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회 열린 토론 시리즈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열린 토론 시리즈 ‘서울문화정책,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기’에서는 지난 10월 새로운 예술지원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가는 창작 행위로 소통하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지만 보편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으며 이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기금 역시 2016년 고갈이 예상돼 우려를 사고 있다. 이런 때 예술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생존할 것이며 예술지원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다양한 의견이 오간 집담회의 일부를 내용을 담았다.
이번 집담회는 서울의 문화예술정책에서 ‘과연 예술가가 주인공인 적이 있었나’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예술지원정책은 점점 진화하고 있지만 창작 환경과 삶이 계속 개선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현실적으로 예술지원정책과 창작 환경, 예술이라는 창작 노동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를 이번 2차 집담회에서는 예술지원제도를 중심으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지원제도에 대한 개선점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떤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하며,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는지, 혹은 이런 부분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패널을 구성할 때 사회적 약자 파트가 빠진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제가 받는 보수가 ‘안무료’가 아닌 ‘출연료’로 책정돼 있는 걸 보며, 예술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이름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다는 데 대해 슬펐습니다.
박나훈 문화 분야에 몸담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간 제가 겪은 지원 시스템을 근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기본적으로 예술가라는 신분 자체가 직업군으로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안무가인 제가 받는 보수가 ‘안무료’가 아닌 ‘연출료’라는 이름으로 책정돼 있는 걸 보며, 예술가가 예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예술로 살아가는 사람인데 이름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다면 과연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모든 지원 시스템에서 불합리함 혹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둘째, 지원 신청에는 필연적으로 정산 과정이 뒤따르는데, 최근 감사 시스템이 견고해지면서 거의 영혼을 해치는 수준의 감사를 받습니다. 지원금에 대한 지나친 감사와 정산은 단체장들을 힘들게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셋째는 서울문화재단 얘기인데요, 2년 전쯤 다년간 지원 사업이라는 시스템이 있었죠. 취지는 국립단체나 사설・임의단체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선정된 팀은 이미 인프라가 확실한 팀이었습니다. 심사위원을 위촉하고 지켜만 볼 것이 아니라 선정할 때 지원 목적에 과연 부합하는지 서울문화재단의 제도적인 컨트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는, 제가 홍은예술창작센터(현 서울무용센터) 등에 예술가로서 지원 신청을 한 적이 있는데 40대이고 몇 번 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외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혜 형평성 차원에서 조절했다는 건 이해하지만 서운한 부분도 있습니다. 정원이나 공급을 늘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면 공공 재원 없이는 못 산다고 떼쓰는 것 같은데, 사실 박나훈무용단은 기업이나 개인 투자 후원자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서울문화재단 등 공식적인 기관에서 예술단체와 기업을 매칭 하는데 일부분 참여해주시면 자생력을 갖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공 재원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마지막 제안은 기업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연극에서는 극단이 많이 죽었다고 해요. 그런데 연극의 근간은 극단이거든요. 작은 공동체들이 모여 만드는 연극의 미학을 지속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데 지금 그런 창작 환경이 많이 무너진 상태예요. 류주연 연출께 연극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지원제도는 마음껏 예술을 하라고 있는 것이고 예술은 자유로움, 반역 같은 키워드와 맞물린다고 생각하는데 지원제도가 예술을 수행하기 힘든 이유로 작용해선 안 되겠죠.
류주연 박나훈 단장님과 굉장히 비슷해요. 40대이고, 중장기 지원 대상에서 떨어졌고, 소상공인 단체를 운영하고 있고요. 일단 해마다 지원금을 신청해서 선정되면 그해에 정기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1년 계획을 짤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한 번의 기회라는 생각에 확률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어떨 때 선정됐나 하고요. 아쉬웠던 작품을 다시 한 번 개발하고 싶고, 작품성이 떨어져도 가능성 있는 작품을 신청하고 싶지만 그런 경우가 없어요.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 중에 제가 안 한 작품을 신청하다 보니 번역극을 많이 하게 돼요. 제 안에서 작품에 대한 검열이 작동한 거예요. 연극인들에게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자기검열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자기도 모르게 정치적인 얘기, 민감한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지원제도라는 것은 마음껏 예술을 하라고 있는 것이고 예술은 자유로움, 반역, 자기표현과 같은 키워드와 맞물린다고 생각하는데 지원제도가 예술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 이유로 작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원제도는 예술가가 자생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작지원금을 늘려달라는 게 가장 현실적인 요구 사항일 수 있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예컨대 ‘관객 개발에 지원금을 더 써주세요’가 맞는 것 같아요.
