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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Oct 13. 2015

산책을 부르던 그 동네의 생기

자연의 여유와 사람의 활력이 공존하는 도봉동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도봉동은 도봉산과 무수골 계곡이 가까이에 있어 서울 도심에서는 맛보기 힘든 ‘자연 속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게 주된 일상이던 ‘집돌이’ 청년에게, 도봉동은 자연도 등산객의 풍경도 모두 다정한 활기로 느껴지는 동네였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은둔형 외톨이다. 남들처럼 출근을 위해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서는 것도 아니고 외출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통상적인 활동반경은 동네 슈퍼마켓을 넘지 않는다. 그러니 평상시의 행색은 추레할 수밖에 없다. 옆 빌라에 사시는 반장님, 아랫집 아주머니 등등 간략하게 인사만 나누는 주민들은 나를 백수나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온몸으로 거절하고 싶지만 나름대로 온당한 인식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음악 청취와 원고 작성을 주된 일과로 하루를 보내는 음악평론가의 집 밖 출입은 무척 적다.


집과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면 비로소 출타를 결심한다. 바깥바람을 쐬면서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야겠는데 멀리 나가기는 귀찮다. 이런 나에게 도봉동은 더없이 좋은 동네다. 집 바로 앞에 도봉산이 있고 조금 걸으면 계곡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택한 ‘집돌이’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가깝게 대하고 싶을 때 이곳들을 방문한다. 




근심을 덜고 음악을 찾게 하는 무수골 계곡 


소박한 피톤치드 투어는 무수골 계곡에서 시작된다. 요즘은 주말농장 덕분에 사람들의 왕래가 늘어났지만 서울 속 농촌 정경을 간직한 몇 안 되는 동네다. 계곡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점차 개발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줄 뿐 나무와 텃밭이 시야에 가장 많이 잡힌다. 건물들은 대부분 연식이 어느 정도 된 단독주택, 낮은 층의 상가 하나 없다. 골목 한 곳에 있는 낡은 놀이터는 시골에서 놀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든다. 간간이 보이는 식당, 슈퍼마켓의 간판도 새로운 정비 없이 빛바랜 자연스러움으로 지나는 이를 정겹게 맞이한다. 수수하고 고풍스러운 광경에서 도시와는 다른 홀가분함을 느낀다. 


주말농장이 있는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여럿이서 자리 잡고 쉬기 좋은 계곡의 명당이 나온다. 날이 추운 계절을 제외하곤 언제나 아이들 노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튜브를 안고 물장구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쉴 새 없이 웃고 떠든다. 평소 같았으면 꽤나 성 가셨을 하이 톤의 재잘거림은 이곳에서만큼은 물소리랑 새 소리와 앙상블을 이루며 푸른 생기를 자아낸다. ‘무수골(無愁谷)’, 근심 없는 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기만 오면 잡생각이 증발하는 기분마저 든다. 


무수골을 찾을 때면 의식을 행하듯 자리를 잡아 얼마 동안 음악을 듣곤 한다. 대중교통을 탈 때 빼고는 바깥에서 음악을 일부러 듣지 않는 편이지만 그 원칙은 여기에서 꼭 깨진다. 답답한 집을 나와서일까, 동네가 발산하는 특유의 영험한 기운을 받아서일까, 음악 듣는 게 전혀 부대끼지 않는다. 시끄러운 노래도 가볍게 들리고 잔잔한 노래는 더욱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무수골은 안락함이 깃든 음악 감상실이 되기도 했다.



등산객의 북적댐도 흐뭇한 활기로 다가오는 곳


길지 않은 음악 청취를 마친 뒤 도봉산 입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먹고 감행한 근거리 외출의 목적에는 사람 구경도 포함된다. 북적거리는 장소를 선호하지 않지만 붙박이 수준의 긴 칩거로 인해 한정된 사람들만 만났으니 많은 사람을 봐줄 필요가 있다. 


이쪽 대로변은 도봉동 내에서 순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자리다. 도봉산역과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되는 등산객들의 대대적 행렬은 넓은 횡단보도를 가득 메운다. 주말에는 비교가 안 되긴 해도 평일 역시 붐비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집중 하차로 연출되는 알록달록한 등산복의 물결은 은근히 재미있다. 취미와 목적이 비슷한 사람들이 사전 약속 없이 우연히 완성한 플래시몹 같다. 


등산로 입구로 향하는 길은 한층 와글거린다. 등산복과 등산용품을 파는 크고 작은 가게들,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들, 산에 오르려 하거나 이제 막 하산한 사람들, 휴대용 라디오로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풍류를 즐기는 어르신들로 종일 부산스럽다. 생계를 위해 자리를 잡았든 여가와 취미를 누리기 위해 왔든 저마다 도봉산을 찾은 이유는 달라도 그들이 내는 에너지는 똑같이 뜨겁다. 활기는 근처에 늘어선 식당들로도 만개한다. 무수골과는 다른 생기를 맛보게 되는 장소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날에는 도봉산 건너편에 위치한 서울창포원에도 들른다. 도봉동 주민들에게는 산책 명소인 붓꽃 위주의 식물원이다. 흐드러진 꽃, 무성한 풀과 나무를 주변에 끼고 걸으면 이내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벤치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다. 사람들이 음이온을 애써 찾는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가끔 그 동네의 산책을 떠올린다 


가볍게 즐기는 친환경 나들이는 이제 과거형이 돼버렸다. 작년 봄에 연신내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동네도 북한산이 가깝긴 하지만 도봉동에 살 때처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근접한 것은 아니다. 또 도봉동 집은 중랑천을 따라 난 산책로에 진입하는 거리도 가까웠다. 덕분에 그렇게 움직이기 싫어하는 체질임에도 초저녁에 잠깐씩 걷고 들어오곤 했다. 도봉동은 근처에 큰 건물이 얼마 없어서 밤에 별도 많이 보였다. 


꼭 지나고 나면 좋은 점들이 크게 부각된다. 10년 남짓한 긴 세월 동안 도봉동에 살면서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향유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이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내서 더 미련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주는 여유, 많은 사람이 빚어내는 활력이 공존하는 그곳이 그립다. 추억의 나침반은 이따금 도봉동을 가리킨다.



글 한동윤 

한때 스트리트 댄서, 댄스강사로 동적인 삶을 살았다. 여러 음악 사이트와 웹진에 평론과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단행본 <힙합열전>, 전자책 <휴가지에 챙겨 갈 최고의 명반 50> 등을 썼다.

그림 조성헌 

대구에서 태어나 서양화를 전공했다. 현재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 참여한 책으로는 국민은행 자산관리매거진 <THE STAR TABLE>, 서울 신용보증재단 매거진 <SUCCESS> 등이 있다.


* 이 글은 「문화+서울」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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