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뮤직 북> 출간 전시회
여기,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의 책이 있다. 단순히 작곡법을 알려주는 음악 교재도 아니고, 가상 인물의 이야기를 일러스트와 함께 풀어내는 소설집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이 모든 게 한 책에 들어 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가상의 인물들이 작곡을 배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내고, 이 모든 과정을 글과 일러스트로 표현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고 뮤직 북(Ego Music book)>에 관한 이야기다. 출판 기념 전시회가 문래창작촌 내 복합문화예술공간 재미공작소에 열린다고 해서 찾아갔다.
이제 사람들은 문래동 하면 공장지대보다는 문화예술공간이 모인 ‘문래창작촌’으로 점차 기억하고 있다. ‘문래예술공장’이나 몇몇 전시장은 가봤지만, 아직도 ‘문래창작촌’에서 안 가본 곳이 너무나 많고, <이고 뮤직 북> 출간기념 행사가 열린 복합문화예술공간 재미공작소도 개인적으로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공간은 아담한 사이즈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고 뮤직 북>을 구매하기도 하고, 벽에 걸린 원화 전시를 구경하며 아티스트,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상상이 있다. ‘나만의 노래’가 있다면 어떨까? 내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고 멜로디를 입혀서 내 목소리로 나오게 한다면, 그리고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몇 년 전 상상만 해보기를 멈추고 작곡을 배우러 서울의 어느 음악 학원에 등록했다. 음악에 관한 기술적인 레슨은 작곡에 입문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투르지만 곡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망하고 말았다. 적어도 그 공간은 예술을 통한 즐거운 커뮤니티가 될 수 없는 구조였다. 기계적이고 삭막한, 주입식의 수업 방식이 답답했다. 수강생들도 모두 음악으로 사육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곧 이 학원을 관뒀다. 적어도 여기서는 음악을 ‘즐길’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고 뮤직 북>을 살펴본 결과, 작곡에 관한 내 경험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는 책이었다. 뮤지션 퓨어킴이 재미공작소에서 2013년부터 비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자작곡 워크숍의 수업 과정을 픽션 형식으로 담아낸 책이다. 수업 과정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음악 자체와 더불어 ‘나(Ego)의 이야기’이다. 첫 수업에서는 수강생끼리 서로를 소개하고, 두 번째 수업부터는 수강생 본인의 내면 이야기를 애니어그램, 마인드맵 등을 통해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 도와주는 과정이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음악과 작곡에 관한 기초 이론도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음악을 사육 당했던 내 기억을 지우고, 이런 곳에서 음악을 즐기면서 작곡을 접하고 싶다.
작곡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고 뮤직 북>이지만, 이뿐만 아니라 ‘나’를 발견하여 이를 창작의 재료로 쓰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작품으로 완성되는 장르는 모두 다르겠지만, 창작의 기본적인 구조는 비슷하다. 가상의 인물 10명이 어떻게 자신의 고민을 심화시키고, 이것을 작품이라는 물질적인 형태로 나아가는지의 과정을 지켜본다면 독자에게도 같은 에너지가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모래 일러스트레이터의 귀엽고 세련된 그림도 영감을 불어넣는 데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상의 등장인물은 절제된 선을 이용해 과잉되지 않은 표정으로 연출됐는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특히, 캐릭터의 비워진 눈동자는 이 책을 보는 독자들마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시켜도 좋다는 열린 의도로 읽혔다.
지난 2011년 처음 운영되어 문래창작촌 지역 내 여러 예술가/단체들의 우수한 창작활동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문래예술공장의 지원사업 <MEET 2017> (Mullae Emerging & Energe-Tic) 사업을 통해 <이고 뮤직 북>이 발간되었다. 재미공작소의 <이고 뮤직 북> 출간은 문래예술공장의 <MEET 2017> 프로그램 출발을 알렸다.
이어서 7월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이정훈과 노갈의 마임공연 <푸른요정(Blue Angel)>(7.14(금)~15(토),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과 아직 책으로 엮이지 않은 ‘낱장’들을 활용해 구조를 무너뜨린 조형을 선보이는 박지나의 전시 <부록; 낱장의 형태>(7.17(월)~24(월),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시각예술의 평면적 프레임을 벗어나 2D, 3D 사이를 교차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위영일의 전시 <공간속에서 컴포지션을 하다>(7.31(월)~8.7(월), Space XX)가 뒤를 잇는다.
문래예술공장 <MEET 2017> 문화예술 행사는 문래동 문래창작촌 일대에서 12월까지 이어진다. <MEET 2017> 사업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문래예술공장 네이버카페나 페이스북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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