새로운 지원제도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지만 기존 지원제도에도 좋은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자꾸 새로운 것만 추구한다고 기존의 좋은 지원제도가 없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장기적인 제도로 계속 지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원금 고갈에 대해서도 계속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해요. 또한 정책가들의 해외 사례 연구 등이 행정 과정에서 덜거덕거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행정과 정책을 연계하는, 행정 자체를 뒤엎을 수 있을 만큼 파워풀한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술행정은 행정만 있지 예술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행정에서 계속 정책 하시는 분들이 목소리를 내 행정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복지와 기금이 혼동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금 구도에서 항목의 현실화, 신축성이 수반되고 문화 창작자들을 신뢰하면 좋겠습니다.
김희진 저는 큐레이터이자 기금을 지원받아 사업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3년 동안 대안공간인 전문예술사단법인 기관 경영자이기도 했고, 외부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매니지먼트 역할, 개인 프로젝트의 작가 등 서너 가지 경로를 통해 공공 기금 지원을 십 수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항상 나오는 얘기는 항목의 현실화입니다. 박나훈 선생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인건비 책정이 안 되는 지점, 용역을 쓰는 게 아닌 작가가 자신의 기획비나 창작에 대한 사례비를 현재로서는 항목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림자 돈을 만들어 자기 돈을 챙길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반복돼 왔습니다. 작가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료는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은 세금계산서로 정확히 써야 하고 정작 써야 할 사람에 대한 부분, 예컨대 번역이나 협조를 통해 이뤄지는 자문, 글 써주는 분들에게 지급할 고료 등은 제일 먼저 삭감됩니다. 기금이 30% 미만으로 삭감돼 나오니까 작가는 또 다른 분들께 민폐를 반복하게 되니 험하게 말하자면 업체만 살아남고, 개인 작업자의 인프라는 점점 녹아버리는 구도죠.
그리고 다른 기관과 기금의 매칭이 불가하다는 원칙이 아직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행정 편의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어떤 일을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합당한 이유로 설득해서 지원을 받는 것인데, 단순히 다른 기금과의 매칭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해당 기관이 주는 돈의 규모에 맞게 일을 해야 해서, 기획한 것보다 할 일을 줄여나가야 하거든요. 재원 조성을 다원화하라고 하면서 매칭을 하지 마라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내년 기금이 고갈된다는 말이 괴담처럼 떠돌고 있어서 이제는 일반(보편) 복지에 기대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저는 복지와 기금이 혼동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복지가 할 일이 있고, 기금 정책 내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기금 구도 내에서 항목의 현실화, 신축성이 기본적으로 수반되고, 문화 창작자들에 대한 신뢰와 인격적 대우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행정 편의를 위해 원칙적으로만 해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문인 중에는 다른 직업이 없는 이가 많기 때문에 복지와 작가의 활동 개념을 합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김성규 예술행정 담당자 분들이 전문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예술단체가 굉장히 많은데 문학 단체로서는 예술행정을 하다 보면 민원이 많이 들어오니 민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단체에서 한 명씩 배분해 회의석상에 참여시킨다거나 심사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전문성이나 공정성을 위해 단체 대표자들을 모으는 건데, 이렇게 모이다 보면 심사가 끝나면 단체별로 나눠 먹기 식으로 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단체별 배분보다는 전문성을 갖춘 예술행정가가 심사위원 구성 등 여러 면을 고려해서 선정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젊은 예술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이 있으니 방과 후 활동의 일환으로 청소년 교육에 매칭 되면 좋겠는데 문학 쪽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또한 문학창작집 발간 지원의 경우 3년 이내에 출판해야 하는데, 출판사와의 계약과 창작 여건 등으로 빨라도 2~3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감사도 받아야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해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에 저희가 예술인복지재단에 연락을 드렸어요. 문인 중 연로하신 분들, 편찮은 분이 많은데 부양자가 있다는 이유로 혜택을 못 받으시는 현실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행정 하시는 분들은 이런 분들이 있다는 걸 잘 모르시기 때문에 문학단체나 원로를 모아 실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젊은 작가들은 제가 알기로 창작지원금 외에는 다른 지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직업이 없는 문인이 많기 때문에 복지와 작가의 활동 개념을 합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항상 예술가들이 가난할까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그만한 수요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술교육은 잠재적인 소비자를 발굴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중요하게 다뤘으면 합니다.
