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치정>의 연출가 윤한솔
연극 연출가 윤한솔(그린피그 대표)에게 빤한 대화를 시도했다가는 미로에 빠진다. 그는 관객들이 재미있어하는 패턴이 생기면 오히려 피해 간다. 그와 맞서기 위해서는 럭비공을 쫓듯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자칫 스스로 만든 편견에 고루하게 갇히게 된다. 올해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린피그의 <치정(Crime of Passion)>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제목은 ‘정치’의 전도된 음절로서 말장난이다. 치정 뒤 숨겨진 권력을 도발한다.
1950년대 세상을 들쑤신 소설 <자유부인>을 쓴 ‘정비석’과 그를 조사하는 서울시경 수사부 ‘남덕술’ 부장이 연극적 도발의 도화선이다. 이 심지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다양한 색깔의 불꽃이 제멋대로 터진다. 이야기를 단순히 서술하지 않는다. <자유부인>에 등장하는 대학교수 부인 ‘오선영’이 댄스파티에 가서 만나는 청년의 이름은 ‘신춘호’고, 희곡 속 현실에서 사모님과 춤을 춘 이는 ‘신춘수’다. 또 희곡 속 현실에서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황산덕’ 교수는 정비석에게 소설 내용을 바꿀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자유부인>의 구절은 그대로 곳곳에 인용된다.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된 또 다른 치정극은 극을 다른 분위기로 이끌며 환기시킨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길 잃기 십상이다. 윤 연출은 하지만 길을 굳이 한 곳으로만 인도하지 않는다. 제 갈 길 가다 보면 어느 순간 풍경이 보일 거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치정> 연습이 한창인 10월 초 성북구 연습실에서 만난 윤 연출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고 병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파편적으로 나열돼 있는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하면 더 파편화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눈을 빛냈다. “일종의 흩뜨리기 전략”인 것이다. “체계화하고 분류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연출을 할 때 서사나 줄거리를 하나로 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역발상을 하는 셈이다. 거리를 두고 보자는 거다.” 그러면서 자신의 오른손 엄지의 손톱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렇게 보다 보면 사시가 된다. 손톱 외에 나머지 배경은 뿌옇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를 잘 체계화하면 그 외의 것들이 뿌옇게 될 수 있다. 나는 손톱만 보지 못하게 하려는 거다. 영업비밀인데.(웃음)” 이 비밀 병기가 <치정>에서도 사용되는 셈이다. 자신이 공연을 볼 때 집중하지 못하는 점도 반영됐다. 관객 역시 100~200명이 같은 작품을 같은 호흡으로 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지난달 [문화+서울]에서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의 연출인) 김현탁 선배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난독증이 있다고 하셨더라. 나는 공연에 대해 그와 비슷한 난독증이 있다. 공연을 잘 못 보겠다. 잘 못 앉아 있겠다. 이처럼 모든 관객이 연극을 볼 때 책으로 치면 같은 페이지에 있기를 바라는 건 힘들다. 책을 읽는 속도가 다 다르듯 연극을 보는 속도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연출을 하면 할수록 관객들이 두 시간 내내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이 부분은 작품의 완성도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 언제 붓을 멈추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같다. 그가 생각하는 완성 도는 무엇이고, 언제쯤 붓을 멈추는가. 결국 완성도라는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어느 순간 멈춰서 완성됐다고 판단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멈춤을 할 수밖에 없는 그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린피그의 또 다른 주축 멤버인 극작가 박상현 씨가 쓴 대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몸을 던지지 말고, 마음도 던지지 말고 그저 이렇게……. 이것이 하나의 도이니, 무거운 듯 가볍고, 가벼운 듯 무겁고 깊은 듯 얕고, 얕은 듯 깊고, 색인 듯 공이고, 공인 듯 색이고……. 가까이도 말고, 멀리도 말고…….” 정치를 치정으로 변환시킨 도발과 같은 선상이다. 윤 연출은 하지만 “극본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라고 잘라 말했다.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가 나쁜 사람인지 가리기 힘들면 둘 다 죽여야 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누가 나쁜 사람인지 결국에는 가리키고 싶다. ‘얘가 나쁜 놈이야’라고. 아직까지는 유치한 선악 구도를 믿는다. 나쁜 놈은 벌을 받아야 하지.(웃음) 근데 비극이 그래서 생기는 것 아닌가. 나쁜 놈을 벌주지 못해서.”
