. 표절 이슈가 불거지기 두 달 전에 진행된 인터뷰는 날카롭고 묵직했다. <Axt>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Axt, 악스트)여야 한다”는 프란츠 카프카의 문장으로부터 힌트를 얻은 매거진이다. 그러나 <Axt>의 백다흠 편집장은 그런 무게감보다는, 소설을 ‘재미있게 전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심플한 디자인에 눈이 가는 <Axt>의 이야기를 백다흠 편집장으로부터 들어보았다.



<Axt> 창간호가 발행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결과물에 대해 반응이 좋은데 개인적으로는 어떤가.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에 없던 포맷의 매거진이고, 이 정도로 심플한 것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반신반의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의 물성 자체를 즐기긴 하는데 다행히 창간호의 반응은 좋다. 사실 개인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시작했다. 예전에 출판사 문학동네의 계간지 팀에 오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문학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중이 문학을 접하는 데 장벽이 높은 것 같아서 그걸 낮추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게 됐다. 작가들에게 ‘쉽게 써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편집자로서 문학에 다른 옷을 입힌다면 가벼운 옷을 입혀줘야지 싶었다. 팔랑거리거나 혼란스러운 옷이 아닌, 단정하고 편안한 옷으로.


기획부터 창간호 발간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 기획을 시작하던 때 그렸던 매거진의 모습과 실제 결과물에 차이가 있나?

머릿속에 이미 그림이 있었다. 평소에 일본의 미술잡지나 사진잡지를 많이 참고하는데, 심플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매거진 디자인의 전반적인 콘셉트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미니멀한 방향으로 생각해두었다. 사실 지금보다는 텍스트가 더 없는 잡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는데, 이 매거진은 ‘문학잡지’이고 텍스트가 중요하다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텍스트를 얼마나 조형화해 이미지로  구현하느냐가 내가 할 일이었다. 시각적으로 잘 읽히느냐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소설가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콘텐츠를 기획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편집위원을 비롯해 필자 등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준이 있나. 

그럼에도 소설가로만 편집진을 구성한 것은 잡지의 포맷을 달리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들 이런 매거진을 만들자는 취지에 공감했고, 커뮤니케이션도 제법 수월하게 진행됐다.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기준은 없었다.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더라. 기존 문예지와 성격을 달리하려는 잡지다 보니 비전문가의 서평, 다른 예술 분야에 관련된 사람들을 더 참여시키고 싶다. 소설가들이 중심이 되는 것은 계속 가져가고. 평론가도 일부 포함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주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핵심은 문학을 더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매거진으로 만드는 것이다.



창간호의 커버 인터뷰 인물이 천명관 소설가인데.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커버 인물로 초대될 수 있다. 창간호에서는 매거진의 정체성을 가장 비슷하게 드러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 고민하다가 천명관 작가를 모시게 됐다. 그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걸 왜 하냐. 망하려고  작정했구나’라고 흥미로워하면서(웃음). 문학계 선배들의 반응은 ‘소설 쓰는 후배들이 모여서 소설 잡지를 만든다고? 아,  재밌겠다!’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Axt>는 주류에서 아카데믹한 이슈를 제기하는 것을답습하지 않고 소설책 소개, 개인적인 에세이, 소설가 인터뷰, 신작 소설을 싣는다. 심플하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문학계에 표절 이슈가 제기된 시점에 잡지가 발행되어 더욱  주목받기도 했다.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는 특히 많이 인용되었고. 기존 문예지와 차별화된 지점에서 시작하겠다는 매거진의 방향성에 대해 많이들 주목했데, 편집장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상징성으로만 언급될까 봐 조심스러워지는 면이 있을 것 같다.

언론에서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잡지의 효용성,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결론을 다 내려주더라. 사실 <Axt>는 시류에 연연하기보다는 소설을 재미있게 제시하는데 방점을 찍을 뿐이다. 잡지는 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잘 읽힌 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게 잡지의 속성이 아닐까. 왜 잡지에 힘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잡지는 대상에 관심 있는 사람이 쉽게 보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콘텐츠의 가벼움, 소비지향적인 정보, 얼마든지 구길 수 있는 편의성 등이 잡지의 장점 아닌가.


미스터리 장르 매거진 <미스테리아>와 맞물려서 이야기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매거진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Axt>가 발행되기 열흘 전쯤 <미스테리아>가 나왔는데, 처음 봤을 때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싶어 놀랐다(웃음). 막상 보니 많이 다른 잡지였지만. 그 요구란 ‘시대의 요구’라기보다는 ‘시장의 요구’에 가까운 것 같다. 단행본처럼 출간되는 기존 문예지는 시장의 요구에서 멀어졌다고 느낀다. 문학 독자는 존재하는데 혹시 다른 걸 원하는 것은 아닐까. 기존 문예지가 단행본의 물성과 비슷하다 보니, 그보다는 감각적이고 좀 더 가벼운 잡지를 만들겠다는 마음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런 식에 반응하는 독자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잡지가 그렇듯 문학 역시 빨리 읽고 빨리 소비돼도 상관없다고 본다. 물론 긴 호흡으로 읽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작품도 있다. 동시에 짧게, 감각적으로 이야기를 던지는 문학도 있다. 텍스트는, 특히 소설은 그다지 한정적이거나 엄격하지 않다. 순문학과 장르적 성격의 문학 모두 아름답고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다른 장르의 문학에 대해 독자의 요구가 있으면 더 수용할 생각이다. 굳이 한쪽으로 치우칠 필요는 없다.  <Axt>의 역할은 소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것’이다.