이유정 저도 예술에서 시작해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데, 왜 항상 예술가들이 가난할까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그만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예술교육은 예술을 잠재적으로 필요로 하는 소비자, 향유자를 양성, 발굴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서울문화재단이 예술교육을 장기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교육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책임을 느끼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획 관련해서는 주 강사가 기획 비용을 받을 수 없어요. 강사가 실제로 수업에 나가서 받는 강사료 외에는 열정 페이를 요구한다는 거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예술교육이 예술가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예술가들이 일반 대중과 잘 소통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겠지만 예술 교육자는 두 분야를 매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원사업 중에서 좋은 예술 작품과 예술교육을 매칭 해주는 제도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전은정 연출가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전은정 연출님은 노숙인 연극도 연출하셨고 지역 관련 일도 하고 계세요. 아까 얘기 나온 예술가에 대한 매칭 부분도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창작활동을 주로 하는 단체의 장점과 예술교육을 주로 하는 단체의 장점이 어우러져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게 돕는 지원이 절실합니다.
전은정 저는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에서 10년 정도 예술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연극을 하고 있죠. 배우이면서 연출을 주로 하는데 저희 기관에서는 예술교육에 좀 더 의미를 갖고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증명을 받으려고 했는데, 노숙인과 함께하는 연극은 연출로 인정을 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술인복지재단에 등록을 못했죠. 그런데 예술인복지재단 파견사업에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던 배우가 저희 단체로 파견을 왔어요. 이렇듯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서울문화재단에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무엇을 하려 하는가’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뛰어넘은 무언가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지 않나’ 여쭙고 싶어요. 둘째는 문화예술교육사업도 극단에서 하는 경우와 예술교육단체에서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팀이 몇 번을 반복했을 때는 한계가 분명 있어요. 그래서 창작 활동을 주로 하는 단체의 장점과 예술교육을 주로 하는 단체의 장점이 어우러져 보다 나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듭니다.
