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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Dec 01. 2015

더 넓은 세계지도를 그리기 위한 탐험

영화 <소수의견>의 원작자·각본가, 소설가 손아람

영화 <소수의견>이 외압설에 휘말리며 크랭크업 이후 2년 만인 올해 개봉했다. <소수의견>의 원작자이자 각본가로서 소설가 손아람 또한 부일영화제 각본상 수상 등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멘사 회원이자, 15년 전에는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래퍼였으며, 정식 등단을 거치지 않고 이미 장편소설 3권을 집필하면서도 각종 언론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고, 영화와 드라마의 각본을 쓰며, 글을 통한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다소 전투적인 의견 개진도 서슴지 않는 그는 아직 서른다섯이다. 손 작가와 16년을 함께한 친구이자, 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진환 대리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6년을 친구로 지냈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건 또 새롭네. 요새 공사다망한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고 있어? 아, 부일영화제 각본상 수상도 축하한다.

다음 작품을 쓰고, 매체 외고를 쓰고, 강연을 다니고, 최근에는 드라마 <송곳>과 <응답하라 1988>의 음악을 맡고 있는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 착취 문제의 대응 모임 활동을 하고 있어. 내가 한가할 때는 네가 야근하느라 만나기 어려웠는데, 내가 바쁠 때만 찾냐!


사실 이런 인터뷰 자리까지 마련한 게 내가 우리 팀에서 진행하는 <마음약방> 2호점 ‘청년편’에 대한 기획을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런 거잖아. 그동안 내가 서울문화재단에서 뭐 하는지 잘 몰랐을 거 같은데, <마음약방>은 어떤 거 같았어?

기본적으로 자판기라는 매체에는 어떤 것이든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가능할 것 같아. 특히 이번 청년편은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봐. 그런데 이 세대의 문제는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울 만큼 어렵고 민감하기 때문에 다소 위험성도 있어 보여. 오죽하면 ‘헬조선’이라고 하겠어. 청년 세대는 이미 대한민국을 ‘답이 없는 나라’로, 절망의 종착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마음약방> ‘청년편’에 네가 추천해준 증상 이름들이 재미있었는데, 작가 손아람은 어떤 청년 증상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대표적으로 ‘작심3ill-ness’. 메모장에 계획이나 소망을 써놓고 완성할 때마다 지워가는데 수백 가지 항목 중에 절반 가까이를 몇 년 이상 지우지 못했어. 목록이 계속 늘어나기 만 해. 지금은 그걸 왜 쓰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어. 그냥 써놓아야 마음이 편해. 언젠가 목표를 이루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네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2010년에 발간한 <소수의견>이 올해 영화로 개봉되면서 오히려 올해 발간한 <디 마이너스>보다 더 주목받고 있잖아. <소수의견>이 기특하면서도 신간인 <디 마이너스>가 그만큼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을 것 같아. 35세 나이로는 흔치 않게 두툼한 장편소설을 벌써 세 권째 썼는데, 작가로서 각 작품 간에 애정도의 차이 같은 것이 있어?

내 경력 최고의 작품은 <디 마이너스>라고 생각해. 최근 작품이니 더 나아지기도 했지만. <소수의견>이 장르 문법을 차용해서 완성도를 기한 작품이라면, <디 마이너스>를 쓰면서는 처음으로 어떤 작가도 나아간 적이 없는 미개척지 중 하나로 진입했다고 느꼈어.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작가가 글을 쓰면서 그런 느낌이 오는 때는 흔치 않아. 한번 더 넘어서려면 정말 고생하게 될 거 같아.


첫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는 힙합 신에 대해서, <디 마이너스>는 199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에 대해서 다루긴 했지만 사실 청춘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 청춘과 관련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 아니면 네가 아직 영원한 청춘이라서?

모른 척 이야기하려니까 좀 웃긴다. <디 마이너스>의 실제 모델 중 하나가 너잖아. 네가 살아온 경험이 많이 담겼기도 하고, 너랑 술 마시면서 옛날이야기하다 쓰기 시작했고, 다 쓴 날 똑같은 술집에서 만나서 원고를 줬잖아. 나는 그냥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쓸 뿐인데, 아마 내 주변에 아직 청춘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 아닐까.