대본에는 1950년대가 배경인데 ‘일베’ ‘홍어’ 등 현재 언어가 아무렇지 않은 척 사용된다. 박인수라는 이름이 등장한다고 1970년대 인기를 끈 솔(Soul) 가수 박인수의 ‘봄비’ 가사를 능청스럽게 대사로 가져다 쓴다. 윤 연출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현재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과거를 현재화한다기보다는 그냥 욱여넣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과거는 물론 현재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희곡에 자주 나오는 ‘시대착오 기법’이다. 유머러스해지는 동시에 시대를 넘나드는 통시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서사적 연결은 아니지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확보하는 거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지금과 연극에서 가리키는 현재가 같은지에 대한 의심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거다.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매끄럽게 만들기보다는 부러 투박하게 한다. 떼를 쓴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연극을 대하는 또 다른 태도다. “매끄럽게 보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고, 지금도 이런 일이 있다고 우기고 떼를 쓰는 거다.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지. 삶이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실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성악설을 믿느냐’는 우문에 “성악설과 성선설,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악한 사람, 착한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 자체가 만들어내는 걸 본다. 거기서 우리가 악을 택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거지. 그래서 각성이 필요하고. 나는 작업을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거다. 작업이라는 것이 내게는 개인적인 종교다. 선언을 하고, 그것이 공개되고 그래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연극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1984> 등 윤 연출의 작품에서 풍기는 슬로건은 ‘연극이라는 기치를 높게 올려라’다. 윤 연출은 그러나 “원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굉장히 사적인 이유로 작업한다”고 눈을 빛냈다. “이 세상에서 광신도가 되지 않기 위해 작업하는 것이다. 예컨대, 알코올 중독이 되지 않으려고 작업을 하는 거다. 요즘 들어서 그런 방편으로 계속 생각이 든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퍼포먼스 <안산 순례길>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다원예술 창작지원사업에서 탈락한 것이 예다. 이 작품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됐다. 이 작품의 연출자가 윤한솔이다.
“연극을 왜 하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세월호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이것이 국가의 공적인 영역에서 지원받지 못하는 소재라면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에 대한 질문이 계속 생겨났다. 이후 질문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나는 왜 연극을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된 것이고. 그에 대해서 깊고 오래 생각하고 있다.” 우연히도 윤 연출의 이런 상황이 <치정> 속 상황과 겹쳐진다. 박 작가가 대본을 완성한 건 지난해 마지막 날. 그런데 극본 속 검열을 당하는 정비석은 윤 연출의 또 다른 이름 같다. “의도하지 않은 시의성인데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관객에게는 분명 연상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눈빛을 반짝였다.
윤 연출과 박 작가가 협업하는 건, 샴쌍둥이를 소재로 한 실험극 <진과 준>(2008)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그는 박 작가가 사유하는 방식과 구조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다만 “상현이 형과 연극을 통해 이루려는 궁극의 가치에 대해서는 공유하나 그곳으로 나아가는 방법에서는 다른 지점이 있다”고 귀띔했다. “<진과 준>을 할 때는 ‘하늘과 같은 형’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고 웃었다.
두 사람이 주축인 그린피그는 내년에 창단 10주년을 맞는다. 윤 연출은 “처음에는 연극을 하려고 단체를 만들었는데 작년부터 단체를 하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배우들이 본격적으로 함께하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20대 중후반이던 배우들이 이제는 30~40대가 됐다. 삶에 대한 고민의 무게가 늘어난 거다. 누군가는 결혼도 하고 애도 생기고. 그전에는 용돈을 받아서 생활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된 거지.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이 여러 가지로 변해서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고민도 확장됐다. 경제적인 면이 특히 그렇다. 개인의 욕망과 단체의 방향이 만나 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끊임없이 조율하는 지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10주년을 넘어서 20주년에도 다 같이 계속 작업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50대가 돼서 60대가 돼서도 그 나이에 맞는 연극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때 대형 뮤지컬 컴퍼니인 에이콤 인터내셔날에 몸담기도 한 윤 연출은, 상업적인 뮤지컬이 지향하는 방향과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는, 사회적인 연극에 천착해왔다. 대학로를 쥐락펴락하는 연출자를 배출해낸, 비상업적인 연출가 동인인 혜화동1번지의 5기 동인(이양구・윤한솔・김수희・김한내・김제민)이다. 5기 동인은 이 그룹의 변곡점에 있던 이들로 특히 극장의 공공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윤 연출이 같은 기수의 연출가들과 함께 현재 활동 중인 6기에게 부탁한 건 “연극의 공적 영역을 유지해달라”는것이다. “재능교육 노동자들과 연대해 단막 연극제를 주최하고 ‘국가보안법’ 등의 정치적 이슈를 테마로 페스티벌을 연 5기의 정신”을 이어받아달라는 것이다. “사회 이슈에 대해 대중의 상당수가 모르고 있더라. 지상파 뉴스랑 특정 신문만 보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연극계 안에서 사회를 좀 더 깊숙하게 볼 수 있는 창을 유지하자는 거다. 어느 시점이 되다 보니 나를 포함해 5기 동인들이 제작 극장의 연극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기득권이 된다. 그런 사람들이 혜화동1번지에 몸담고 있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치정>의 연출 의도를 쓰지 않은 것 역시 일종의 폭력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일방적으로 관객이 이걸 보고 이해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연극으로 이야기하고 관객들이 그에 대해 저마다의 반응으로 나와 대화를 해줬으면 한다”는 마음이다.
정치란 어긋난 걸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놓는 행위다. 결국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정치(政治)는 일정한 곳에 놓아두는 정치(定置)인 셈이다. 치정(癡情)이 정치가 되는 순간도 그렇다. 굳이 말장난을 포함한 도발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 윤 연출과 인터뷰하는 내내 책상 주변에서는 <자유부인> 속 장면을 연습하느라 배우들이 짝을 지어 연신 돌았다. 연습실 한켠에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브라운관 TV 등 그간 공연에 쓴 소품이 아무렇지 않게 쌓여 있었다. 인터뷰로 인한 사진 촬영에 어색해하던 윤 연출은 “증명사진도 10여 년째 똑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웃었다. 윤 연출하고만 인터뷰했는데 그 주변 풍경이 다 보였다.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사진 김창제
* 이 글은 「문화+서울」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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