결국 자생적으로 살아남으려면 기금을 어디에서 받든 예술에 대한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백 기금이 축소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요. 기금 축소에 대한 문제를 중앙정부와 사회에 이의 제기하는 제스처가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죠. 예술은 효용의 가치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장기간 꾸준히 지원함으로써 서서히 쌓여가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적 지원이든 자생적 예술이든,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면, 앞에서 이미 말씀하신 재료비 위주의 지원 항목 외에 어려운 점은 기금 사용 기간이 1년 단위로 제한되어 있어서 장기적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작업실도 문제죠.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어서 다른 분야보다는 (시각예술 분야가) 공간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 또한 1년 단위로 단기적이니까 지원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작품 보관 문제가 있어요. 작업실이 없어도 작업은 여행하면서 해도 되고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저만 해도 작업물을 재활용하거나 폐기하거든요. 기관이 어떤 공간을 만들어 작품을 보관도 하고, 보관 작품을 활용해 전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왜 저 사람들을 지원해줍니까?”라고 물었을 때 시민에게 답할 수 있는 합의된 용어는 만들어져 있을까요? 시민과 예술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천재현 일단은 지원이라는 것이 예술을 지원하는 건지 혹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건지가 명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만일 예술가를 지원해주는 거라면 형평성, 보편성 등 복지와 관련된 문제일 수 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예술과 예술가가 분리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예술을 지원하는 거라면 독창성, 특수성이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제도가 있고 예술가가 거기에 맞는 지원제도를 통해 살길을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시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한 예술정책은 자주 바뀌지 않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존재했으면 합니다. 언제라도 얘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단과 예술가의 관계가 형성되면 예술가들도 제언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정책으로 제안하고, 예술가들이 그에 맞춰 자신의 예술을 하는 상황이잖아요. 지원 기준에 맞춰 생존을 위해 창작 활동을 하게 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원과 창작의 자율성은 사실 모순되는 관계잖아요? 이걸 과감히 끊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받은 작품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기업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유정 작가들에게 홈페이지를 지원해주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어떨까 싶어요. 런던의 사치 갤러리는 작가들의 이름을 클릭하면 홈페이지로 연결돼요.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예술가가 많잖아요? 이런 지원제도를 활용한 경우에 예술가들도 시민이나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예술의 가치에 대해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재현 예술 지원에 대해 예술가의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요구해요. 그런데 당최 우리가 사회에 뭘 해준다고 이렇게 당당한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하고, 당위성을 획득하기 위한 나름의 학습과 개념을 만들어보는 노력을 하는 중이에요.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것인데, 어떤 이유로 예술가를 지원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과연 있을까요? “왜 저 사람들을 지원해줍니까?”라고 물었을 때 문화재단이나 예술가 스스로 시민에게 답할 수 있는 합의된 개념은 만들어져 있을까요? 시민과 예술가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금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집행하는 것, 예술가를 지원하는 데 정산이든 뭐든 깔끔하게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한 전문가 양성이나 예술가 교육도 필요하다 생각하고요. 그런 것들이 필요 없는, 믿고 맡기는 지원은 개인이나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과 교육에 대한 합의된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주제별, 분야별로 서울의 문화예술정책 관련 얘기를 나누자는 의견이 꾸준히 나옵니다. 듣고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요.
이규석 오늘 해주신 얘기들은 꼼꼼하게 메모하면서 들었습니다. 반성하고 고민되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주제별, 분야별로 서울문화재단이나 서울시 문화예술정책 관련 얘기를 나누자는 의견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듣기만 하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듣고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어떤 계획이 나오고 실천으로 옮겨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서울문화재단이 함께 참여해 만들고 있는 계획 중 하나가 중장기 서울문화정책과 중장기 서울예술정책입니다. 이를 위해 귀 기울여 듣는 자리가 여러 차례 마련되고 있고요. 말씀드린 중장기 서울문화정책과 중장기 서울예술정책은 올해 12월 정도에 나올 것으로 계획돼 있습니다.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이야기와 피드백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예술 본연의 일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더 찾아서, 창작과 맞물려 갈 수 있게끔 고민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마무리하겠습니다. 복지와 관련해서 예술가들의 요청은 ‘기초를 약속해달라’는 것이 대표적이었어요. 국가에서 예술 창작이나 예술가에 대한 지원보다는 관리가 가능한 예술 형태에 지원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술 본연의 일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서울문화재단은 지역의 재단이지만 본래 뿌리는 예술지원과 문화진흥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보고 있어요. 그 근간을 흔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생태계를 점검했을 때 과연 예술가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환경인지에 대한 진단이 오늘 얘기된 것 같습니다. 지원사업 외에도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문화재단이 할 수 있는 매개 역할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더 찾아서, 창작과 맞물려 갈 수 있게끔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문화정책위원회에는 예술가 분과 외에도 사회, 도시, 행정 분과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다양한 모임이 있으니 많은 분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나온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이아림, 신나라
사진 김창제
* 이 글은 「문화+서울」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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