<마음약방>은 도시인들의 다양한 마음 증상에 대해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 솔루션을 추천해 키트로 제공하는 (진짜 실물!) ‘자판기’다. 2015년 2월 시민청에 첫 번째 자판기가 설치되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2월에는 청년의 마음 증상에 좀 더 집중해 마련한 두 번째 <마음약방> 자판기를 대학로에 설치할 예정이다. <마음약방> ‘청년편’의 증상명과 카피 기획에 손아람 작가가 일부 참여했다.



인터뷰를 진행 중인‘절친’, 김진환 대리(좌)와 손아람 작가(우).


얼마 전 신경숙 표절 사태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너도 논쟁에 많이 참여했지? 네가 너에게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말야.(웃음)

한국문학은 이미 대형 문학 출판사들이 사유화했어. 소설이 무엇이냐의 문제가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느냐로 결정되고 있어. 대형 출판 문학사들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서 자기들 바깥에서 자생하는 문학의 가능성을 박멸하고 있어. 작가는 공모 문학상으로, 평론가는 문예지로 통제하는 식으로. 신경숙 역시 대형 출판사 공모전을 통해 세상에 나왔고, 대형 출판사 문예지의 평론가들을 통해 문학적 권위가 부여됐지. 표절 사태로 그 구조의 윤리와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는 거지.

대형 출판사를 중심으로 문학을 통제하는 권력 구조가 뭔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패러디로 내가 ‘세계 최고의 문

학상’이란 걸 제정해봤어. 이 상의 상금은 100억 원이야. 심사위원은 나야. 수상작은 내가 쓴 소설 <디 마이너스>고. 100억이 이동했네? 이제 내 소설은 “상금 100억 원, 세계 최고의 문학상 수상작!”이라면서 광고되고, 대학에서는 문학 교재로 사용되는 거야. 내가 스스로의 문학관에 따라 양심적으로 심사했다고 변명한다면 이 구조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문단과 문학 권력의 통제 문제와 관련해서, 예전에 내가 예술지원 사업을 담당하던 때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네. 나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지원사업이 연속적인 기획성, 독특함이 없이 여러 건을 나눠주기 식으로 운영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는데, 그때도 너는 그렇게 명확한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 적어도 문학 분야에서는 오히려 너무 방향성이 강한 문학상, 신춘문예에 대한 보완재로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한 것 같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문화라는 게 예측 불가능하잖아. 단기 수익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면 잠재력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봐. 어디서 싹이 틀지 모르는 밭에 비료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듯이 접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지. 공공사업이 커질수록 뿌리보다는 줄기를, 줄기보다는 잎이나 열매를 바라보는데, 효과적이지도 않고 공공성에도 부합되지 않는 것 같아. 하이서울페스티벌 같은 경우에도, 그 관객 수요는 사실 지난 10여 년간 홍대 일대의 클럽들이 만들어낸 거잖아. 정작 뿌리인 홍대 클럽은 껑충 뛴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해서 쫓겨나고 점점 상업화된 공간으로 변질되면서 잠재력을 잃어가는데 서울시는 열매를 키우는 전략을 취했다는 말이지. 그 사업에 들어간 돈을 뿌리에 살포할 비료로 돌려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더랬어.



나는 서울시에서 대표 예술축제를 만드는 것이 시민과 예술이 만나 맺는 열매이자 동시에 뿌리가 될 수 있다고도 보지만, 네 의견의 기본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해.

문학에 대한 지원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소위 말하는 ‘뜨는’ 소설이 지원사업에서 나와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어. 돈이 안 되는 문학과 돈이 되는 문학을 나누고 어느 쪽을 지원해야 하는지의 관점 자체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문학은 콘텐츠 제작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잖아. <해리포터>와 내 소설에 투입된 자원의 차이가 거의 없지. 유통과 홍보에서 ‘돈’의 경로가 갈리고, 그래서 김훈이나 신경숙의 소설이 무협지나 탐정물, SF보다 더 효과적으로 ‘돈’이 될 수 있는 거고. 무엇이 돈이 될까로 접근한다면 거의 답이 없지 않을까? 만약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 반려된 작품을 창비나 문학동네에 가져다준다면, 바로 베스트셀러로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



문학에 대한 애정과는 달리 너는 문학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시나리오, 칼럼 등 소설 외에도 많은 일을 하잖아. 문단에 깊숙이 관계 맺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봐도 되나? 아니면 그냥 먹고사는 문제로?(웃음)

내 세대의 소설가가 많지 않아서 일단 어울리기도 쉽지 않아.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일에서나 관계에서나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새로운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관계를 만드는 데 신중해. 친구를 떠올리니까  한다섯 명 나오는데 두 명이 너랑 네 아내인 것 같네.(웃음)