<Axt>의 성격은 출판사 은행나무의 방향 안에서 설정되는 것인가? 사실 회사의 입장과 관련해 가장 궁금한 것은 수익 문제다. 무가지로 가려다 서점 입고를 위해 2900원이라는 가격을 매겼지만 수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을 텐데.

회사의 정체성을 <Axt>에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수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목표는 돈을 벌지도 잃지도 않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다행히 그 ‘똔똔’ 상태로 근접해가고 있다. 그것만 해도 좋다. 대표님이 그런 얘길 하셨다. 계속 20~30%씩 매출이 떨어지는 출판계 상황에서 출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웅크리는 것’이라고. ‘선택과 집중’으로 꼭 해야 할 것만 하는 방향으로 우리 회사도 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또 그러시더라, “놀면 뭐 하냐”고. 안 하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낫고, 이왕 하는 거 재미있는 걸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지.

그게 참 어렵다. 일단 커뮤니케이션할 도구가 생각보다 마땅치 않은데 SNS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얼마 전에 칼럼니스트 임경선 씨가 트위터를 통해 <Axt>에 대해 15가지 정도 비판할 점을 지적하셨더라. 잘 새겨듣고 앞으로 2호, 3호 계속 더 신경 써서 만들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다 좋은 말이었다. 칭찬은 사실 거기서 거기지만 비판은 디테일하게 들어오니 각인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 블로그, 트위터 등 다양한 매체에서 오는 피드백을 추려서 편집위원들과 얘기를 많이 나눈다.



다음 호에서 변화되는 것이 있다면?

2호에서는 시각적인 페이지를 더욱 늘리려고 한다. 화가들의 작품, 커머셜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의 작품과 내가 작업한 사진 등이 들어갈 예정이다. 무협소설가, 가정주부 등 비소설가들의 참여도 늘어난다. 페이스북에서 글을 접했거나 주변의 추천을 받았는데, 글을 참 잘 쓰시더라. 


문학 편집자와 매거진 편집장을 모두 경험했는데, 어떤가? 

기초 미학 수업을 들어보면 ‘create’(크리에이트)와 ‘make’(메이크)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쉽게 말해 크리에이트는 없는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메이크는 있는 것을 재료 삼는 사람이지. 소설 편집자는 메이크에, 잡지 편집장은 크리에이트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다. 편집장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더라. 우리 회사 사장님부터 인쇄소 직원까지, 호당 만나는 사람이 거의 100명은 되는 것 같다. 어느 과정 하나 신경 쓰지 않을 부분이 없기 때문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100명 중 99명은 누군가 방향을 설정해주길 기다린다. 다만 처음에 고생을 정말 많이 하지만 포맷을 정하면 순탄하게 가는 면도 있겠지.


무거운 이야기인데, 한국 소설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한국 소설에는 언젠가부터 단편소설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다. ‘단편 미학’이라고 하며 예술작품화됐다고 할까. 그러나 시장에서 소설의 기능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소설은 잡지가 그렇듯 소비재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와 그 안의 인물이 소비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한국소설은 소비재이기보다는 예술 안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보는 창작자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계속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풍토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 시장은 소설에 소비재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걸 이해하면 한국 소설은 재미있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이야기’와 문장의 가독력 등 ‘읽는 즐거움’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소설을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 읽으면 읽은 만큼의 문제점이 보이는데, 뭐가 문제고 답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소설을 안 읽는다는 게 문제라고 본다. 문제점을 알고 궁금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사와 작가들이 더 많은 일을 하고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을 만든 맥락이 거기에 닿아 있다고 봐도 되는가.

그렇다. 소설 시장이 자꾸 위축되고 이를 목격하면서 안타까움이 커진다. 시장이 줄어들면 작가나 출판사가 서로 힘들어지고 독자도 멀어진다. 그럴수록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만들어가면서 판은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책 읽기 운동도 필요하고. 인문학을 전반적으로 고양하려는 움직임도 중요하다. ‘소설 시장이 죽네 사네’ 하는데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


형인 백가흠 작가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이기 때문에 외롭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편집자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나.

외로운 직업이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온전히 내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소설가에 비해서는 덜 외롭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펴냈을 때 뿌듯해하기보다는 부끄러워하게 되는 문학이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기억 속의 것들이 어떻게든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이 나오면 작가들은 알몸이 되어 거리를 걷는 기분일 거다. 전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창작자가 되니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그렇게 외로워질 수 있겠더라. 사실 누군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웃음).



 이아림

사진 김창제


* 이 글은 「문화+서울」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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