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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Sep 22. 2015

서울 저잣거리에서 뜨끈하게 위로받기

 김현학이 문득 길을 잃곤 하는 숭인동 동묘시장

서울의 한 가운데인 종로는 그곳의 역사만큼 다채로운 표정과 이야기를 지닌 곳이다. 왕복 10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근래 지은 빌딩이 운집한 세종로부터 인사동과 종묘, 세운상가와 광장시장까지, 사회의 전후좌우, 시간의 다양한 결과 만날 수 있다. 그중 동묘시장을 낀 숭인동은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신비로움과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는 곳이다. 김현학 푸드디렉터는 마음의 위로를 얻고 싶을 때 그곳을 찾는다. 


 태어나기만 서울에서 나고 성장기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낸 나에게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서울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푸드디렉터라는 직업으로 이제 11년. 딱 그만큼 서울을 느끼고 있다.  처음 상경했을 때 느낀 삭막함과 막막함은 잿빛 도시의 냉정함 그 자체였다. 내 몸 하나 추스를 곳 없던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빠르게 움직이고 변하고 낯설기만 했던 그곳이 이제는 내 삶의 소중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가끔 고향집이 있는 대전에 가면 어김없이 너무나도 여유롭고 한가해서 답답하기까지 하다. 친구들이 ‘서울 사람 다 됐다’고 말할 때마다 피식 웃어 넘기지만 내심 기분이 좋기도 하다. 서울이라는 곳이 참 그런 것 같다. 약간의 허세를 보태 말하면, 뭐랄까 세련됨이나 자긍심 따위를 얹어준다고 할까.



동묘시장에 남아 있는 세월의 맛, 흥정의 맛


‘차가운 도시 남자’의 본거지, 그 팍팍하게만 느껴지던 서울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편집장으로 살면서 이곳 저곳 안 다닌 곳이 없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곳은 바로 동묘가 자리 잡은 종로구 숭인동이다. 광고나 푸드 스타일링 촬영을 위해 다양한 소품을 찾으러 시장이란 시장은 다 돌아다녀 봤지만 그중에서도 동묘 벼룩시장은 단연 특별한 곳이다. 


동묘역 3번 출구를 나오면 여기가 서울임을 잠시 잊게 만드는, 시공간을 초월한 영화 세트 같은 곳이 눈앞에 펼쳐진다. 좁디좁은 골목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온갖 골동품과 세월의 맛을 담고 있는 물건이 쌓여 있다. 사람 반 물건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 가는 대로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어릴 적 추억과도 만나게 된다. 


방학마다 놀러 가던 시골집에서 본 돌절구, 인두, 소반에 숟가락,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손 편지를 담아주던 빨간 우체통이 있다. 금방이라도 분위기 있는 재즈 음악이 나올 것 같은 축음기 앞에 서면 혼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한다.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골동품 가게에는 정말 어찌 그리 수많은 물건이 들어가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고개를 뒤로 바짝 젖혀서 천장까지 빼곡히 걸려 있는 물건 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면 그만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관심도 없다. 그저 찾아다 주면 가격이 매겨지는 곳. 말만 예쁘게 해도 2000원은 깎을 수 있는 흥정의 맛도 있는 곳이 바로 숭인동 벼룩시장이다.


골목 곳곳 스며들듯 자리 잡은 가게들은 보기만 해도 그림처럼 정겹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하나같이 추억에 잠겨 흐뭇한 미소를 띤 친구처럼 편안하기 그지없다. 어르신들의 추억담도 들리고, 젊은 연인들도 이색 데이트 장소로 자주 찾아 이제는 단순히 어르신들만의 공간이 아닌, 세대가 어우러지는 묘한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기도 하다.




북적대는 난전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

 

그렇게 한참을 골목을 다니다 보면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선 듯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길을 잃곤 한다. 이따금 길대로 그저 사람들 가는 대로 여유롭게시간을 보내는 것도 동묘 벼룩시장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청계천을 만나니 잠시 한숨 돌릴 수 있고, 다시 종로 5가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광장시장 안에서 또 한 번 서울의 마지막 인심을 만난다. 한 걸음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먹을거리가 유혹한다. 마약김밥과 떡볶이에 왕순대, 그리고 꼭 먹어봐야 하는 녹두빈대떡까지…. 그저 좌판에 앉아서 옆자리 외국인과 섞여 정신없이 즐기면 그만이다. 마치 독일의 맥주축제를 보는 듯하다. 수많은 사람이 어울려 앉아 뜨끈한 음식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내 절로 미소 짓게 된다. 그곳의 풍경은 서울 장터의 매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의 팍팍한 삶이 아닌, 거친 듯 정감 넘치는 날것 그대로의 숭인동 모습이 참 좋다.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한 정이 있기에  더욱더 가고 싶어 지는지도 모르겠다. 도심에서 찾은 작은 고향 같은 곳, 문화재와 사람들이 어울려 있는 곳. 아마 조선 시대의 저잣거리가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가끔은 타임머신, 아니 지하철을 타고 동묘로 가보자. 모르는 타인에게 위로받고 싶은 날 나는 동묘에 간다. 그리고 일상의 행복을 맛본다.



글 김현학 

푸드스타일링 매거진 <iamfoodstylist> 편집장 및 대표, 요리에 철학과 멋 그리고 가치를 담는 푸드아티스트, 푸드칼럼니스트이자 SBS 라디오 <호란의 파워 FM>을 진행하며 방송, 광고, 영상, 저술까지 음식에 관련된 모든 일을 아우르는 푸드아트디렉터다. www.iamfoodstylist.com


그림 조성헌 

대구에서 태어나 서양화를 전공했다. 현재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 참여한 책으로는 국민은행 자산관리매거진 <THE STAR TABLE>, 서울 신용보증재단 매거진 <SUCCESS> 등이 있다.


* 이 글은 「문화+서울」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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