대학 시절을 떠올려보면 인문대생임에도 과학 관련 강의도 많이 듣고 글도 쓰는 별종이기도 했는데, 여전히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지? 우리 대학 때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에 대해 많이 논쟁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다시 나눠보고도 싶네.(웃음)

‘지적 사기’ 실험 결과의 어떤 측면에 여전히 동의하지. 하지만 그게 인문학이 사기고 과학이 진리라는 뜻은 아니고. 그냥 인간이 거짓과 친숙한 존재라 인간에 대한 학문조차 자유롭지 않은 거지. 과학도 사기를 치잖아. 이를 테면 앨런 소칼이 쓴 사기 철학 논문은 미국의 권위 있는 포스트 모던 학술 저널에 실렸지만, 황우석이 쓴 사기 과학 논문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저널에 실렸잖아.



SF나 장르소설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장르소설을 집중해서 쓰고 장르소설 작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난 여전히 장르 문법과 친숙해. 다만 장편소설이란 게 아무리 빨라도 1~2년은 걸려야 낼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쓰고 싶은 걸 다 쓰기 어려워. 앞으로 죽을 때까지 써도 열 권 남짓의 책을 갖게 될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 그래서 당장 뭘 먼저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더 자주 하고. 써보고 싶은 이야기와 써야 한다고 느끼는 이야기 사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는 것 같아.



손아람 작가가 추천한 청년의 마음 증상

• 경력발달장애(career developmental disability)

이게 뭐죠? 몇 년을 일했는데 왜 모든 게 그대로냐고요!


• 용기부전(courage dysfunction)

마음은 굴뚝같은데 언제나 실천할 용기가 크게 솟아오르지 않네요.


• 급여 상실증(salary amnesia)

아니, 쓴 기억도 없는데 통장잔고가 왜 벌써 바닥난 거죠?


• 아르바이트라우마(arbeit trauma)

올해까지만 하고 꼭 좋은 데 취직해야지! 작년에도 그렇게 결심했었죠.


• 작심3ill-ness

끝까지 완성해보지 못한 계획, 내 꿈이 비현실적인가요?


• 상사병(boss sickness)

상사의 발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요!


• 열정 페이즈(passion pAIDS)

이거 치명적인 전염병 맞죠? 제 주변엔 다 비슷한 사람들뿐인데.


• 스펙티시 강박증(spec fetish)

저 좀 이상해요, 스펙을 쌓는 야릇한 상상을 해야만 흥분돼요!



손아람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소수의견>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직접 참여했다.


요새 네가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작곡가 착취 문제에 많은 힘을 쏟고 있는데, 문단이나 예술계의 시장 구조, 권력 구조에 대한 기존의 관심과도 연결되는 것이겠지? 이런 활동 덕분에 우리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 노동과 관련한 집담회에 너를 토론자로 초대하기도 했더라. 어땠어?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서울문화재단을 좀 더 지켜봤을 텐데, 나를 통해서 보던 것과 달리 더 느낀 게 있나?

음, 사실 집담회에는 말하고 싶다기보다 배울 만한 게 있나 하고 들렀어. 그리고 어떤 집단에 대한 편견을 형성하면서 널 표본으로 삼는 건 적당하지 않을 것 같아.(웃음) 집담회에 들른 소감을 말하자면, 그전에는 예술 사업에 공공 자금을 대는 관료 조직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깊은 수준으로 논의하고 들여다본다는 느낌이 들었어. 집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도 따라가기 굉장히 벅찼고.


마지막으로 소설가나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또는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혹은 그러한 커리어 개발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쓰는 일은 하나야. 어느 분야가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느 분야가 인정받는지를 기준으로 접근하는 건 돈을 벌고 인정받는 데도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야. 자기 세계의 원형이 있어야 하고, 그걸 자본이나 외부 압력으로부터 보호하며 발전시킬 수 있어야 궁극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 성향과 맞지 않는 시청률 20퍼센트의 드라마 보조 작가가 되느냐, 내가 당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아무도 읽어줄 것 같지 않은 책으로 만들어내느냐. 나는 후자가 더 유리하다고 봐. 내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고. 10년 안에 경력이 단절될 가능성이 높은 길과 10년 동안 고생할 가능성이 높은 길의 차이야.



글 김진환 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 대리

사진 김창제


* 이 글은 「문화+서울」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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